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사람이야

사람은 그렇더라. 누구든 옆에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리워하고, 함께 기뻐하고 슬퍼하고, 무언가 그냥 막 해주고 싶고.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일을 하고, 다 같이 뛰어놀다가 누군가 넘어지면 옆에서 어루만져주면서 일으켜 주기도 하고. 사람은 원래 그렇더라.

일을 해야 살기에 먹고 살기에, 일을 해야 챙겨주기에 옆에 사람 챙겨주기에, 우리 함께 다 살기에, 그래서 언제나 하루에 해 있을 때 일을 하고, 해 떨어지면 잠을 잤었지. 간혹 해지고도 일을 하고서 옆에 사람이 기뻐하면 날 새는 줄 모르고 하기도 했지. 그게 사람이야. 그렇게 행복해 하는 게 사람이야. 사람은 자연 속에서 자유롭게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아갈 권리를 가진 존재야.

지금 콘크리트와 알루미늄에 둘러싸여 무당이 칼춤 추는 듯 가혹한 날씨와 더불어 제대로 목도 못 적시면서 아래위를 오가며 온갖 회한과 절망에 서 있을 수밖에 없는 저기 쌍용자동차 노동자들도 사람이지. 목 놓아 외치고 부르짖고 온몸으로 처절하게 싸우지 않으면 아무도 귀 기울여 주지 않는 현실에서도 그들은 분명 사람이지. 사람이고자 하는 사람이지.

▲ 도장공장 옥상 위에 쌍용차 노조원들이 구호를 쓰고 있다.ⓒ 민중의소리

수천 년간 사람이 사라졌어

언젠가부터 사람 아닌 사람이 사람을 목 좨기 시작했어. 너 사람답게 살지 말라고 강요했던 거야. 이건 수천 년 전 이야기지. 사람은 원래 순박해서 그들이 왜 그러는지도 몰랐지. 어느 날부터 내 옆에 동무를 위해 했던 즐거운 일들이 갑자기 고역이 되기 시작했어. 그 때부터 맘 놓고 웃지도 못했지. 슬퍼하지도 못했지, 사랑하지도 못했고. 그냥 내 동무가, 내 새끼가 불쌍하게만 느껴졌지. 말 못하는 짐승도 눈물을 흘린다고? 사실은 사람이 그랬어. 그때부터 주욱~, 수천 년 전부터 지금까지.

이렇게, 일하며 자유롭고 자유롭게 일하는, 그래서 행복할 수밖에 없었던, 함께 꿈을 가꾸고 함께 살면서 어울렸던 사람은 사라지기 시작했지. 청동 도끼를 거쳐 강철검, 그리고 등뼈까지 파고드는 채찍 속에서 자연을 벗 삼아 동무와 즐겁게 누리던 그 일이, 그 노동이 사라지고 말았지. 행복했던 노동은, 그들이 위협하고 엄포 놓았던, 그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떨어진다는 바로 그 지옥이 되고 말았지. 아마도 그 때부터 사람은 분노를 배우기 시작했을 꺼야. 갓 배운, 갓 치밀어 오른 그 분노, 그 노여움이라는 감정을 사람은 참을 수가 없었어. 그래서 사람 같이 생긴 것을 죽이고, 부수고, 불 지르고, 그래서 그 사람도 말았지.

그렇게 세월이 흘렀던 거야. 강철검과 채찍은 고귀한 성령과 위대한 성현의 말씀이 되었고, 야만은 종교로 종교는 이성으로 포장되었지. 말하는 도구, 노예는 신분과 토지에 예속된 농노로, 그리고 그 농노는 ‘자유로운’ 노동자로, 그렇게 수천 세월이 흘렀지. 채찍과 신분제의 사슬, 그리고 화폐의 권력은 사람에게 사람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할 수도 없는 폭력과 착취를 감내하기를 강압했지. 너 사람노릇하지 말라고. 너는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도 없고 기껏해야 할 수 있는 거라고는 새끼 까는 것밖에 없다고, 잡것이라고 했지.

그래 그랬어. 언제든지 때려도 되고 때려 죽여도 되고, 하루 종일 밤낮 가리지 않고 강제노동을 시키고, 강간하고, 학대하고, 화풀이하고, 입맛대로 가지고 놀아도 되고. 그런데, 그게 수천 년이야. 그리고 바로 지금까지야. 지금도 그렇게 사람은 비참하게 살고 있어. 그러나 이젠 사람은 사람 아닌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사람답게 살아야 해. 사람이 돼야 해.

▲ 25일 쌍용차 도장공장 앞 삼거리, 얼마만일까? 어젯밤 내린 빗물에 발을 씻고 있는 한 조합원. 회사측의 단수조치와 정부의 공권력 투입으로 인해 쌍용차 조합원들은 인간으로서 누려야 할 최소한의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단지 '함께 살자'고 들어 왔을 뿐인데...ⓒ 민중의소리

하지만 사람은 느끼고 있어

지금 평택에서 사람이고자 하는 사람의 처절한 몸부림이 벌어지고 있어. 사람이라면 사람을 느낄 수 있어야 해. 그 사람은 지난 수천 년의 사람과 마찬가지로 억압과 폭력과 착취 속에서 살았어. 그래도 나름 사람답게 살려고 옆에 있는 동무, 새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했어. 때론 슬프기도 힘겹기도 했어. 몸이 아프기도 했지만 그건 큰 문제가 아니었어. 그저 사람이니깐 그것으로 됐어. 특별히 뛰어나서 다른 사람의 존경과 부러움을 받기보다 그 사람의 힘과 열정으로 다른 사람과 어울려 땀 흘리고 웃고 즐기는 것이 짧고도 긴 이 생의 복됨이라 느끼고 사는 사람, 그게 사람이라는 걸 아는 사람. 물론 간혹 아픔을 느끼기도 했지. 같은 사람으로서 나 자신보다 힘든 사람이 있으면 마음 아파했고, 그 아픔을 함께 하고픈 마음이 컸지. 하지만 때로는 외면했어. 외면하고는 더 아팠지만. 그래서 더 사람인 것을.

▲ 민주노총이 29일 결의대회를 열고 열흘째 단수조치가 이어지고 있는 쌍용차 평택공장에 물과 의약품을 전달하려 했지만 경찰은 헬기와 최루액을 동원, 이를 가로막았다.ⓒ 민중의소리 김철수 기자

그래 이제, 바로 그 사람이 느끼기 시작했어. 자유롭게 자연과 사람이 함께 어울려 웃으면서 노동하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가를. 그래서 느끼는 대로 행동하고 있어. 아마도 그 사람은 지금도 새록새록 느껴가며 행동하고 있을 거야. 아마도 사람이 된다는 것, 그것은 수천 년간 잊힌 사랑을 사람이 새삼 느끼는 것일 거야. 저 사람 아닌 것들이 널뛰는 평택의 광야 한 가운데서 그 사람은 자신이 사람이길 외치고 행동하고 있는 거야. 한 때 정말 가족 같았던 그 곳, 그 평택의 공장에 황망하게 홀로 내던져진 사람은, 그 척박함 속에서 원초적인 사람의 정을 느끼고 있을 거야. 원시의 광야에서 사람이 자연에 의지하고 자연이 사람과 벗하던 시절을 그리워하고, 짧은 생애를 아주 긴 생애로 느끼는 진정한 사람으로 거듭나고 있을 거야.

밖에 있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안에 있는 사람을 아파하며, 너무 아파서 죽기도 하는 게 사람이야. 너무 분노해서 자기 생명줄이 녹는지도 모르고 함께 하고자 했던 사람이 있고, 사람에 대한 사랑이 큰 나머지 사람 아닌 것들의 압박에 견디다 못해 스러진 사람도 있고, 너무 힘들어서, 너무 사랑해서 스스로 생명줄을 놓아버린 사람도 있고, 우주를 다 안을 듯한 눈망울로 그 사람을 그리워하는 사람의 희망, 희망의 사람도 있어. 그리고 함께 어깨동무할 사람은 너무 많아.

사람 아닌 것들이 쳐놓은 덫에 갇혀 함께 하지 못하는, 그래서 때로는 안에 있는 사람을 욕해야 하고 공격해야 하는 사람, 사실은 똑같은 사람이면서 사람 아닌 것들에 의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통제 당할 수밖에 없는 사람도 있어. 그 사람은 사람 아닌 것들이 쳐놓은 덫, 자본이 쳐놓은 생존의 덫에 빠진 거야. 그런데 그도 사실은 느끼고 있어. 그 덫을 빠져나와야 한다는 것을. 나라도 해고통지를 받으면 그렇게 할 것이라고, 나라도 내 삶을, 내 행복을 빼앗으면 그보다 더 한 것을 할 것이라고.

이제 사람이 하나 되어 일어서야 해

이제 사람은 모두가 사람으로 하나가 되어야 해. 따지고 생각해보면, 사람은 너무 어리석고 나약했어. 사람 아닌 것들의 어림 반 푼어치도 안 되는 억지 논리에 너무나도 쉽게 놀아났고, 기실 허울에 불과한 폭력 앞에 너무 쉽게 굴복했어. 눈앞에서 사람을 죽이면서도 정의를 떠드는 것들, 더러운 욕망을 채우기 위해 사람을 유린하면서도 눈꺼풀도 껌벅이지 않는 것들, 소유권이라는 이름을 내세워 터전을 짓밟고 사람을 불태워 죽이는 것들, 한 줌 모래도 안 되는 것들의 뱃속을 채우려고 거대한 우주자연을 짓밟는 것들, 이 사람 아닌 것들로부터 사람을 찾아와야 해. 이 자연 아닌 것들로부터 자연을 찾아와야 해.

이제 사람은 더 이상 그것들을 말로 비판할 필요가 없어. 관용으로 인내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어. 상식에 호소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아. 사람을 수천 년 길들여 온 그것들의 시스템과 이데올로기가 있는 한, 사람과 자연의 본성으로 그것들과 맞서지 못해. 사람도 사람의 이데올로기와 시스템으로 맞서야 해. 그런데, 사람은 그들과 달라야 해. 사람은 사람을 해방시킴으로써 자연도 해방시키는, 사람은 지배함으로써 그 자신의 지배를 지양하는 방식으로 그들과 맞서야 해.

▲ 경찰 헬기는 하루종일 쌍용자동차 평택 공장 위를 선회하며 조합원들을 감시하거나 최루액을 투하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분노해야 해. 그것들이 사람에게 일깨워 준 그 분노를, 노여움을 백분 발휘해야 해. 지금 이미 평택의 황량한 공장에서 수백이 분노하고 있어. 그 주위를 에워싸고 수천이 분노하고 있어. 더러운 자본이 쳐놓은 덫에 심장을 찔려 당장은 아무런 행동을 하지 못하더라도 수만이 분노하고 있어. 수천 년 동안 억눌렸던 사람을 돌이키기 위해서 분노는 필수가 되었어.

이 분노를 조직하는 데서 시작해야 해. 먼저 분노한 사람이 사람 아닌 것들의 수천 년 폭압을 폭로해야 해. 그 폭로는 분노한 모든 사람을 하나로 뭉치게 하기에 충분하다고 봐. 그리고 그렇게 뭉치기만 한다면, 수천 년 착취의 종착역으로서 자본과, 자신을 현대판 코먼웰스의 주권자로 생각하는 착취대행자 국가권력을 무력화시키기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닐 거야.

그래서 남은 문제는 사람이야. 아무리 암울해도 맑은 새벽에 반짝이는 별처럼 또렷한 눈빛으로 무쇠와 같은 의지를 갖춰야 해. 사람이 만드는 세상은 자유롭게 노동하면서 누구나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타인에 의해 일자리를 강탈당하지 않고, 내가 살기 위해서 타인을 짓밟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 사는 것이 다른 모든 이가 행복하게 잘 살 수 있는 밑거름이 되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큰 믿음으로 사람이 하나가 돼야 해.

이 힘으로 사람은 거대한 실체가 용솟음치는 물결, 그 무엇도 거역할 수 없는 대실재의 폭류를 만들어야 해. 먼저 느낀 사람이 시작해야 해. 평택에 홀로 내던져진 사람처럼. 바로 그처럼 시작해야 해. 처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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