[미디어스=임진수 기자] “소설가”라고 하는 것은 대체로 원고료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에서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로 정착한지 오래이다. 그러나 “시인”은 분명히 "시를 쓰는 프로 “라는 의미에서 직업을 나타내는 단어로 사용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전문적인 시인이 아닌 '너는 시인 "혹은"그는 시인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 경우의 '시인'은 직업을 나타내는 것이 아니라 "시적"단어를 말하려고 하거나 발상과 생각이 "시적"이거나 같은 사람을 '시인'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시인'이라는 말의 쓰임새는 "소설가"등보다 훨씬 범위가 넓기 때문에 '시인'과 '비시인 "이라고 모호한 경계가 그어져 있다.

그것이 “시인”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시인"이라는 이상, 적어도 그는 어떤 의미에서 '시적'이라는 것은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시적'이란 무엇인가를 명확하게 함으로써 '시인'이라는 의미를 더욱 명확히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예를 들어 한 여인이 커피숍 창가에 앉아 버버리 코트 옷깃 사이로 뿌연 담배연기 뿜어내며 커피를 마시고 있다. 누군가는 저 여자가 좀 이상해 응시하며 색다른 눈초리로 바라볼 수 있다. 반면 낭만 적이고 시적풍경이 확대 재생되어 시인이 바라보는 시선은 고즈넉한 시적언어로 표현된다.

김대성 시인은 애초 시인이 되고자 노력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딱히 문학에 소질이 있었던 것은 더욱 아니었다. 어느 날 딸아이 커가는 모습을 보면서 시적 영감을 얻었다. 아버지로서 딸에게 남겨주고 싶은 간절한 바람이 ‘시’였다.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 시작 공부에 전염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문학 강좌가 열리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찾아 다녔다. 오랜 세월이 흘러 수십 편의 시를 펴냈고 마침내 “시사사”에 등단을 하게 됐다.

특히 김대성 시인의 “아버지” 라는 시가 돋보인다. 자신이 어릴 적 아버지께서 늘 술을 드시고 동네 초입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늦은 밤에 집에 들어왔다. 그런 기억이 하나의 시로 감흥 했다.

<김대성 시인>

아버지 /김대성

그때는 몰랐습니다

그냥, 그렇게 흘려보냈습니다

마냥

곁에 계실 것 같았습니다

집 앞,

골목 어귀에 들어서면서부터

큰 소리로 부르는 이름은

저였습니다

달려 나가 마중하면

꼭 끌어안고

볼 비비면은 까슬까슬한 수염

술 냄새가 그리 좋았습니다

그때는 진짜 몰랐습니다

그러나

지금 내가 그때를 알 수 있는 것은

내가, 당신의 흉내를

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아버지’라는 시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아버지’를 그려 넣어 ‘시’를 담아냈다. 그러면서 '시'라는 것은 감정의 본질을 잘 응시하고 있으면 누구나 시인이 되고 작가가 될 수 있다“고 전한다.

김대성 시인은 매우 특이한 점이 하나있다. 개인적인 감정의 초점에 가사 노래 '기쁨'과 '비밀'이 존재하는 가운데 시적 언어로 던져진다. 시인은 뚜렷하게 심미지향적인 발화를 통해 리드미컬한 언어를 구사한다.

시적 작품에는 하나의 기호라고 하는 시인의 삶과 연관되어진 직접적인 경우도 있지만 대개 비유적인 경우도 많다.

실제로 경험한 사실을 바탕으로써 작품에서는 온전히 다른 의미의 문맥을 엿볼 수 있다. 또한, 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거나 이러한 경험방식은 작품에서 예술적 목적으로 가장되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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