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29일 전국위원회를 열어 인명진 비대위원장을 추인할 예정이지만 계획대로 상황이 수습될지는 미지수다. 여전히 새누리당을 둘러싼 조건이 좋지 않은 가운데 인적쇄신 등 고강도의 조치가 가능할 것인지 의문이 제기되기 때문이다.

이날 언론들은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조만간 ‘2선 퇴진’을 선언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인명진 비대위가 출범하는 것에 맞춰 가급적 지역구에 머무는 형식으로 중앙 정치에 관여하지 않겠다는 뜻을 친박계 의원들에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최경환 의원이 이런 의사를 밝히면서 “낙동강 전선을 지키러 가겠다”고 발언한 것은 개혁보수신당 출범으로 흔들리는 TK 지지정서를 다잡기 위한 행보로도 볼 수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최경환 의원의 이런 처신은 대다수 국민의 원하는 친박 핵심에 대한 ‘인적청산’에 걸맞은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개혁보수신당의 중심축 중 한 사람인 유승민 의원은 애초 친박계 2선후퇴 등의 인적청산책에 대해 “지금까지도 2선에서 다해왔으면서 뭘…”이라고 반응한 바 있다. 실제 최경환 의원 등의 친박 핵심들은 특정 당직을 맡지 않은 상태에서 ‘좌장’을 자처하며 새누리당을 청와대에 사실상 종속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낙동강 전선’을 지키기 위해 지역구에 칩거한다고 하더라도 지금과 달라지는 게 없지 않느냐는 항변이 나오는 건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새누리당 최경환 의원이 18일 오후 대구 서문시장을 찾아 화재 피해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어쨌든 ‘모양’을 잘 갖추는 것은 정치의 기본이기 때문에 이 측면에서 기대해볼만한 대목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최경환 의원의 ‘2선 후퇴’ 선언이 또다른 친박 핵심들의 ‘결단’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그렇다. 이정현 전 대표는 정우택 원내대표가 당선되기 직전 열린 의원총회에서 자신 한 사람만 책임지면 될 문제라면서 다른 친박 핵심들에 대한 인적청산 주장을 하지 말아줄 것을 호소한 바 있다. 이 얘기는 일정한 전제가 충족될 경우 이정현 전 대표도 어떤 결단을 내릴 수 있다는 취지로 들린다. 이정현 전 대표는 “나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친박”이라고도 했는데, 결과적으로 박근혜 대통령과 새누리당에 득이 되는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감수할 수 있다는 메시지로도 들린다.

그간 친박계 인사들이 인명진 비대위원장의 인적 청산론에 대해 “법적으로 잘못한 일이 명확해지거나 스스로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들이 인적 청산의 대상을 자처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걸로 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최경환 의원은 중소기업진흥공단 취업 청탁 의혹을 받고 있다. 이 의혹은 검찰이 재수사를 하고 있는 중인데 최경환 의원에 대한 법적 책임이 명확히 밝혀질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적어도 ‘2선 후퇴’를 요구할 수 있는 주요한 근거 중 하나가 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이정현 전 대표의 경우는 앞에서 강조한 대로 ‘스스로 결단’을 내리는 경우에 포함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된다.

애초 비박계는 이른바 ‘친박 8적’에 대한 인적청산을 요구하였으나, 언론이 언급하는 인적 청산의 마지노선은 최경환, 이정현, 서청원 의원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즉, 앞서의 추론을 상기하면 남는 것은 서청원 의원에 대한 인적청산이 가능할 것인가의 문제라는 얘기다. 서청원 의원은 그간 비박계 인사들의 인적청산 주장에 강한 반발을 해왔다. 그런 만큼 서청원 의원이 스스로 결단하지 않는 경우 최경환 의원이나 이정현 전 대표가 결단을 내린다 하더라도 새누리당의 ‘인적 청산’은 완료될 수가 없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비대위원장에 내정된 인명진 목사와 서청원 의원이 같은 YS계 인사로 친분이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1대 1로 설득할 수 있는 경우가 아니겠냐는 거다. 실제 서청원 의원이 주변인들에게 탈당 가능성을 언급했다는 보도 역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서청원 의원과 가까운 인사들이 인적 청산을 쉽게 수용하지 않을 것으로 해석되는 발언을 연이어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시나리오의 가능성이 얼마나 될지는 의문이다.

새누리당 서청원 의원 (연합뉴스)

최소한의 인적청산에 실패할 경우 콘텐츠의 획기적 변화라도 노려봐야겠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다. 당장 아직까지 새누리당을 지지하는 보수층은 인명진 목사의 비대위원장 임명에 껄끄러운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인명진 목사를 비대위원장으로 추인하는 전국위원회가 열리는 29일도 국회 앞에서 보수단체가 집회를 열며 상당히 강한 톤으로 새누리당 지도부를 비난했다. 이른바 산토끼들이 완전히 등을 돌린 상태에서 집토끼들의 열광적인 지지마저 받지 못한다면 새누리당은 존속할 수 있는 최소한의 근거를 상실하게 된다.

인적 청산에서 실패하고 콘텐츠의 획기적 변화도 이뤄내지 못하면 인명진 목사는 결국 비대위원장으로서 최소한의 성공을 거두지 못하고 정계를 떠나게 될 것이다. 1월 중순 귀국 예정인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에 실질적인 정치적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을 따르겠다는 충청권 또는 중도파 의원들이 새누리당을 2차 탈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기문 사무총장은 최근 충청권 의원들을 만나 이후 정치 일정에 대한 논의를 했는데 새누리당에 몸을 담을 가능성은 미미한 분위기였다는 보도가 나오고 있다. 일부 언론 보도에 의하면 반기문 사무총장을 따르는 의원들은 “공산당만 아니면 따라갈 것”이라고까지 발언하고 있다고 한다.

29일 국민의당이 주승용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출한 것도 새누리당에 긍정적인 효과를 줄 수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주승용 신임 원내대표는 당선 직후 기자간담회에서 “친박과 친문은 우리와 정체성이 맞지 않는다. 그 외의 모든 세력은 일단 협상과 대화의 테이블에 올라와야 한다”면서 이른바 ‘제3지대 정계개편’에 힘을 실을 것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이를 통해 문재인 대 비문재인의 구도가 짜여지면 고립되는 것은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아니라 대권주자가 없는 새누리당이 될 수밖에 없다.

즉, 어떤 경우의 수를 따져봐도 새누리당이 표면적인 혁신에라도 성공해 국민의 지지를 회복하는 기회를 갖게 될지에는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29일 연합뉴스 등은 정몽준 전 의원이 탈당했고 개혁보수신당행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몽준 전 의원은 어쨌든 잠재적 대권주자의 한 사람으로 분류되는 인물이다. 또 다른 ‘잠룡’으로 평가되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도 다음달 5일 원외위원장들과 함께 탈당한다는 계획이다.

친박계 일부에서는 “TK 자민련이 될지라도 버티겠다”는 얘기도 나온다는데, 최경환 의원의 ‘낙동강 전선 방어’ 역시 그런 차원인 것으로 비치기도 한다. 그러나 유승민 의원이 개혁보수신당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TK 자민련’이라는 그림이 가능한 것인지조차도 의문이다. 즉, 새누리당의 붕괴는 시간문제가 되었다는 이야기다. 이 위기를 눈앞에 두고도 친박 좌장이라는 서청원 의원이 소탐대실의 태도를 유지할 것인지 궁금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