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노조 총파업을 주도했던 최상재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어제(29일) 오후 기각됐다. ‘주거가 일정하므로 도주우려가 없으며 이러저러한 증거인멸의 우려도 없다’는 이유로. 법률전문가가 아니라도 쉽게 유추할 수 있는 지극히 상식적, 합리적인 기각사유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법집행마저도 반갑고 고맙게 느껴지는 까닭은 뭘까?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이며 몰상식하고 파렴치에 가까운 법집행 방식, 특히 미디어법 처리과정으로 미루어볼 때 영장 기각에 대한 기대는 그다지 크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현 정권 입장에서 미디어법은 무조건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하고 넘어가야 할 지상과제였다. ‘국회에서의 날치기 처리과정이 비록 계획대로 부드럽게 진행되지는 않았지만 통과된 것은 통과된 것이다. 처음에야 야당과 시민들이 반발하면서 항의집회도 하고 시끄럽게 굴겠지만 얼마나 가겠나. 까짓거, 밀어붙이면 되지. 금방 끓어올랐다가 언제 그랬냐는 듯이 다시 무덤덤해지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의 속성 아닌가. 지금까지 이런 일이 어디 한두 번 있었나?’ 이런 생각 아니었을까?

언론노조는 이 정권에게 눈엣가시였음에 틀림없다. 지난 해 12월에 이어 올 2월 말, 그리고 이번 3차 파업에 이르기까지, 사사건건 미디어법에 딴지를 걸고 넘어지니 귀찮기 짝이 없을 터였다. 게다가 초기에 별로 적극적이지 않아 보였던 민주당까지 작심하고 반대투쟁에 가세했으니. 결국 국회 날치기 처리과정에서 민주당은 몸을 던져 미디어법 표결을 막는데 앞장섰고 재투표, 대리투표의 꼴불견까지 연출하는 최악의 상황이 노정되고 말았다. 이명박 정권과 한나라당으로서는 상상하기도 싫은 일이 벌어지고야 만 것이다. ‘여기까지 오게 된 게 누구 때문인가. 언론노조, 그중에서도 최전방 지휘자인 위원장 아니겠나.’

▲ 전국언론노조 최상재 위원장이 27일 오전 7시 30분 경기도 파주 교하읍 자택 앞에서 긴급 연행될 당시, 가족이 촬영한 사진 ⓒ 언론노조
최 위원장 긴급체포와 그에 이은 구속영장 청구는 이렇게 저들 입장에서는 각본에 따른 짜여진 수순이었을 것이다. 따지고 보면 작년의 정연주 KBS사장 강제축출과 구본홍 언론특보의 YTN사장으로의 낙하산 투하, MBC PD수첩 제작진 체포와 압수수색 기도, 기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은 미디어법 처리를 위한 정지작업 성격을 띠고 있다. 미디어법만 국회에서 통과되면 이 정부가 그리는 ‘방송장악 작전-실제 내용은 재벌과 조중동에 방송 넘겨주기’의 개략적인 구도가 완결되는 것이다. 그러니 언론노조만 무력화시키면 된다고 생각했을 법하다.

촛불집회 참가시민들과 미네르바 구속, PD수첩 제작진 등에 대한 수많은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발부 전력으로 미루어 볼 때 법원에 대해 크게 기대하지 않았던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최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될 가능성을 높게 볼 수 없었다는 말이다.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속설도 있지 않은가. 그런데 이런 예상이 깨진 것이다.

우리나라의 사법부가 죽은 것은 아니었다. 또 판사들 가운데는 신영철 대법관 같은 후안무치한 자들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이 정부가 법원 판결에 얼마나 영향력을 행사하는지는 정확하게 모르겠지만 이 정도만큼은 사법부도 자율권을 가지게 된 것이다.

미디어법의 날치기 처리를 두고 여야는 목하 최후의 결전을 치르고 있는 중이다. 결과는 예단키 어렵다. 민심을 어느 쪽에서 선취하느냐가 승부의 갈림길이 되지 않을까. 이번 서울 남부지법의 최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기각은 그 과정에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다. 미디어법 발효의 전제조건이 되는 내용적, 절차적 정당성을 둘러싼 여야의 공방에서 절차적 합법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국회에서, 거리에서 미디어법과 관련해 국민을 설득하기 위해 다툼을 벌이는 것은 무방하다. 다만 적법절차를 지켜라. 자신들의 정당성을 주장하기 위해 강압적으로 잡아가고, 인신을 구속하는 것은 공권력 남용이며 페어 게임의 규칙에 어긋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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