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에 대한 국조특위는 우여곡절 끝에 최순실 씨,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 국정농단 의혹 핵심 관계자들로부터 직접적인 입장 표명을 듣는데 성공했다. 이들의 증언은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것도 있고 전혀 다른 사실을 가리키는 것도 있다. 특검의 역할이 더 중요해졌으나 기대해볼만한 수사결과가 나올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이들의 주장을 요약 비교하자면 이렇다. 최순실 씨는 자신에게 제기된 대부분의 혐의를 부인했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장모 등을 모두 모르는 사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미르재단, K스포츠재단에 대해서도 자기 아이디어가 아니라고 했고 박근혜 대통령과 자금 모금에 공모하였다는 의혹이나 독일 자금 은닉설 등에 대해서도 모두 부정했다. 최순실 씨는 또 의혹의 중심에 있는 ‘태블릿PC’에 대해서도 본 적은 있지만 자신의 것도 아니고 사용할 줄 모른다고 답했고 특히 정유라 씨의 대입 특혜에 대해선 강한 어조로 부인했다고 한다.

안종범 전 수석의 경우는 최순실 씨를 본 적은 있지만 실체를 알지는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 대목은 최순실 씨가 이들 간의 관계를 일관되게 부정한 것과는 다소의 차이가 있는 대목이다. 안종범 전 수석은 또 의혹의 대상이 되는 모든 일을 대통령이 결정하고 지시했으며 자신은 이행했다고 주장했다. 해석을 해보자면 박근혜 대통령과 최순실 씨의 관계가 어떤지는 알지 못했으나 자기는 시키는 대로 일한 죄밖에 없다는 항변으로 볼 수 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은 자신이 일부 공무상 비밀을 누설한 것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분위기다. 최순실 씨에게 일부 연설 자료 등을 넘겨주고 이에 대한 의견을 들은 일이 있고 또 최순실 씨가 연설 자료에 밑줄을 치거나 수정을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그러나 정호성 전 비서관은 최순실 씨가 정부 인사에 관여하였다는 의혹은 부인하면서 인사 내용을 발표하는 자료를 최순실 씨에게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이러한 발언은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일부 연설문 등 작성에 도움을 받은 사실이 있다”고 한 것과 거의 일치하는 걸로 볼 수 있다. 정호성 전 비서관의 발언 중 박근혜 대통령의 대국민담화와 일치하지 않는 부분은 2015년에도 자료 유출이 이뤄졌다는 대목 뿐이다.

박범계 더불어민주당 국정조사 청문회 간사를 비롯한 청문회 의원들이 26일 오후 서울 구로구 남부구치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현장 청문회'에서 안종범, 정호성 증인과 면담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결국 각자 발언의 차이가 드러나긴 했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은 박근혜 대통령이 그간 해온 해명과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 내용을 말한 것이다. 이들이 어느 정도 법적 대응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는 점이 확인된 이상 특검 수사가 얼마나 진전을 이루는지가 더 중요해졌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특검 수사가 성공을 거둘 수 있을 것인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박영수 특검팀은 26일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자택 및 집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이른바 ‘문화계 블랙리스트’ 의혹을 수사하기 위한 것이다. 시작은 문화계 블랙리스트가 되겠지만 이 수사는 결국 사망한 김영한 전 민정수석 비망록에 있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사항 전반에 대한 것으로 확대될 예정이다.

그러나 특검팀은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임을 벌써부터 전망하고 있다. 박영수 특검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 수사에 대해 “가장 힘든 수사가 될 것이다. 그 양반 논리가 보통이 아니다”라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스1 등은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압수수색을 대비해 이미 지난 주 증거자료를 모두 빼돌린 정황이 포착됐다고 보도했다.

뉴스1 보도에 등장하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이웃 주민들은 지난 주 쯤부터 낯선 차들이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자택에 들어가 짐을 빼냈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 논리가 강한 인사가 증거를 선별해 인멸했다는 의혹으로 특검팀에겐 그야말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증거인멸에 나섰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건 조윤선 장관도 마찬가지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조윤선 장관은 지난 9월 초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으로 임명됐는데 한 달쯤 뒤에 자신의 집무실에 있는 컴퓨터 교체를 지시했다고 한다. 이 컴퓨터는 연한이 지나지 않은 것이었는데, 문체부 관계자에 따르면 이 컴퓨터에는 조윤선 장관이 청와대 정무수석이던 때 관여한 것으로 알려진 ‘블랙리스트’ 관련 자료가 있었다는 것이다.

이 의혹과 관련한 증거인멸 행위는 또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예술정책국 예술정책과 컴퓨터 2대의 하드디스크가 지난달 초에 교체됐다는 것이다. 이는 검찰이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 과정 특혜 의혹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한지 일주일이 채 안 된 시점이다. 특검팀은 증거인멸 혐의가 나올 경우 이에 대한 수사를 따로 진행한다는 입장이지만 법을 잘 아는 사람들이 전문가적 조치를 취한 상태에선 성과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수사하는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26일 오전 서울 종로구 평창동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 자택을 압수수색, 수사관들이 압수품을 들고나오고 있다. (연합뉴스)

한겨레는 27일자 1면에서 과거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김진태 검찰총장에게 수시로 전화를 걸어 통화를 했고 그 결과 2014년 말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에서 정윤회 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 진행을 막은 일이 있다고 보도했다. 이는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 나오는, 검찰을 ‘지도’한다는 표현과도 일맥상통한다. 김기춘 전 비서실장이 검찰 수사까지 주물렀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상황인 것이다.

박영수 특검팀은 수사 과정에서 인지한 새로운 사실들에 대하여 수사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대목에 대해서도 의지를 갖고 수사 진행을 할 수 있다. 그러나 검찰이 스스로 법적 권한이 없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수사개입을 인정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제3자 뇌물수수 혐의 입증을 위해서는 삼성 등 기업을 수사해야 한다는 점도 부담이다. 결국 이래 저래 보면 특검팀은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어려운 싸움을 해야 하는 입장인 셈이다. 이런 판국에서는 국민여론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특검팀의 의지도 꺾일 수밖에 없다. 언론 보도와 국민여론의 힘이 더욱 중요해진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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