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보다가 너무 기가 찬 광경을 봤다. 안국역 앞에서 친박 단체들 집회 하고 있는데 이 자들이 '아름다운 강산'을 부르고 있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중략) 다른 의견은 철저히 배격 되었던 시대의 외침으로 '우리들 모여서 말 해보자 새희망을' '~말해야지 ...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이라 한 것이다. 어쩌면 아고라 민주주의의 실현을 꿈꾼 것일까. 그래서 이 노래는 유신 내내 금지곡이 되었다. 그러므로 박사모, 어버이 따위가 불러서는 안 된다. 촛불집회 집행부는 나를 섭외하라. 내가 제대로 된 버전으로 연주하겠다."

록그룹 시나위를 이끄는 기타리스트이자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들인 신대철은 지난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다소 격앙된 톤의 글을 올렸다. 신대철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 친박 단체들의 합창곡은 그의 아버지 신중현이 만든 ‘아름다운 강산’이었다. 어떤 세대에게는 훗날 이선희가 리메이크한 버전으로 익숙한 노래이지만, 원래는 신중현이 1974년에 발표한 곡이다.

기타리스트 신대철 [연합뉴스 자료사진]

신대철이 분노한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서슬 퍼렇던 박정희 정권 시절, 당시 청와대 사람들은 당대 최고 인기 작곡가인 신중현에게 “각하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라는 압력을 가한다. 하지만 신중현은 이를 거절했고, 그 뒤 정권의 말을 듣지 않았다는 괘씸죄에 걸려 신중현이 만들었던 ‘미인’, ‘거짓말이야’ 등이 연이어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고심하던 신중현은 독재자를 찬양하는 노래를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대한민국 강산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는 뜻에서 74년 그가 이끌던 ‘신중현의 엽전들’ 2집 앨범에 ‘아름다운 강산’을 수록한다. 하지만 맹목적인 대한민국 찬양이 아닌, ‘우리들 모여서 말 해보자 새 희망을' ‘먼 훗날에 너와 나 살고 지고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 꿈을 만들어 보고파’처럼 새로운 세상을 지향하는 노래가사는 결국 ‘유신 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그 뒤 신중현은 75년 대마초파동으로 한동안 음악활동을 쉬어야만 했다.

신대철 페이스북 갈무리

음악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아버지가 박정희 정권에 협력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온갖 고초를 겪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자랐을 신대철이 친박 단체들이 자신의 아버지의 노래를, 그것도 유신 금지곡을 부르는 모습에 불쾌함을 느낀 것은 당연한 이치였다. 신대철의 페이스북을 통해 뒤늦게 ‘아름다운 강산’에 숨겨진 비화를 알게 된 사람들도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러나 ‘아름다운 강산’ 이외에도 정말 어처구니없는 이유로 유신 금지곡이 되었던 노래가 많았단 사실은 우리를 더욱 비탄에 잠기게 한다.

박정희 정권 시절 왜 금지곡이 되었는지 의아하게 만드는 수많은 케이스 중에서도 가장 황당한 사례는 단연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다. ‘각하의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는 이유로 미운털 제대로 박힌 신중현이 작곡한 ‘거짓말이야’는 김추자가 노래 부를 때 지르는 손짓이 북한과의 교신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하여 실제로 중앙정보부에서 조사하기도 하였다. ‘각하의 노래’를 만들지 않으면 다친다는 협박이 실현된 것으로 짐작되지만, 그때는 ‘거짓말이야’뿐만 아니라 수많은 노래들이 특별한 이유 없이 금지곡으로 지정된 시절이었다.

지난달 8일 오전 11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음악인들이 ‘민주공화국 부활을 위한 음악인 시국선언’을 발표하고 있다.

신대철이 유신시대 금지곡이었던 자신의 아버지의 노래를 부르는 박정희, 박근혜 추종자들로 심기가 불편했던 것은, 단지 지난날 아버지가 겪었던 고통에 대한 억울함과 분노의 감정 때문만은 아니었다. 신대철은 현 사회의 불의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던 뮤지션이기도 하다. 지난 11월에는 뮤지션 동료, 후배들과 함께 박근혜, 최순실 국정농단과 예술표현의 자유억압 정책,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규탄하는 대중음악인들의 광화문 광장 시국선언에 참여했다. 박근혜 정권 들어 유독 그의 목소리가 커진 것은 그의 아버지 신중현이 활동하던 70년대보다 교활한 방식으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문화융성을 방해하는 현 정권에 대한 저항의 표시다.

아버지 신중현은 각하의 노래를 만들라는 정권의 강권 속에서도 끝까지 예술인의 자존심을 지켰다면, 아들 신대철은 수백만의 시민들이 모인 촛불집회에서 제대로 된 ‘아름다운 강산’ 연주를 자처함으로써 예술인의 자존심을 드러내고자 한다.

광화문 광장 촛불집회를 주관하는 ‘박근혜정권퇴진 비상국민행동’ 측에서도 신대철의 의지에 긍정적으로 화답한 만큼, 조만간 촛불집회에서 ‘아름다운 강산’의 제대로 된 버전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신대철의 말대로 ‘아름다운 강산’은 박사모, 어버이가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아니라 새 희망을 말하고 새 꿈을 만들고 싶어 하는 국민들의 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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