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농구의 미래’ 박지수(청주 KB스타즈)가 마침내 프로선수로서 데뷔전을 치렀다.

박지수는 17일 청주체육관에서 열린 청주 KB스타즈와 아산 우리은행과의 ‘삼성생명 2016-2017 여자프로농구’ 3라운드 경기에 1쿼터 6분여를 남긴 상황에서 교체 투입되어 공식적인 한국여자프로농구(WKBL) 무대에 데뷔했다.

시즌 개막 이후 14경기 만에 치른 ‘지각 데뷔전’이었다. 최근 태국에서 끝난 18세 이하(U-18) 아시아여자농구선수권대회에서 발등에 부상을 입은 박지수는 정밀검사 결과 발등 인대 손상 판정을 받았고 데뷔전 일정을 미룬 채 치료와 재활에 집중해왔다.

박지수로서는 벼르고 벼른 데뷔전이었다. 이달 초 팀이 연패에 빠져 하위권으로 떨어지자 박지수는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경기 중 벤치에서 작전 지시를 듣는 동료 선수들을 바라보고 있는 자신의 뒷모습이 담긴 사진을 올리며 “나도 어서 빨리 제발... 휴”라는 코멘트를 남기기도 했다.

박지수 본인도 데뷔를 학수고대 했겠지만 농구팬들, 특히 KB스타즈의 팬들이나 미디어들도 박지수의 데뷔를 목이 빠져라 기다렸다.

리우 올림픽 최종예선에서 좋은 활약을 펼친 박지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세계적 강호들이 대거 출전한 올림픽 최종예선 무대에서 결코 기죽지 않고 당찬 플레이를 펼쳤고 리바운드 부문에서 1위에 올랐던 만큼, 박지수의 플레이를 WKBL 무대에서 직접 확인하고 싶은 마음들이 컸기 때문이다.

다른 팀의 신인들보다 비교적 늦게 데뷔전을 치르게 됐지만 그만큼 농구팬들과 미디어의 관심은 고조될 대로 고조된 상태였다.

이미 며칠 전 이날 박지수가 데뷔전을 치를 것으로 언론을 통해 알려진 탓에 박지수의 데뷔전을 생중계한 ‘KBS N 스포츠’는 박지수의 데뷔에 관한 별도의 프로모션 영상을 제작하기도 했다.

한마디로 이날 박지수의 데뷔전은 ‘소문난 잔치’였던 셈이다. 우리 옛 속담에 ‘소문난 잔치 먹을 것 없다’는 말이 있는데 박지수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날의 잔치는 과연 먹을 것이 있는 잔치였을까, 아니면 먹을 것이 많은 잔치였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먹을 것이 너무나 풍성했던 잔치였다고 평가할 만하다.

박지수는 이날 1쿼터부터 4쿼터까지 고루 코트에 투입되며 총 25분41초를 뛰었다. 부상에서 회복된 이후 4-5일 정도 밖에는 훈련에 참여하지 못했고, 경기 전 인터뷰에서 체력적인 부분이 걱정이라는 언급과는 달리 비교적 많은 시간을 소화한 셈이다.

박지수(왼쪽)의 경기 모습. [WKBL 제공=연합뉴스]

박지수가 펼친 데뷔전 플레이 내용은 100점 만점에 99점 정도를 줘도 무방한 수준이었다. 100점에서 부족한 1점은 프로선수로서의 경험 정도라고 할 수 있다.

이날 박지수가 26분 가까이 코트를 누비며 작성한 기록은 4득점 10리바운드 2블록슛 1어시스트 1스틸 1굿디펜스 2턴오버. 이들 기록을 종합한 팀 공헌도에서 박지수는 플레넷 피어슨에 이어 팀내 2위를 기록했다.

장신(195cm)에도 불구하고 스피드도 비교적 괜찮았고, 1쿼터에 성공시킨 미들슛이나 4쿼터에 성공시킨 골밑 돌파에 이은 레이업슛을 볼 때 슛 정확도와 득점 센스도 프로무대에서 충분히 경쟁력 있는 모습이었다.

특히 박지수의 블록슛 능력을 포함한 수비 능력과 리바운드 능력은 다른 팀들에게 공포의 대상이 되기 충분한 것이었다. 신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 팔을 가진 탓에 박지수의 수비는 우리은행 슈터들이 중장거리 슛을 시도할 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했다. 또한 리바운드 위치를 잡는 센스는 그의 리바운드 능력을 배가시켜주는 요소임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날 박지수는 우리은행의 주전 센터 양지희와 매치업을 이뤘는데 결코 쉽게 밀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줬다. 1쿼터 KB스타즈의 공격 상황에서 박지수를 막던 양지희는 박지수의 활발한 몸놀림과 강한 몸싸움에 힘겨워 하는 모습을 보였다.

박지수의 프로 경기 경험이 약간만 더 쌓인다면 가까운 시일 안에 박지수가 뛰는 KB스타즈는 우리은행 외에 별다른 적수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강한 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록 이날 KB스타즈가 우리은행에 18점차 대패를 당하면서 5연패에 빠져 리그 5위에 머물렀지만 오늘의 패배와 5위라는 순위는 지금 KB스타즈에게는 큰 의미가 없는 숫자들이다. 박지수가 뛰기 시작한 지금이 KB스타즈에게는 진정한 2016-2017 시즌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다.

데뷔전을 치른 직후 박지수는 패한 팀 선수로는 이례적으로 방송 카메라 앞에서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에 나선 ‘KBS N 스포츠’ 이지수 아나운서가 질문을 던지기 전부터 박지수의 눈가는 촉촉해 있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시작되자 박지수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데뷔전을 치른 소감을 밝혔다.

“많은 분들이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 같아 아쉬워요”

엄청난 기대 속에 나선 데뷔전에서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활약을 펼쳤다는 자책감이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박지수가 눈물의 인터뷰를 하는 동안 그 모습을 지켜보는 필자는 속으로 ‘아이고 예뻐라’는 혼잣말을 하며 ‘아빠미소’를 짓고 있었다.

KB스타즈 박지수 (연합뉴스 자료사진)

너무나 앳되고 여린 소녀와 같은 모습 한편으로 뜨겁디뜨거운 승부욕과 열정을 지닌 박지수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대표팀에서 박지수를 지도했던 스승이었다가 이날 적장으로 박지수를 상대한 우리은행의 위성우 감독은 프로 데뷔전을 치른 박지수에 대해 “조금만 더 적응하면 리그를 좌지우지하는 선수가 될 것 같다."고 칭찬했다.

위성우 감독과 같은 전문가가 아니더라도 이날 박지수의 플레이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박지수의 다음 상대는 현재 리그 2위를 달리고 있는 부천 KEB하나은행이다. 예상컨대 박지수가 뛰는 KB스타즈를 상대해야 하는 KEB하나은행은 상당한 당혹감을 느끼게 될 것이다. 어쩌면 박지수의 프로 첫 승이 이날 이뤄질지도 모르겠다. 승리 후 미소 지으며 인터뷰 하는 박지수의 모습이 기대된다.

스포츠 전문 블로거, 스포츠의 순수한 열정으로 행복해지는 세상을 꿈꾼다!
- 임재훈의 스포토픽 http://sportopic.tistory.com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