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모에게 큰 일이 났다. 그토록 믿었던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박사모의 배신을 때리고 말았다. 지난 19일 채널A에 출연한 자리에서 "촛불집회는 작동하는 민주주의"라고 칭찬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는 거다. "미국인들도 이를 지켜보면서 감탄하고 있다"는 말까지 덧붙이면서. 미국만 하늘같이 바라보고 있던 자칭 애국보수들로선 뒤통수를 맞은 것이나 다름없게 됐다.

생각해 보라. 요즘 촛불을 꺼트리자고 맞불집회를 펼치느라 여념이 없는 저들 애국보수들에게 리퍼트 대사는 어떤 존재였던가. 아름다운 나라 미국에서 건너오신 거룩한 대사님이시다. 대한민국같이 하찮은 나라를 구원하기 위해 미국을 대표하고 대신해서 은총처럼 주어진 귀하디귀한 존재다. 그런 그가 지난해 강연회 도중 한 괴인에게 피습당했을 때, 이 땅에서 펼쳐졌던 기상천외한 퍼포먼스를 기억하는가?

지난 15일 구국채널 등 보수성향 단체 회원들이 9일 오후 서울 광화문 주한미국대사관 인근에서 마크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하며 성조기를 흔들고 있다.(연합뉴스)

그야말로 난리가 아니었다. 쾌유를 기원한답시고 상상불가의 별의별 짓을 다 했으니까.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한성총회 소속 신도들이 일명 ‘리퍼트부채춤’을 춰댔다. 뿐인가. 난타공연도 했다. 아, 발레공연도 빼먹으면 안 되겠지. 이렇게 해야 상처가 빨리 아무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AP, 폭스뉴스 등 외신에까지 소개됐으니 한국의 성의를 보여주려는 목적은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이게 다가 아니었다. 신동욱 공화당 총재는 석고대죄한다며 단식하질 않나, 어떤 70대 노인은 느닷없이 개고기를 대령하질 않나. 또 리퍼트 대사의 쾌유를 기원한다며 삼보일배를 하질 않나, 생뚱맞게 인공기를 구해 와서 불태우질 않나, 암튼 이들이 벌인 꼴불견 때문에 "부끄러움은 왜 우리 몫이냐"고 고개를 떨궜던 이들이 한둘이 아니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낯부끄럽다.

리퍼트 대사를 향한 지극정성이 어느 정도였는지 감이 오시는가? 그런데 이렇게 아끼고 사모하고 숭배하던 리퍼트 대사 입에서 촛불집회를 지지하고 칭찬하는 발언이 나오다니, 오호 통재라 이를 어찌할꼬. 일이 이 지경이 되고 보니 당장 애국보수들로선 운신하기가 여간 껄끄럽게 됐다. 리퍼트 대사를 따르자니 맞불집회가 울고, 맞불집회를 따르자니 리퍼트 대사의 존엄을 거스르는 꼴이 되고 말이다.

뿐이랴. 촛불을 꺼트리기 위해서 발버둥치던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이며 그쪽 동네 유명인사들의 입장도 궁해지긴 마찬가지다.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지게 마련"이라는 명언으로 LED촛불을 유행시킨 김진태 의원이나 "촛불집회는 종북세력의 조직적 선동"이라며 시대착오적인 색깔론을 읊조리던 김종태 의원, "촛불을 꺼트려야 한다"고 악을 쓰던 정미홍 등은 이제 뭐라고 말할지 궁금하다.

대한민국의 정치지형을 바꾼 촛불의 아름다움을 극찬한 이들은 리퍼트 대사만이 아니다. 온 세계는 말할 것도 없고 심지어 지난 8월 탈북한 북한 태영호 전 영국 주재 북한대사마저 최근 국회에 공개출석해서 "(촛불집회를 보고) 신선한 충격과 함께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됐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말이다. 그러고 보면, 촛불을 꺼트리기 위해 발악하는 이들이야말로 진짜 종북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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