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성당 앞을 지나는 시민 여러분,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은 원천무효입니다. 원천무효를 알리기 위해 민주당 의원들이 거리로 나섰습니다. 소중한 시간 내어 서명 부탁드립니다.”

7월31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성당 앞, ‘언론악법 원천무효 천만인 서명운동’을 시작하기 위해 민주당 의원 여럿이 모였다. 사직서를 제출한 천정배, 최문순 의원을 비롯해 이종걸, 추미애 의원까지. 가만히 있으면 땀이 흐르는 제법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약 2시간 동안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언론악법’ 홍보물을 나눠주며 정중하게 서명을 부탁했다.

▲ 7월31일 오후 6시 서울 명동성당 앞, 민주당 의원들이‘언론악법 원천무효 천만인 서명운동’을 하고 있다. ⓒ송선영

금요일 오후, 명동 거리는 사람들도 북적였다. 한국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과 ‘일단 들어와 보라’며 적극적으로 손님 유치에 나선 상인들, 다정하게 손을 잡고 걸어가는 커플들까지. 활기가 넘쳤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명동 거리에서 서명운동을 하면 조금 더 수월할 법 한데도, 민주당 의원들은 굳이 명동성당을 고집했다. 명동성당이 과거 민주화투쟁의 성지였다는 점 때문이다. 민주주의가 실현돼야 할 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많은 논란을 떠안은 언론관련법이 직권상정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민주주의 위기를 의미하기에 민주화투쟁의 성지에서 원천무효를 주장한다는 것이었다.

서명운동을 시작한 지 몇 분이 흘렀을까, 지나가는 시민들이 서서히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민주당 당직자들이 나눠주는 홍보물을 본 뒤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도 있었지만, 자발적으로 서명에 참여한 시민들이 더 많았다. 시민들은 서명에 참여한 뒤 자신들이 좋아하는 의원들과 악수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당초 서명을 받는 곳 앞에서 시민들을 반기던 의원들은 각자 역할을 찾아 거리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종걸 의원은 마이크를 잡았고, 최문순 의원과 추미애 의원은 홍보물을 들고 직접 시민들에게 다가갔다. 천정배 의원은 서명을 마친 시민들과 악수를 하며 일일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김희선 전 의원의 활약도 대단했다. 지나가는 차를 세운 뒤 창문을 열게 만들었고, 창문 안으로 읽어보라고 홍보물을 건네주는 대단한 활약을 보였다. 그러나 차를 세운 운전자 중 그 누구도 김 전 의원을 향해 화를 내지 않았다.

이종걸 의원이 마이크를 잡고 지나가는 시민들을 향해 말하기 시작했다.

“더운 여름입니다. 많은 분들이 재충전을 위해 휴가를 가셨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희들은 거리로 나왔습니다. 지난 7월22일 국회에서 한나라당이 언론관련법을 날치기 강행 처리하는 것을 보셨을 겁니다. 불법과 탈법으로 얼룩진 언론악법이 원천무효라는 것을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이 자리에 나왔습니다. 언론악법은 언론 표현의 자유를 말살할 것입니다.”

▲ ⓒ송선영

지난해 여름부터 최근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때까지, 늘 거리에서 시민들과 함께 했던 ‘노숙 전문’ 최문순 의원에게 ‘힘들지 않냐’고 묻자 “만날 하던 일인데 뭐가 힘드냐”며 환하게 웃는다.

최 의원은 “다른 곳에 가서 서명을 받을 수도 있지만 1987년 민주항쟁의 상징, 민주주의의 상징인 이곳에서 서명을 받는 것이 의미있다고 생각했다”며 “시민들의 반응이 대단히 좋고,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아서 힘이 된다”고 말했다.

그는 사퇴와 관련해 “국회의원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사퇴한 것에 대해 국민여러분께 죄송하지만 국회의원으로서의 특권을 버리고 더 낮은 자세로 국민여러분과 함께 하기 위해 한 것”이라며 “이명박 정권 들어 KBS 정연주 사장 해임, YTN노조원 해직, <PD수첩> 수사 등에 대해 제 역할을 하지 못했고, 언론악법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한 책임을 져야했기 때문에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서명을 한 시민들을 향해 연신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던 천정배 의원에게 직접 거리로 나온 소감을 물었다.

“시민들의 반응이 뜨겁고, 특히 젊은 분들이 많이 서명에 참여한 것을 보고 우리나라의 미래는 밝구나 싶었다. 국회 안에서도 민심을 알 수 있지만 거리로 직접 나온 것과는 다소 온도 차이가 있을 수 있지 않나. 직접 나와서 홍보를 해보니 좋다. 거리로 나온 게 전혀 힘들지는 않다. 사퇴서를 낸 것이 아쉽거나 속상하지는 않는데 다만 사퇴서를 내게 된 이러한 상황이 원통할 뿐이다.”

▲ 추미애 의원이 시민들에게 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다. ⓒ송선영

이날 가장 인기가 좋은 의원은 추미애 의원이었다. 일부 시민은 직접 추 의원을 찾아 악수를 청하기도 했고, 사인을 요청하기도 했다.

추 의원은 이 자리에 나오게 된 이유에 대해 “언론자유의 위축은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시발점이 될 것”이라며 “여기에서 방어하지 못하고 지켜내지 못한다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기에 거리로 나왔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게 된다면 용산 참사와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하더라도 방송에서 정부의 실정을 비판하고 제대로 알리기는 힘들 것”이라며 “한나라당이 민생을 이야기 하고 있는데 정말 민생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언론자유는 민주당 당 차원을 넘어선 것으로 파시즘으로 넘어갈 수 있는 위기에 있기에 힘들지만 함께 할 것”이라고 말했다.

▲ 명동성당을 지나던 수녀님들도 서명에 참여하고 있다. ⓒ송선영

이날 2시간 동안 명동성당 앞에서만 600여명의 시민들이 서명에 참여했다. 그래서인지 서명운동 홍보에 나선 의원들의 표정은 밝았다. 민주당은 서울 뿐 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 서명운동을 이어가 모두 천만의 서명을 받는다는 계획이다.

한나라당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이날 서명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이들이 ‘20대’라는 점이다. 그것도 여성들의 서명 참여가 도드라졌다. 이는 앞으로 사회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될 젊은이들이 한나라당의 언론관련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가 잘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문득 궁금해졌다. 언론관련법 파문 이후 “서민 경제를 살리기 위한 행보에 주력하겠다”고 강조하고 나선 한나라당 의원들이 똑같은 자리에서 ‘언론관련법은 악법이 아니다’라는 서명을 받기 위해 나섰을 때 이를 본 시민들이 어떠한 표정을 지을지 말이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건네는 홍보물을 온전히 받을지, 그들이 건네는 손을 덥석 잡은 채 악수를 할 지, 거리로 나와 직접 확인해 보시길 적극 권유한다.

거리에서 만난 시민들은 언론관련법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럴 수는 없는 거다. TV를 통해서 중학교 1학년, 초등학교 5학년 아이들과 함께 그 과정을 봤는데 부끄러워서 설명해줄 수가 없었다. 그 뒤에 설명해 줬더니 아이가 ‘우리만도 못하네’라고 말을 했다. 민의의 전당 국회에서 국민을 우롱하고 기만했다. 지금 언론만큼 서민을 대변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것도 없다.” (한 여성)

“국민의 뜻을 무시한 독재적인 발상이다. 정파적인 이익을 위해 민주주의를 기만하고 훼손한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보고 있다.” (김 아무개씨)

“미국과 캐나다에서 공부해 한국 정치 상황을 잘 모르겠지만, 언론관련법은 장기집권을 위한 것으로 보인다. 대리투표와 같은 것은 외국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 아무개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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