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선한 시국이다. 무능한 권력에 대한 자괴함이 깊어질수록, 그럼에도 이를 결국 참아 넘기지 않은 '민주적 저력'에 대한 감탄도 함께 높아만 간다. 그리고 모두 공감하는 한 가지, 시민들이 광장에 나선 것은 단지 저 푸른 집의 '일당'을 쫓아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이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분노 때문이라는 것. 그런데 과연 그 부조리한 구조에 대한 대안은? 그리고 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방송이 해야 하는 역할은?

뉴스와 시사프로가 그 성과에 따라 방송사 별로 희비가 오가는 가운데, 조용히 등장했다 사라진 인문학적 파일럿 프로그램이 있다. 이렇든 저렇든 결국 이들 인문학적 프로그램들의 궁극적 목적은 '생각 좀 하고 삽시다!'다. 청와대에서 버티고 있는 사람과 똑같이 말랑말랑한 당의정의 드라마를 보며 하루의 고달픔을 잊는 대신, 좀 골치 아프더라도 함께 생각해보고 고민해 보자는 이 프로그램들. 2부작 <표본실의 청개구리>와 4부작 <서가식당>이 그 주인공이다.

시사와 인문학의 콜라보레이션 <표본실의 청개구리> 그리고 음식과 독서의 콜라보레이션 <서가식당>은 트렌디한 '인문학'과 '음식'이라는 토핑을 얹어, 시사와 독서에 깊이를 주려고 애쓴 고심의 결과물이다.

시사를 보는 다른 눈 <표본실의 청개구리>

KBS1TV 시사 인문학 토크쇼 <표본실의 청개구리>

그간 드라마를 통해 악랄한 형사에서 대통령 저격범, 국회의원, 검사 등 천의얼굴을 연기해온 배우 장현성을 MC로, 팟캐스트와 종편 시사프로그램을 통해 그리고 이 시대의 전투적 키보드 워리어로 더욱 친근해진 진중권 교수를 필두로 정치, 사회, 학계, 문화 등 각 분야의 패널들이 모여, '시사적' 주제를 표본으로 삼아 각자의 '청개구리'와 같은 시각으로 접근해 보고자 한 시사 인문학 토크쇼가 바로 <표본실의 청개구리>이다.

2부작이었던 프로그램은 11일 첫 회 '영화는 시사다'라는 꼭지를 통해 영화 <레미제라블>을 소개했고, 프랑스혁명 당시 민중의 모습과 촛불 집회 현장을 비교하며 당시 프랑스의 부패한 왕정 세력과 우리의 집권 계층이 다르지 않음을 이야기했다. 진중권 교수의 해박한 역사적 지식과 김성곤 교수의 그 못지않은 동양학적 비유를 통해 '레미제라블'한 한국 사회를 그려냈고, 이를 통해 대한민국 헌법 1조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의 정의, 그리고 우리가 지켜내야 할 민주주의에 대한 고민을 함께했다.

18일 두 번째 회차에서는 인물로 보는 시사로, 필리핀의 대통령 두테르테를 통해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필리핀 국민 95%의 지지를 받는 두테르테. 하지만 다수의 지지에 가려진 그 방식의 문제에 대해 변호사 박준영과 정치전문가 김지윤 박사의 박학한 해석을 곁들인다. 또한 ‘역사는 시사다’를 통해 김성곤 교수의 해학 넘치는 한나라 십상시에 대한 소개로 시작된 이야기는 환관에 둘러싸인 영제와 현실을 빗대며 신랄한 현실 비판으로 이어진다.

두 편의 프로그램은 '메스 토크'라는 코너를 통해, 첫 회 '당신의 한 표를 통해 대통령을 선출할 기회를 얻는다면 얼마를 지불하겠는가?'란 질문으로 투표의 결정성과 오류에 대한 논점을 짚어본다. 또한 566만 원을 훔친 지강헌과 73억 원을 횡령한 전두환의 동생 전경환의 엇갈린 행보를 통해, 그리고 최대 15년을 받을 아니 그조차 받지 않을 수도 있는 최순실과, 울분으로 검찰청에 포크레인을 몰고 간 사람의 최고형 10년의 아이러니를 통해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역사를 짚는다.

KBS1TV 시사 인문학 토크쇼 <표본실의 청개구리>

프로그램은 영화나 인물 등 시사적 주제를 통해 철학, 역사, 정치, 법적인 분야의 전문가들이 다양하고 박학한 해석을 곁들여, 시사를 인문학적으로 짚어볼 수 있는 풍성한 시야를 제공한다. 뿐만 아니라, 과거의 역사를 오늘에 되살려내어 현실에 닿은 예리한 분석을 놓치지 않는다.

첫 회 모델 이현이에서 재심 변호사로 이름을 떨친 박준영 변호사로 출연진이 변화되며, 김성곤 교수의 경극식의 재미있는 표현과 박준영 변호사의 풍성한 실례, 진중권, 김지윤 박사의 해박한 지식 그리고 윤대현 교수의 사회학적 접근이 더해져 시사의 인문학적 해석은 그 깊이와 넓이를 더한다.

하지만 과연 이 프로그램을 다시 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른바 KBS 공영노조는 12월 16일 대통령 탄핵 이후 KBS가 급격히 무너져가고 있다며, 그 대표적 실례로 <표본실의 청개구리> 출연진이 진보진영 일색이고 진중권 교수 등의 발언을 문제 삼았다. 정의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표본실의 청개구리> 2회. '희망 고문'과 '실천'이라는 양극단의 정의로 정의 내려진 정의, '실천해야 정의는 구현된다', 정의가 희망고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KBS의 지난한 실천이 요구된다.

책...먹고 갈래요? <서가식당>

KBS1TV <서가식당>

<표본실의 청개구리>가 현 시국에 직접적으로 가닿은 인문학적 해석을 풀어낸 프로그램이라면, 독서를 요리로 매개한 <서가식당>은 그간 KBS1이 꾸준하게 시도해온 독서 프로그램의 연장선에 놓여있다. 강승화 아나운서가 젊은 세대의 '편식'을, 배우 권해효가 멋스러운 '별식', 그리고 평론가 김태훈이 ‘잡식’ 등 출연한 각 패널들이 저마다의 식습관을 이름표로 불인 채 그 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책에 등장하는 요리와 책에 대한 거침없는 입담을 풀어내는 새로운 시도이다.

이 프로그램의 포인트는 책이다. 첫 회 삼국지, 두 번째 밥 딜런의 바람만이 아는 대답, 세 번째 돈키호테, 네 번째 성석제의 투명인간까지, 네 권의 책이 메인 메뉴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책과 함께 삼국지의 만두, 밥 딜런의 브런치, 돈키호테의 가스파쵸, 그리고 투명인간 만수의 콩죽과 돼지 두루치기 등 책 속에 등장했던, 혹은 인물과 관련된 음식이 등장하여 오감을 자극한다.

또한 프로그램은 기본 패널 외에 회차에 따라 삼국지 편에서는 만화로 삼국지를 풀어낸 김태권, 밥 딜런 편에서는 시인 원재훈과 포크가수 양병집, 돈키호테에서는 멘사 회원으로 유명한 젊은 방송인 최정문, 그리고 투명인간 편에서는 철학자 탁석산 등 책의 성격에 맞는 패널을 융통성 있게 초대하여 독서 프로그램의 풍성함을 더한다.

또한 <서가식당>의 묘미는 패널들이 솔직하게 책에 대한 소감을 풀어내는 동안, 책의 저자가 한편에서 이 장면을 보며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몰래 카메라'와 같은 설정이다. 결국 한 편의 작은 문으로 저자가 등장하고, 솔직했던 서평과 저자 해석의 행간의 미묘한 긴장과 이해의 과정이 '예능'으로서의 독서 프로그램의 맛을 더한다.

KBS1TV <서가식당>

물론 아쉬운 점도 남는다. 음식와 책의 콜라보레이션이라 했지만, 책 속에 등장하는 음식이란 신선한 코드와 달리 음식과 서평의 경계가 가진 형식적 틀에서 자유롭지 못한 점이다. 4회 <투명인간>에 등장한 콩죽과 돼지 두루치기 중 굳이 하나를 골라야 하는 지점은 예능적 요소라 그렇다 치고, 정작 두루치기에 대한 장황한 설명과 달리 음식과 함께한 시간을 풀어내는 지점은 너무 관례적인 것이다. 추억이 없다던 소감처럼 음식 자체에 대한 접근이 아쉽다.

음식이든 영화든 인물이든 <표본실의 청개구리>나 <서가식당>이 결국 도달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생각'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역사를 훑은 <투명인간>을 함께 읽으니 성장 속 인간 소외였던 한국의 현대사로 귀결될 수밖에 없고, 밥 딜런의 음악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필리핀의 두테르테도 한나라의 십상시도 그리고 영화 레미제라블도 결국 그 모든 것은 '현재', '우리가 사는 이곳'을 향한다. 그 잠깐의 시간을 통해 함께 생각해 보고 되짚어 볼 수 있는 신선한 시도, 부디 이들 프로그램이 2회나 4회 종영으로 기록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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