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몰다

정부는 방송사업자의 송출방식, 방송권역, 메이저-마이너 간 방송광고 결합판매율, 방송광고 유형 및 방송광고 판매 방식 등을 규제한다. 그리고 이 같은 규제는 방송의 공적 책임, 공익성, 지역성 등 방송법의 근간을 이루는 가치로 설계하고 실행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정반대다. 방송통신위원회와 자본은 그동안 지역방송을 광역화하고 자본의 방송 진입 문턱을 낮추는 규제완화를 추진해왔다. 지역방송은 그래서 지금 벼랑 끝에 내몰렸다. 이대로 가면 OBS를 시작으로 지역방송은 몰락한다. 방통위가 지난 2월 주최한 ‘중장기 방송정책 마련을 위한 워크숍’에서는 지역지상파방송의 소유, 겸영 규제를 우선 완화한 뒤 종합편성채널과 보도전문채널의 소유규제를 풀겠다는 정책방향이 제안됐다. 지역방송을 통폐합·광역화해 ‘언론권력’을 집중시키고, 이를 자본에 내주겠다는 이야기다.

정부가 지역방송의 위기를 고의로 방치해 고사시키려는 것이다. OBS 재허가 불승인 위기 사태는 그동안 정부가 지역성을 고려하지 않고 시장논리에 따라 방송정책을 펴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대안적인 지역방송을 만들기 위한 어떤 제도와 정책도 내놓지 않았다. OBS 문제만 보더라도 정부는 수년간 최대주주에 ‘증자’를, 노동조합에 ‘고통분담’만을 강하게 요구했다. 정부가 직접 지역방송 고사전략을 펴온 것이다. 그 덕(?)에 250여명에 이르는 OBS 노동자들의 노동권과 지역시청자들의 시청권이 공중분해 될 처지다.

16일 오전 11시 과천 정부청사 앞에서 전국언론노동조합 OBS희망조합지부 주최로 개최된 '방통위의 OBS재허가 거부'에 대한 긴급 기자회견 모습. (사진=언론노조 OBS희망조합지부)

되찾다

지역에서 방송하고, 지역에서 노동할 권리를 되찾아야 한다. 대안은 있다. 단기적으로는 OBS와 경쟁사인 SBS, OBS와 방송광고판매대행자인 미디어크리에이트의 관계를 재편하는 방법이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정부가 거대 방송사업자들에게 지역방송발전기금을 징수해 이를 지역방송에 배분하는 방식도 생각해볼 만하다.

가장 근본적인 해법인 정부와 OBS가 ‘지역’에 주목하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와 언론노조가 참여한 방송통신시민실천행동이 지난해 말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진행된 SK의 CJ헬로비전 인수합병 추진 과정에서 지역채널의 공정성과 독립성, 지역시청자들의 권리 강화, 원·하청 노동자들의 고용안정 등을 주된 요구로 내걸었고, 미래창조과학부는 이 같은 요구를 대폭 발아들여 심사주안점안을 내놨는데 이는 방송의 지역성과 공공성 그리고 노동권에 주목한 결과다. 서울시가 그동안 위탁업체에 맡겨온 다산콜센터를 내년 상반기 중 재단을 설립해 직접고용하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한 사례다.

방송에서도 이런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종합유선방송업계 3위 사업자인 딜라이브(옛 씨앤앰, 대표이사 전용주)는 최근 자사 유료방송과 초고속인터넷을 설치, 수리해온 기술서비스노동자 백여명을 정규직으로 직접고용했다. 그리고 이후 단계적으로 모든 기술서비스노동자에 대한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약속했다. 매각을 위해 고정비용을 줄여야 할 사업자가 거꾸로 지역과 노동에 비용을 투자하는 것이다.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2014년부터 함께 싸워왔고, 딜라이브가 사업자로서 지역과 노동에 대한 가치를 제고한 결과로 볼 수 있다.

OBS의 위기는 OBS만의 문제가 아니다. 모든 지역언론의 문제, 나아가 모든 언론의 문제다. 대다수 언론이 위기에 내몰리고 있고, 정부는 자본이 언론을 순치하도록 방치하고 있다. 공론장에는 자본과 기득권의 목소리가 가득차 있고, 운동장은 기울 대로 기울었다. 그래서 방송과 노동은 지금보다 지역에 주목하고 지역과 밀착해야 한다. 지역에서 다양한 정치적 주체들을 만나고, 공론장을 만들어내는 것이 지역방송, 지역언론이 해야 할 역할이다.

지역에서 방송하고, 지역에서 노동해야 할 이유는 많다. 우리에게는 재정위기를 민영화로 돌파하려는 지방자치단체를 감시하는 언론이 필요하다. 조선소가 있는 지역에서는 구조조정 진행 상황과 노동자들의 삶을 끊임없이 추적하고 기록할 언론이 있어야 한다. 핵발전소가 있는 지역에서는 안전성을 검증할 언론, 경기도 안산에는 세월호 가족들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을 언론이 필요하다. 시민들이 살아가는 지역에서 자본이 어떻게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노동조합을 탄압하는지, 시민들의 권리를 어떻게 갉아먹는지 고발할 언론이 필요하다. 우리는 아직도 지역을 모른다. 우리 사회에는 더 많은 지역언론과 지역언론노동자가 있어야 한다.

*이 글은 OBS 재허가 불허 위기와 관련, 전국언론노동조합이 12월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주최한 토론회 <기로에 선 경기·인천 지역방송과 방송정책의 위기>에 제출한 토론문을 일부 수정,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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