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중동에 방송과 ‘권력 위의 권력’을 넘겨주게 될 ‘언론악법’ 불법 날치기 전쟁의 최대의 패배자는 민주당도 언론노조도 아니다. 국민 여론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상황을 놓고 보면, 언론악법 저지를 위해 치열하게 투쟁한 언론노조와 민주당을 비롯한 야권은 비록 ‘전투’에서는 패배했을지 몰라도 ‘전쟁’에서는 이긴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여의도통신
그렇다면, 2MB 정권의 ‘언론장악 7대악법’으로 시작된 입법전쟁의 최대 패배자는 누구일까? 아무리 따져 봐도 박근혜 의원이 아닐까 싶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에 대한 호불호와 지지 여부 등에 따라 다양한 평가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일단 여론조사 결과라는 손에 잡히는 수치상으로 박근혜 의원은 입법전쟁 최대의 패배자로 불릴 만하다.

뷰스앤뉴스는 정치전문 컨설팅업체인 <윈지코리아컨설팅>이 지난 24~25일 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를 인용, 박 전 대표의 행보와 관련 ‘일관성이 없고 입장변화의 명분도 적어, 문제가 있었다고 본다’는 응답이 57.1%로 조사됐다고 27일 보도했다.

박근혜, 대선후보 선호도 20%대로 처음 추락

비판여론은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추락으로 그대로 이어져, 박 전 대표는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 조사에서 28.2%를 기록하며 20%대로 내려앉은 것으로 보도됐다. 친박 진영에서도 대선후보 선호도가 20%대로 주저앉은 데 대해 충격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반면 친이 진영은 인과응보라는 식의 냉소적 반응을 보여, 향후 한나라당 계파간 파워게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한나라당 내 잠재적 대선 후보군 사이의 물밑 경쟁이 본격화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또한 이번 신문법과 방송법 등의 날치기 불법 처리가 몰고 온 심각한 후유증 중의 하나다.

한나라당의 차기 대선 경선 구도의 중심에 박근혜 의원이 자리잡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근본적인 상황 변화가 없는 한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등이 박근혜 의원에게 차기 대권이 넘어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점이다.

이제 이번 입법전쟁과 박근혜의 예측을 뛰어넘는 갈 지(之)자 행보를 통해서 박근혜의 실체와 한계를 파악한 잠재적 경쟁자들이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의 총대를 멘 배경에 대해서는 지난 기사에서 언급한 바 있거니와, 당장 자유선진당과 이회창 총재가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의원의 틈을 비집고 들어올 태세다. 내년 지방자치 선거를 앞두고 충청권 출신 인사의 총리 기용과 정책 연합 등의 얘기가 흘러나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이번 날치기 이전까지는 김문수 경기도지사를 박근혜 의원의 견제 내지 대안으로 이명박 대통령이 염두에 두고 있다는 얘기가 설득력있게 나돌았다. 안상수 원내대표도 언론악법에 대한 여야협상이나 불법 날치기 처리 과정에서 보여준 행보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의 신임을 굳히게 되었다고 자평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 의원 입장에서는 이런 당 안팎의 경쟁자들과 상대하는 문제보다 당장 자신을 그토록 열렬히 지지해 왔던 ‘박사모’ 회원 등 지지자들과 자신을 따르는 한나라당 내 국회의원들과 친박연대 소속 의원들에게 실망감과 함께 한계를 보여 준 것이 더욱 뼈아프게 됐다.

보통 사람도 그렇지만, 특히 정치인은 절체절명의 순간에 부닥쳐 봐야 본질과 한계가 드러난다. 박근혜 의원은 그동안 실제 여부와 상관없이 ‘원칙주의자’로 당 안팎에서 평가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 불법 날치기 처리과정에서 박근혜가 지켜왔다는 원칙이라는 것이 얼마나 ‘허약, 빈약, 취약’한 것인지 여실히 드러났다.

▲ 미디어법을 둘러싼 여야간 대치와 관련해 끝까지 대화와 타협을 통해 합의처리해야 한다고 밝힌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15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이해봉 의원과 얘기를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신문법·방송법 제대로 이해했는지 의심 가

그 뿐만이 아니다. 지난 7월19일 “(국회 본)회의에 참석한다면 반대표를 던지겠다”라는 폭탄 발언으로 한나라당을 발칵 뒤집어놓았던 박근혜 의원이, 언론악법이 강행 처리되던 7월22일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이 정도면 국민들도 이해해주실 것”이라고 말한 대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박근혜 전 대표가 애초 한나라당의 신문법과 방송법 개정안에 담긴 핵심 내용들 뿐만 아니라, 한나라당이 민주당과 협상 과정에서 꼼수로 내놓았다가 거둬들인 일부 수정안들이 본질적으로 한나라당의 원안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점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방증으로 보인다.

한마디로 신문법과 방송법 등을 잘 모른다고 볼 수 밖에 없다는 뜻이다.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의 후광과 다분히 감성적인 지지만으로 차기 대선에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우리 국민들이 호락호락하지 않다.

일부 반대자들의 ‘수첩공주’라는 비아냥이 보여 주듯이, 그는 철저히 국민의 뜻을 따르고 섬기겠다는 철학도 부족해 보이는데다 컨텐츠도 빈약해 보인다. 그렇다고 주위에 진정한 ‘장자방’도 없어 보인다. 선거 때 줄을 서, 당선을 노리는 부나방 같은 정치인들은 많아 보이지만.

정치인에게 최대, 최고의 원칙은 무엇일까? 그것은 국민의 뜻을 받들고 따르는 것이다. 특정 사안에 대한 국민 개개인의 생각은 틀릴 수 있으나 ‘전체로서의 국민의 뜻’은 항상 옳다.

박근혜 의원이 ‘2007년 대선 경선 악몽’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오로지 국민의 뜻에 따라야 한다. 지금 대다수 국민들은 불법 날치기 처리한 신문법과 방송법을 반대하거나 비판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다. 박 의원은 신문법과 방송법 철회 운동에 나서든지 아니면 2007년 대선 경선 악몽을 되풀이 하던지, 선택은 그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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