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민주자유당을 뿌리로 하는 보수정당이 둘로 갈라지고 말았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인사들 29인은 27일 오전 탈당을 선언하고 오후에 의원총회를 열어 원내대표로 주호영 의원, 정책위의장으로 이종구 의원을 합의 추대했다. 이들은 또 탈당 직후 개혁보수신당이란 이름의 원내교섭단체를 등록했다. 이에 따라 121석의 더불어민주당, 99석이 새누리당, 38석의 국민의당, 29석의 보수신당이라는 원내 4당 체제가 개막됐다.

새누리당에 잔류하기로 한 친박계는 떨떠름한 표정이다.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애초 비박계가 35명 이상 탈당을 자신하였다는 점을 언급하면서 “1차 탈당이 실패했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정우택 원내대표가 주장하는 대로 비상시국위원회의 주요 멤버로서 활동해 온 나경원 의원을 포함한 5인이 애초 알려졌던 탈당 예정자 명단에서 빠지면서 개혁보수신당 측의 기세가 주춤한 것은 사실로 보인다.

누리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및 원내대표가 23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국가변혁을 위한 개헌추진회의' 간담회서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경원 의원 측은 유승민 의원이 주도하는 ‘좌클릭’에 문제의식을 느껴 탈당을 미뤘다면서 개혁보수신당이 좀 더 시장주의적인 정강 정책을 만드는 것을 전제로 새누리당 내 더 많은 의원들을 조직해 2차 탈당을 주도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모양새가 다소 ‘이상한’ 것은 사실이다. 애초 주호영 의원이 새누리당 정우택 원내대표가 당선된 경선에 출마할 의사를 갖고 있었으나 비박계 내부의 논의를 통해 나경원 의원으로 정리됐었고, 개혁보수신당의 원내대표로 주호영 의원이 추대된 사실을 고려하면 더 그렇다.

물론 나경원 의원 측은 탈당을 보류한 원인이 원내대표 등 당직에 관한 문제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어쨌든 나경원 의원이 탈당을 보류해 개혁보수신당이 출범하는 날 삐그덕 대는 모양새를 만든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경원 의원이 탈당을 보류한 이유에 대해선 개혁보수신당의 양대 축인 유승민 의원이나 김무성 의원 모두 “이유를 모르겠다”고 반응하고 있다.

탈당 흐름에 찬물을 끼얹은 것은 나경원 의원 뿐만이 아니다. ‘친이계’로 평가받는 권영진 대구시장은 27일 송년 기자간담회에서 탈당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여의도 정치권이 요동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럴 때일수록 무겁게 행동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큰 울림이 있을 때 움직일 것이다. 지금은 때가 아니다”라고 발언했다. 일단은 대구시장 재선을 노리는 행보로 보이지만 원희룡 제주지사도 탈당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고, 먼저 탈당한 남경필 경기지사 역시 개혁보수신당 참여를 1월 24일 공식 창당 이후로 못 박고 있는 것을 보면 더 생각해봐야 할 정치적 의미가 실린 결정으로 비치기도 한다.

어쨌든 당분간 잔류를 선택한 인사들 중 일부가 다시 행동에 나설 시점을 예상해보자면 일단 1월 5일을 떠올려볼 수 있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새누리당 원외당협위원장 30여명은 이날 집단으로 새누리당을 탈당할 계획을 밝힌 바 있다. 나경원 의원이 탈당을 보류한 주요한 이유가 정강 정책의 ‘좌클릭’ 문제라고 본다면 이 날 오세훈 전 시장과 나란히 서는 건 합리적 선택으로 볼 수도 있다. 오세훈 전 시장은 무상급식 등의 ‘포퓰리즘’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서울시장직을 건 주민투표를 밀어붙인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오세훈 전 시장과 나경원 의원 등이 이후 개혁보수신당 내 시장주의자를 자처하는 인사들을 규합해 ‘중부담 중복지’ 등의 ‘좌클릭’을 주도하고 있는 유승민 의원의 고립을 꾀하는 시나리오도 상상해볼 수 있다. 이 경우 김무성 전 의원의 대선불출마 선언으로 유승민 독주체제가 된 개혁보수신당 내 대권구도는 오세훈 전 시장과 나경원 의원 등으로 다극화될 가능성도 농후하다. 개혁보수신당의 정강 정책은 결국 대선후보의 공약사항과도 밀접한 연관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비박(비박근혜)계 의원 29명이 27일 오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개혁보수신당 기자회견에서 '개혁보수신당'(가칭) 창당을 공식 선언한 뒤 "열린 정치" "따뜻한 보수" 피켓을 들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의 인명진 비대위 체제가 남는 것을 선택한 의원들의 탈당명분을 앞으로 축소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부담 요인이다. 인명진 비대위원장 내정자는 최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친박계 핵심인사들에 대한 인적청산을 예고하는 발언을 한 바 있다. 인적청산의 대상으로 지목된 친박계 인사들은 떨떠름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인명진 비대위에 협력하겠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으나, 서청원 의원 측이 부정적인 발언을 내놓음으로써 논란은 확대되고 있다.

서청원 의원의 최측근이라는 이우현 의원은 27일 새누리당 원내대책회의에서 인명진 비대위원장 내정자의 발언에 대해 “혁신이 아니라 오히려 당 분열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발언해 불편한 신경을 내비쳤다. 서청원 의원 측이 이렇게 나오는 것은 인명진 비대위가 인적청산을 시도한다면 서청원, 최경환, 이정현 의원은 반드시 포함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로 이 요구를 받아들이지 못해 분당을 감수했는데, 인명진 비대위가 같은 조치를 취하려 든다면 친박계 핵심인사들은 저항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어쨌든 인명진 비대위가 1월 5일 이전에 반드시 친박계 인적청산이 아니더라도 가시적인 개혁조치를 내놓고 여론의 지지를 받을 수 있다면 새누리당에 일단 잔류하기로 결정한 비박계 인사들은 정치적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는 신세가 된다.

여기에 중도파 의원들의 이후 행보까지 더해서 생각하면 새누리당 탈당과 개혁보수신당 입당을 둘러싼 문제는 고차방정식의 형태를 띄게 된다. 정진석 전 원내대표 등 중도파 의원들의 탈당 여부는 순전히 반기문 사무총장의 귀국 이후 정치 행보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만일 인명진 비대위가 그럴듯한 개혁안을 만들어 일정 정도 이상 여론을 수습할 수 있다면 반기문 사무총장은 새누리당에 들어오진 않더라도 개혁보수신당에 몸을 싣는 것을 주저할 수밖에 없게 된다. 반기문 사무총장의 관망이 계속되면 중도파 의원들의 탈당 결행 시점도 늦어질 수밖에 없다.

개헌을 매개로 한 정계개편 논의의 진행 상황도 새누리당 내에 남아있는 비박계 의원들의 머릿 속을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 중 하나다. 유승민 의원은 최근 “안철수 국민의당 전 공동대표와는 함께 할 수 있지만 박지원 원내대표와는 안보관이 달라 함께할 수 없을 것”이란 취지의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국민의당에 대한 ‘분리견인’ 시도로 볼 수 있는 발언이다. 안철수 전 공동대표는 결선투표제를 고리로 해 ‘8인 회동’을 제안하는 등의 수를 통해 더불어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을 서로 분리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내의 비주류를 역시 ‘분리견인’ 하겠다는 뜻 아니겠느냐는 거다.

어떤 시나리오든 개혁보수신당을 둘러싼 논란이 가치와 노선이 아닌 유력 대권주자와 ‘정략’ 중심으로 진행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박근혜 정권의 탄생과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사건 원인이 일회적 일탈이 아니라 보수정치의 정치 풍토 그 자체에 있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요컨대 개혁보수신당에 가느냐 마느냐보다는 보수정치 자체에 대한 근본적 반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하고, 그 반성의 결론은 가치와 노선의 변화를 추동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이날 탈당을 선택하지 못한 비박계 인사들이 이런 생각을 가슴에 품고 있는지는 조만간 확인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