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오늘자(30일) 사설은 여러모로 기억해둘만 하다. '정당'한 문제의식이 '정략'적 이해관계와 조우하여 얼토당토 않은 '정치'적 결론으로 치닫는 분열적 문법의 전형이라 할 만하다. 찬찬히 뜯어보자.

중앙일보는 '국회가 헌재와 검찰의 하부기관인가'하고 물었다. 적절한 문제의식이다. 그렇잖아도 나도 묻고 싶었던 바였다. 하나의 의문과 하나의 회의가 작동된다. 우선, 삼권분립의 원칙을 금과옥조라 떠받드는 체제에서 입법부의 문제를 사법부가 판단하는 것은 과연, 타당한 것인지 의문스럽다. 그리고 또한 그 타당성의 여부와는 별개로 입법부와 사법부의 힘의 역관계를 고려할 때 제대로 사법부가 소신대로 입법부를 판정할 수 있을지 회의감이 든다.

▲ 중앙일보 7월 30일자 34면 사설.
중앙일보는 이러한 적절한 문제의식의 바탕에서 국회의 모습을 묘사한다. 국회가 막장 드라마를 닮아가는 후안무치한 행동이라고, 백 번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빌어도 모자란다고 질타한다. 어린 학생들이 민주주의를 폭력난동, 사기협잡이라고 배우지나 않을지 걱정이라는 어른스런 모습도 보인다. 그런데 한 문장이 심란하다. '코흘리개들이 골목놀이 하듯 외부세력을 끌어들'였다는 표현이다. 그 심란함은 바로 다음 단락에서 이렇게 펼쳐진다.

'가장 큰 문제는 외부 세력의 국회 난입이다. 자유당 시절 백골단, 땃벌떼 등 깡패집단이 동원된 이래 외부 세력이 국회의 의정활동을 방해한 것은 처음이다. 자유당 시절에도 국회를 포위하고 위협만 했을 뿐 의사당에 직접 난입하는 것은 상상도 못한 일이다. 어떻게 이들이 난입할 수 있었는지 조사해야 하고, 난동자들은 엄벌해야 한다.' -중앙일보 7월 30일자 사설, '국회가 헌재와 검찰의 하부기관인가' 中 3번째 단락

이게 웬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정당했던 문제의식은 아직 한 줄도 전개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언론노조부터 때려잡자고 목소리를 높이는가? 사설 제목이 낯 뜨거워 진다. '국회가 헌재와 검찰의 하부기관인가'를 물으면서, 국회 난입과 난동자들의 엄벌을 촉구하는 것은 얼마나 졸렬하고 또 분열적인 논리이냐 이 말이다.

이어 중앙일보는 새삼스레 국회의원의 권위를 확인한다. 개개 의원이 헌법기관이라는 점을 환기하란다. 투표권 행사를 막는 것을 반민주적 범죄로 치환하기 위한 밑밥을 던진다. 권위롭고 개개인인 헌법기관이기까지 한 국회의원에게 '대리 투표'란 있을 수 없단다. 명백한 범죄행위란다. 치외 법권이란 있을 수 없다고도 했다. 사설은 긴 글이 아니다. 이제 결론을 맺어야 한다. 도입부에서 국회의 모습을 묘사했고 전개 과정에서 국회에서 있었던 행위에 대해 평가도 했으니 이제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말을 할 때이다.

결론에 앞서 중앙일보는 한 뜸을 더 들인다. 하고 싶었던 말이 남아있었던 게다. 아까는 언론노조를 때렸다. 민주당을 잊었을 리 없다. 거리에 뛰쳐나가 떠든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란다. 국회에서 처리할 일이란다. 그리곤 뜬금없이 긴급한 민생 현안들은 외면하고 청문회에 참석하는 민주당을 질타한다. 의원직을 던질 일이 아니란다. 그래놓고는 사표내고, 세비 받고, 회관 쓰면 '정치쇼'란다.

중앙일보의 결론은 상식적이다. 문제의식에 부합한다. 이번 사태를 헌재나 검찰에 떠넘기는 것은 국회의 권위를 허무는 일이다. 전말을 조사해 공개하라고 했다. 그 결과를 놓고 국민에게 용서를 빌라고도 했다. 그걸 해낼 정치력이 없다면 18대 국회에 기대할 건 아무것도 없다고 단정했다. 뉘앙스와 표현에 있어 약간의 미진함은 있지만, 흔쾌히 동의할 수 있는 결론이다.

결국, 두 단락을 들어내고 약간의 표현들을 고치면 오늘 중앙일보 사설은 거의 완벽하게 정당한 논리가 된다. 이런 글쓰기를 두고 차라리 안 쓰는 편이 쓰는 편보다 나았을 안타까운 경우라고 할 수 있겠다. 국회의 문제를 법원으로 끌고 가 판단해주십사 요구하는 태도는 옳지 않다. 어제 한 토론회에서 아주대 오동석 교수가 지적했듯, 국회는 ‘공개와 이성적 토론의 원칙’이 지배하는 공간이어야지 다수결의 패권주의가 장악한 영토여서는 곤란하다.

일사부재의 원칙을 위배했다면 스스로 그 증거들을 공개하고, 이성적 토론을 해야 한다. 참고로 대다수의 헌법학자들을 비롯하여 법률 전문가들은 국회의 이번 표결이 무효라고 얘기하고 있다. 이 부분을 토론해서 합리적 결론을 내려야 한다. 그 결과에 따라 국회를 쪽수로 장악하려 든 이들이 용서를 빌어야 한다. 그렇게만 된다면, 기꺼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국회가 헌재와 검찰의 하부기관이어서야 되겠는가. 이미 헌재와 검찰이 행정부와 한 통속인데 말이다. 무료 첨삭지도 한 중앙일보 사설 수정안을 덧붙인다. 논리 전개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3번째, 6번째 단락은 통째로 들어냈고, 나머지는 약간의 표현 수정만 하였다.


국회가 헌재와 검찰의 하부기관인가

국회가 막장 드라마를 닮아가고 있다. 코흘리개들이 골목놀이 하듯 국회 본회의장을 차지하려고 몸싸움을 벌이고, TV 앞에서 초등학생도 하지 않을 투표 강행, 남의 투표 대신하기를 보여줬다. 이런 후안무치한 행동을 하고도 무슨 할 말이 있다고 맞고발전을 벌이고, 스피커를 높여 ‘민생 현안’을 외치는지 참담하다.

국민 앞에 백 번 머리를 조아려 용서를 빌어도 모자랄 일이다. 민주주의의 전당인 국회에서 민주적 절차가 철저히 짓밟혔다. 어린 학생들이 민주주의란 다수의 횡포, 부정 투표라고 배우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이 나라의 의정을 바로잡기 위해서도 이번 사태의 전말은 명명백백히 밝히고, 처절하게 반성하고 넘어가지 않으면 안 된다.

회의장을 먼저 차지하려고 철야를 하고, 망치와 전기톱을 동원하는 유치한 짓은 제발 사라져야 한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다. 개개 의원이 헌법기관이다. 그들이 자유롭게 의사를 개진하고, 합리적으로 토론할 수 있어야지 무조건 상정하고 투표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원리에 위배된다. 국민의 대표인 개개 국회의원의 의견 행사를 막는 것은 국민의 주권행사를 방해하는 반민주적 범죄다.

여야 모두 상대 측이 대리투표를 했다며 고발하겠다고 한다. 대리투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일반 국민의 투표에서도 그런 일이 있다면 명백한 범죄행위로 처벌받을 터인데 법을 만드는 국회의원들이 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일을 했는데도 그대로 넘어갈 수는 없다. 국회의원이라고 법을 무시해도 되는 치외법권에 사는 것이 아니다.

이번 사태를 헌법재판소나 검찰에만 떠넘기는 것도 국회의 권위를 허무는 일이다. 국회 스스로 헌재나 검찰의 하부기관임을 선언하는 꼴이 아닌가. 국회는 국민 선출로 구성된 국가 최고기구다. 마땅히 자율적으로 이번 사태의 전말을 조사해 공개해야 한다. 그 결과를 놓고 대리투표가 있었다면, 국민 앞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한다. 조직적으로 대리투표라도 해서 통과시키고 보자 덤볐던 이들의 철저한 자기반성부터 해야 가능한 일이다. 그것마저 해낼 정치력이 없다면 18대 국회에서 기대할 것은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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