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산중은 비 그칠 줄 모릅니다. 올 여름엔 지붕공사 하려고 마음먹었는데 7월에 2~3일 제외하고 하루도 거르지 않고 비가 내립니다.

젖은 땅이 2~3일 햇볕에 마르면 캐려고 마음먹은 감자도 비 때문에 아직 캐지 못했습니다. 잦은 비로 계곡물은 넘치지만 여름휴가를 계곡으로 계획한 사람들은 계획을 바꿔야 할 지경입니다. 지난해 같으면 계곡에 사람들이 넘쳐날 때인데 올해는 얼추 한가합니다.

▲ 처마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지리산

지난 토요일과 일요일을 맞아 집에 손님이 여러분 오셨습니다. 차로 바로 올 수 있는 곳도 아니고 집도 좁고 불편하기 이를데 없는 곳에 손님이 오시면 잠자리 먹을거리 땔감 등 여러 가지 신경 쓸 일이 많습니다.

되도록 우리 사는 일상을 벗어나지 않으려고 하지만 멀리서 오시는 손님을 맞이하다 보면 일상을 벗어나기 마련입니다. 일 년 내내 토요일, 일요일마다 손님이 찾아오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지만 여름엔 산중이라 더욱 손님이 많습니다.

이번에 오신 손님 중 한 분이 여럿이 북적거려 미안하셨는지 여든 일곱 살이신 어머님께서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첫 번째로 남에 것 훔치지 마라. 두 번째가 모난 돌이 정 맞는다. 세 번째가 오뉴월 손님은 범보다 무섭다”라며 “오뉴월 손님이 그만큼 무서운 법인데 이리 불쑥 찾아와 미안하다”고 하셨습니다.

‘오뉴월 손님은 범보다 무섭다’는 여든 일곱 살이신 어머님 말씀 때문에 자랄 때 기억이 떠 올랐습니다. 손님이 집에 오시는 경우가 어쩌다 한 번 있는 일이긴 했지만 손님이 오시면 어린 우리들은 즐거웠습니다.

날마다 보는 사람은 마을 사람이 전부이다 보니 어쩌다 보는 새로운 사람에 대한 동경과 무엇보다도 손님 오는 날엔 귀한 달걀찜과 하얀 쌀밥을 구경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손님상에 오른 쌀밥과 달걀찜을 눈치껏 보면서 남기기만 바라고 있습니다. 이런 어린 마음을 어찌도 그리 잘 아시는지 꼭 남겨 어린 우리가 게 눈 감추듯 귀한 반찬과 쌀밥을 먹게 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농촌의 여름은 손님 맞기가 참으로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지난 가을에 거뒀던 쌀이 벌써 떨어지고 6월 중순에 막 수확한 보리만 있을 때이고 논으로 밭으로 다니면서 농사일로 정신없고 반찬거리도 마땅치 않아 마음은 정성이지만 먹을거리는 없는 계절이라 안주인 고통이 말이 아니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랜 세월을 겪은 어머님께서 오뉴월 손님은 세상 무엇보다 무서웠을 범보다 무섭다고 하셨나 봅니다.

지금은 쌀이 떨어져 구할 수 없고 시장이 없어 반찬거리를 마련할 수 없는 세상이 아니어선지 오뉴월 손님이 범만큼 무섭지는 않습니다. 손님이 왔다 가면 늦게 자고 마음을 쓴 탓에 피곤함을 감출 순 없습니다.

그렇지만 멀리서 오신 분들이 낯선 곳에서 불편하지 않았나, 피곤한 몸으로 또 멀리까지 달려가야 하고 일찍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데 괜찮은지 항상 미안하고 걱정이 앞섭니다.

좁고 불편한 집이지만 찾아오는 마음이 고마워 닭이 알을 품듯이 정성을 다 하려고 하지만 항상 부족합니다. 수퍼마켓이나 마트가 반가운 아이들보다 사람이 반가운 아이들로 키우고 싶은 욕심으로 오늘도 오뉴월 손님을 반갑게 맞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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