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의 달력이 몇 장 남지 않은 12월 27일. 보통이라면 송구영신의 주제에 억지로 꿰맞추는 영혼 없는 기사들로 채워질 시기이지만 뉴스는 여전히 국정농단의 이슈에서 끊임없이 밝혀지는 사실을 보도하기에 여념이 없다. 도대체가 끝도 없는 비리와 부패의 뿌리는 정말로 권력의 곳곳에 단단히 박혀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그래도 뉴스는 한 가지에 매몰되지 않으려는 최소한의 노력과 장치를 가져간다. 대단히 중요해서 다른 보도는 눈에 들어오지 않을 상황이라도 해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한다. 어쩌면 보도가 아닌 기록의 의미가 더 클지도 모를 일이다. JTBC <뉴스룸>에서 특히 그런 부분을 담당하는 것으로는 대표적으로 ‘밀착카메라’ 코너를 예로 들 수 있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에 온 관심이 타오를 때에 ‘500원 순례길’이라든가, 광화문 촛불집회처럼 크지 않아서 사람들의 이목을 끌지는 못하지만 흔들리지 않는 신념으로 1년째 노숙을 하는 소녀상 지킴이들을 알리는 ‘또 겨울 맞은 소수 농성자들’ 같은 보도들이 그렇다.

그런데 27일의 <뉴스룸>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뉴스룸>의 인기코너인 ‘팩트체크’와 ‘밀착카메라’에 이어서 ‘앵커브리핑’까지 한 가지 주제를 다뤘다. ‘팩트체크’는 1년을 맞은 ‘한일 위안부 합의’의 파기나 재협정에 대한 법적, 외교적 가능성 여부를 확인했고, ‘밀착카메라’는 무려 165일 동안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기 위해 노숙을 하고 있는 소녀상 지킴이들과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모여 지내는 나눔의 집을 찾았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리고 ‘앵커브리핑’은 왜 위안부 합의가 문제인지를 특유의 어조로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특히 이번에는 더욱 단호하게 전하려 했다. 손석희 앵커가 마지막으로 한 멘트는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였다. 보통 기사나 뉴스에서의 동어반복은 금기사항이다. 그것을 모를 리 없는 손석희가 그런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살아 있다는 말의 의미를 강조하는 것인 동시에 그렇지 않은 현실에 대한 역설을 전하고자 한 것 같다. 정부에 등록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은 총 238명. 그 중 현재 생존자는 29명뿐이다. 올해만도 일곱 분의 피해 할머니들이 세상을 떠났다. 나눔의 집에 거주하는 할머니들의 평균나이가 91세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나는 살아 있다”의 중의적 의미에 가슴이 사무치게 된다.

남은 39명의 할머니들이 모두 세상을 떠나도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하고, 배상하기 전에는 끝나지 않는 싸움이라는 것이다. 일본 대사관 앞 소녀상을 지키는 또 다른 소녀의 말이 그것을 증명한다. 배화여대 재학 중 작년 한일 간의 합의가 졸속으로 강행되자 곧바로 소녀상 지킴이로 나섰다는 최혜련 씨는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제가 그때 태어났으면 같은 일을 당했을 수도 있는 것"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그리고 또 다른 살아있음의 유전을 앵커브리핑은 전했다. 올해 12월 세상을 떠난 박숙이 할머니는 남해 숙이공원에 서 있는 또 한 명의 숙이를 만났다. 생전이 박숙이 할머니가 동상의 손을 잡고 “니가 숙이가? 내도 숙이다”라고 건넨 평범한 대화에서 견디기 힘든 비애가 북받침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더해지는 임진왜란 때의 이순신 장군의 일화. 왜군의 계책에 넘어가 왜군과 싸우지 말라는 명나라 칙사가 조선군에 내린 명령 ‘금토패문’에 이순신 장군이 격노한 내용이었다.

세월호에 국민 304명이 가라앉을 때 한 명도 구해내지 못했던 그 정부는 작년 이제 합의됐다고, 싸움이 끝났다고 했다. 그러나 시민들은 누구도 그 명령을 받들지 않았다. 1992년 1월 8일 시작되어 한 주도 거르지 않았던 수요집회는 계속되었고, 21016년 12월 28일에도 올해 마지막인, 1263번째 수요일 싸움이 열렸다.

부산 시민단체가 28일 부산 일본영사관 앞에서 기습적으로 소녀상을 설치한 가운데 구청 직원들이 소녀상에서 연좌농성을 벌이던 시민을 강제로 끌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24년의 싸움, 1263번의 싸움 그리고 265번의 노숙. 그들의 싸움을 손석희는 이렇게 번역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나는 살아 있다.

그리고 같은 날 부산 일본 영사관 앞. 시민들이 설치한 소녀상은 4시간 만에 강제 철거되었다. 그 와중에 이를 저지하던 시민 13명이 연행되었으며 소녀상은 트럭에 실려 갔다. 작년 일본 대사관 앞의 소녀상 지킴이들은 한겨울에도 방한 텐트 없이 지내야 했다. 인권위조차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런 모든 일들을 시킨 대통령이 탄핵되었다. 그렇지만 질문이 남는다. 진정 그 시대는 끝이 났는가?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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