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한비야의 ‘중국견문록’이 출간될 때 나는 중국에 살고 있었다. 그녀는 2001년 3월에 베이징으로 건너왔고, 1년의 시간을 중국서 보내고 그 책을 냈다. 이 책이 한국서 인기를 끌자 중국에 있는 이들에게는 작은 웅성거림이 들렸다. “도대체 1년을 보고 어떻게 중국에 대해서 왈가왈부할 수 있지. 난 15년을 살았어도 중국에 대해서 한마디도 할 수 없는데”식의 말이었다. 사실 맞는 말이다. 서울에 천 년을 산다고 해도 서울에 대해서 만분의 일도 알기 어려운데, 한국의 100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중국을 1년 만에 어떻게 이해한다는 것인가. 그래서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말은 아주 틀린 말이기도 하다. 이 책은 말 그대로 ‘견문록’이다. 유길준이 ‘서유견문록’을 쓰고, 마르코폴로가 ‘동방견문록’을 쓰듯이 말 그대로 그녀는 중국을 한번 흩어보고 그 책을 쓴 것이었다. 이는 마르코 폴로가 동양 전체를 속속들이 알지 못하고, 유길준이 서양을 모두 알지 못하는 것과 같다. 한비야는 당연히 중국에 대해서 속속들이 알지 못한다. 하지만 누구나가 그 정도의 경험으로 견문록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또 한비야는 세계를 여행했던 경험과 자신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의 마음에 파고들었다. 15년이 아니라 150년이 지나도 책을 못 쓰는 사람은 못쓴다. 아니 시시각각 변화하는 중국을 두고, 책이라는 옛 방식으로 완벽히 기록하는 게 말이 되지 않기에 더욱 이 말은 맞지 않다.

그 후 한비야는 국제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서 일하면서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나 ‘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 등을 내어 지명도 높은 작가가 됐다. 그리고 얼마 전 ‘그건, 사랑이었네’를 출간했다.

이 책은 300페이지의 그리 두껍지 않은 책이다. 내용은 지난 수년간 인상적인 기억이나 추억의 조각조각을 끄집어내어서 펼친 것들이다. 소소한 생활의 이야기에서 참담한 구호 현장의 모습까지 충실하다. 작가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들의 이야기도 있고, 순간적인 인상들도 많고, 종교관이나 사랑관까지 다양하다.

그리고 문장 또한 아주 쉽게 쓰여서 아무런 부담 없이 읽어가면 마지막 장에 다다르게 된다. 책 내부에서도 잠깐 이야기되는데 이런 문장은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가장 부러운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글을 쓰면 순간순간 튀어나오는 단어나 문장 때문에 곤란한 경우가 많은데, 이 책에서는 그런 느낌이 거의 들지 않을 만큼 물 흐르듯 차분하게 펼쳐진다.

어떻든 이 책을 보면 작가가 왜 수많은 이들의 ‘멘토’가 되어가는 지를 잘 느낄 수 있다. 작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의 로망인 여행, 사람, 성공, 독서, 글쓰기 등 모든 긍정적인 코드들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작가의 종교관에서 보여주듯이 어느 한쪽에 매몰되지 않으려고 하는 교양인의 기본 요소도 잘 갖추어져 있다.

그 때문인지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베스트셀러에 올라가더니 지금은 1위를 점하고 있다. 이 책이 베스트셀러 수위가 되는 것은 너무나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그런데 이 책은 나에게 실망을 안긴 책이기도 하다.

이 책은 그녀가 품고 있는 가치들은 너무 백화점식으로 나열해 놓았다. 이런 방식이 꼭 나쁘다고 할 수는 없지만, 결국 이 책을 보면서 ‘아 팬들을 너무 많이 의식하는 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하나는 앞서 말한 교양의 범주에서 찾을 수 있다. 그녀는 수없이 많은 구호현장을 다녔다. 그곳은 쓰나미 등 자연재앙의 현장도 있지만 이라크나 아프카니스칸, 아프리카의 나라들처럼 인간의 탐욕에 의한 전쟁터도 많다.

그녀가 그 많은 곳을 여행하면서 느꼈을 인류적 문제에 대해서 너무 눈 감은 것이 아닌가 싶다. 그녀가 내가 생각할 정도의 교양인이라면 미국의 문제나 종교의 문제, 인간의 탐욕에 대한 문제, 전지구적인 환경문제 등을 심각하게 느꼈을 것이 뻔한데, 이 부분에는 그다지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한다. 그리고 미국으로의 유학을 떠난다고 알린다. 세계를 여행한 그녀가 미국이 가진 모순을 모를 리 없다. 물론 그렇다고 미국을 싫어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조금이라도 민감한 부분은 피하는 지극한 보신주의가 마음에 걸린다.

나는 그녀가 지구의 잔다르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어떤 연유이든 수많은 사람들의 멘토가 됐다는 것을 자각한다면, 그들에게 이 사회를 보는 적당한 교양이 무엇인지도 알릴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기대를 갖고 있는 내 관점 역시 지나치게 높은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아직 방송되지 않은 ‘무르팍 도사’가 아닌 보도프로그램에서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좀 실망을 했다. 강연을 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녀가 이야기를 풀어내는 모습에서 아우라를 느끼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무르팍 도사’야 방송작가들이 워낙 포장을 잘 하기 때문에 그런 느낌이 들지 않겠지만, 얼마 전 자정 무렵에 본 한비야는 보지 않았으면 더 좋았을 것 같은 옛날 짝사랑 여자 친구와도 같은 느낌이었다.

대학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길항적 삶을 실천하고 싶어 <미디어오늘>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97년 DJ가 당선되고나자 자유로워지고 싶어 여행잡지로 전직했다. 그런데 얼마가지 못해서 이 잡지가 망해서, 다른 잡다한 신문일들을 하다가 99년 9월 결혼과 더불어 중국으로 건너갔다. 학업과 프리랜서 생활을 하면서 중국에 적응했다. 2002년부터 '알짜배기 세계여행 중국'을 시작으로 10여권의 중국 관련서를 썼지만 언제나 내 책을 만들기 위해 잘린 나무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조만간에 좀 미안함이 덜할 책을 한권 낼 계획이다. 2004년부터는 중국 전문 여행 콘텐츠 회사인 '대국엔터테인먼트'를 창업해서 운영중이다. 올부터는 한신대에서 외래교수로 가르치는 일도 겸하고 있다. 한중 교류에 줏대를 세워주는 '한중 문화 하이웨이'라는 막연한 구상을 현실화 시키는데 정신을 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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