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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정가의 키워드는 '배신의 정치'이 나라에서 배신당한 사람들은 국민이다
문한별 칼럼니스트 | 승인 2016.12.22 12:57

요즘 대한민국 정가에서 가장 뜨고 있는 단어가 있다. 바로 배신이다. 조폭영화나 느와르에서나 자주 접할 법한 섬뜩한 이 단어가 여권‧야권을 막론하고 도처에서 횡행하고 있다. 외국의 한 시인은 4월을 '잔인한 달'이라 노래 불렀다는데, 탄핵 이후를 저울질 하고 있는 정치인들에게 12월은 '배신의 달'로 여겨지지 않을까 모르겠다.

알다시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친박‧비박으로 갈려 싸우는 새누리당 의원들이 가장 애용하는 단어가 배신이다. 비박계의 좌장이랄 수 있는 김무성 전 대표는 일전에 국가적 혼란에 책임 지는 의미에서 대선 출마의 꿈을 접겠노라고 공식 발표하는 자리에서 이렇게 직격탄을 날렸다. "박 대통령은 국민을 배신하고, 새누리당도 배신했으며, 헌법을 심대하게 위반했다" 운운.

친박계 좌장격인 서청원 의원 역시 기다렸다는 듯 "(박근혜는) 하늘에서 내려준 인물인데, 대통령인데 이렇게 칭찬하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침을 뱉고... 배신의 정치 이런 것은 보수정당에서 더 이상 있어선 안 된다"고 김무성을 정조준했다. 갑자기 돌변해서 침을 뱉는 것은 보수정당에서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배신의 정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연합뉴스 자료 사진

양자 간의 대립과 막말은 비박계의 탈당 내지는 분당 움직임이 가시권에 접어들면서 더욱 심화됐다. 김무성 전 대표와 유승민 전 대표를 싸잡아 "먹던 밥상 엎어버리고 쪽박까지 깨는 인간 이하의 처신", "부모 형제 내친 패륜아들", "박근혜 정권의 피해자인 척 ‘코스프레’하는 배반과 배신의 아이콘", "대통령 탄핵을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악용하는 막장 정치의 장본인"이라고 퍼부은 이장우 최고위원의 욕설 4콤보는 그 결정판이라 할 만하다. 

비박계로 꼽히는 김용태 의원 역시 이에 질세라 "최순실 사태는 ‘배신의 정치’의 결정판”이고 “대한민국 공화국에 대한 배신이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대한 배신”이라고 '배신의 3중주'로 맞받았지만, 욕설의 데시벨이나 퀄리티 면에서 친박에 미치지 못하였다. "배신의 정치를 응징해야 한다"는 박근혜 정신으로 철저히 무장한 친박의 화력을 비박이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이렇듯 배신의 노래가 여의도에서 시끄럽게 울려 퍼지는 와중에 또 다른 배신의 노래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 들려왔다. 그 주인공은 '기름장어'란 낙네임을 갖고 있는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다. 한때 '포스트 박근혜'를 잇는 새누리당의 대선주자로 공공연히 떠받들여졌던 그가 최근 박근혜 정부를 향해 "국민의 신뢰를 배신했다"고 포문을 연 것이다. 올바른 국정운영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서 국민이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면서.

반기문의 이런 움직임에 대해 언론은 그가 귀국을 앞두고 친박과의 거리 두기에 나선 것으로 해석했다. 박근혜 탄핵 이후 돌변한 정치지형에 따라 옛사랑을 버리고 새로운 짝짓기에 나선 것 아니겠느냐는 거다. 사정이 이렇다면 새누리 쪽에서 응당 반기문의 배반적인 움직임을 꾸짖는 목소리가 나올 법 하지만 정작 반기문의 선창에 대한 답가가 흘러나온 곳은 민주당 진영이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연합뉴스 자료사진)

"당신은 배신자다." 친노의 대표주자로 널리 알려져 있는 안희정 충남지사는 유엔 사무총장 임기를 마치자마자 대선판에 뛰어든 반기문을 향해 일갈했다. 김선일 피살사건 당시 장관직에서 사퇴하라는 압력을 막아주고 또 유엔 사무총장이 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주는 등 노무현 전 대통령으로부터 큰 은혜를 입었음에도 그가 노 대통령 측의 추모 요청을 거절한 것은 명백한 인간적 배신행위라는 것이다.

안 지사의 비난에 대해 반기문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인격모독"이라고 발끈하면서 "2011년 노 전 대통령의 묘소가 있는 봉하마을을 참배 차 다녀왔고, 해마다 1월 1일이면 늘 권양숙 여사께 안부전화를 드린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그 해명은 즉각 조소로 되돌아왔다. "자신을 위해 모든 노력을 다했던 노 대통령의 그 슬픈 죽음에 현직 대통령 눈치 보느라 조문조차도 안 했던 분의 입에서 그런 말 듣는 것조차 민망스럽기 그지없습니다" 운운.

이 모양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사방에서 들려오는 배신 타령으로 2016년 세밑은 여전히 소란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이들은 알까? 이 나라에서 정말 배신당한 사람들은 국민이고, 위정자들의 배신으로 가장 큰 상처를 입은 것도 국민이며, 이들의 배신에 가장 치를 떨고 있는 것도 국민이란 사실을. 그 앞에서 '박근혜 배신'이니 '노무현 배신'이니 하며 서로를 물어뜯는 소리들은 촛불의 온도만 높이는 불쏘시개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니 제발 그놈의 배신자 타령은 이제 그만~!  

문한별 칼럼니스트  webmaster@media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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