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어디나 별별 사람 다 있게 마련이다. ‘꼴통’은 한국에도, 중국에도, 그리고 당연히 일본에도 있다.

중국의 어떤 언론이 탱크 몰고 북한을 지나 만주까지 가자는 한국 극우파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기사화한다면? 중국 사람들은 냄새 나고 무식하다는 식으로 막말하는 일부 한국인 꼴통의 목소리를 지속적으로 기사화한다면?

이건 치졸한 선동이다. 중국인들은 그런 기사를 보며 한국을 성토할 것이고, 한국인은 또 그에 대해 강력히 대응하면서 양국관계는 악화될 것이다. 언론이 할 일이 아니다. 만약 그런 외국 언론이 있다면 한국인은 강력히 비난할 것이다.

사실을 전하는 것만으로 언론의 역할을 다했다고 할 수 없다. 언론은 전할 만한 사실을 전해야 한다. 무조건 기사를 팔 목적으로 아무 사실이나 마구 써댄다면, 이미 언론이라고 할 수 없다.

언론이 절대로 조심해야 할 것이 국가적, 민족적, 인종적, 지역적 증오를 부추기는 일을 섣불리 기사화하는 것이다. 이런 부문의 증오는 일단 발화되면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간다. 또 수십 년, 혹은 수백 년 동안 변하지 않을 편견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사진/ 이병헌 공식홈페이지)

증오를 부추기지 마라

어떤 일본 기자가 <지 아이 조>의 이병헌 캐스팅에 문제제기를 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한국인이 닌자 역할로 나온 것에 대해 불쾌감을 표시하며, 일본을 제대로 묘사하지 않은 것에 대한 불만도 토로했다고 한다.

그 기사는 일본인 기자의 글뿐만이 아니라, 댓글까지 전했다. 이게 문제다. 그 기사가 전한 댓글은 이런 것들이다.

‘김치 닌자’

'일본에 많이 잠입하는 조선인은 모두 일급 스파이‘

‘김치 냄새가 나서 은밀한 행동을 할 수 없지‘

‘이제 아시아인을 뭉뚱그려 묘사하는 것 좀 그만둬라. 일본인은 특별하잖아’

이건 증오심을 부추기는 폭탄이다. 이런 사실을 전할 경우 한국인이 어떤 반응을 보일 지는 뻔하다. 아니나 다를까 이 기사엔 천육백 개가 넘는 분노의 댓글이 달렸다. 그렇지 않아도 한중일 3국 네티즌의 상호증오는 이미 위험수위에 다다른 상태다. 언론은 이 국가적 적대심을 어떻게 순화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그 뜨거운 대중정서를 이용해 기사 장사를 하는 것은 절대로 해선 안 될 일이다.

이 기사는 심지어 마지막 ‘일본인은 특별하잖아’라는 댓글을 전하며 ‘우월감을 내비친 글’이라는 해설까지 달았다. 대중의 분노에 불을 지른 것이다. 당연히 ‘쪽바리’ 운운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어떤 일본 언론이 이런 댓글을 일본에서 또 기사화한다면?

증오 선동을 일삼는 한국 언론

증오를 부추기는 건 한국 언론의 고질병이다. 2008년 올림픽 이후 한국 언론들은 이승엽 기사를 쓰면서, 유독 일본의 보복 여부에 초점을 맞췄다. 요미우리 구단이 한국에 보복하기 위해 이승엽을 2군으로 보낼 것 같다는 황당한 기사까지 나왔었다.

당시 이승엽의 일본내 성적은 최악이었다. 그것과 다른 외국인 선수들의 성적을 비교분석하며 이승엽이 밀릴 수밖에 없다는 일본의 기사를 전한 한국 언론은 ‘정황상 이승엽 내몰기’의 성격이 짙다는 밑도 끝도 없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당시 이승엽은 올림픽 경기에 대한 보복이 없느냐는 한국 기자들의 질문에 ‘그럴 리가 없다’라고 답해 한국 언론을 머쓱하게 했다. 그때 일부 언론에게선 어떻게든 국가적 증오심을 건드릴 화끈한 기사를 뽑아내는 데만 혈안이 된 듯한 느낌을 받았었다.

이번에 일본의 예민한 댓글까지 전한 ‘이병헌 폄하‘ 기사도 그렇다. 한국, 일본, 중국 어디에나 있는 인종차별적 ’꼴통‘들의 댓글을 굳이 전해서 어쩌자는 건가?

전쟁을 일으켰던 세력이 처단되지 않은 일본에 극우적 경향을 보이는 사람들이 많다는 건 이미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이 문제는 차분하게 풀어야 한다. 선동적으로 건드리면 치유할 수 없는 증오만 남을 뿐이다. 현재 최고의 한류스타로 떠오른 이병헌을 내걸고 일본의 말도 안 되는 댓글들을 전한 건 최악의 선동이었다.

이런 증오 떡밥에 넘어가는 네티즌도 문제다. 일본인들은 지금 미국인도 놀랄 만큼 이병헌을 성원해주고 있는데, 어떻게 이런 기사 하나 보고 일본에게 악플을 쏘아대나?

헐리우드 영화에서 한국인으로 상정됐던 액션 히어로를 일본인이 하면 한국인도 섭섭해할 것이다. 이런 인지상정 정도의 문제를 가지고 일본인에게 분노를 터뜨릴 이유가 없다. 국가적 증오는 무섭다. 선동해서도 안 되고, 선동 당해서도 안 된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