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집회에서는 작은 발언들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 중에서도 유독 어린 학생들의 말들이 어른들을 부끄럽게 만들었고, 그것이 다른 때와 달리 촛불이 오래 타도록 만든 원인의 하나가 됐을 거라 짐작하게 된다. 그 중 잊을 수 없는 한 발언. 이 학생은 학교를 파하고 곧바로 왔는지 교복차림에 어깨에는 가방을 맨 채로 발언대에 올랐다.

“저는 이 나라가 꿈같은 세상을 만들어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꿈이라도 꿀 수 있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이 나라는 저와 같은 중고생들의 미래를 방해하고, 저희가 꿈조차 꾸지 못하도록 점점 변해가고 있습니다”

국회에서 열리고 있는 청문회는 참 신기한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증인들은 하나같이 “모른다” 아니면 “기억나지 않는다”였다. 사람만 바뀌었지 대답은 누가 해도 똑같았다. 안타깝게도 대학의 교수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15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4차 청문회에서 증인으로 나온 최경희 전 이화여자대학교 총장(앞줄 오른쪽), 김경숙 전 이대 체육대학장(앞줄 왼쪽), 남궁곤 전 이대 입학처장(뒷줄 가운데). Ⓒ연합뉴스

딱히 믿음직스럽지는 않지만 교육부 감사도 이화여대에 부정이 있었음을 확인하였고, 검찰에 수사의뢰도 한 상태이다. 그 시끄럽던 정유라의 이화여대 입학은 취소가 되었고, 특혜가 있었다는 사실은 공식화되었다. 국회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세 명의 증인 총장, 입학처장, 체육대학장, 그들 역시 여느 증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러나 달라야 했다. 적어도 학생들을 가르쳐온 교수들만은 다른 증인들과 달라야 했다. 대부분의 국조위원들은 심문 중에 자주 이대학생들이 보낸 분노와 항의 그리고 울분을 전했다. 총장을 기다리며 농성하던 학생들에게 들이닥친 1,600명의 경찰병력을 봤을 때 학생들은 분노와 절망을 느꼈다고 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지난 8월 본교 ECC 광장에서 최경희 총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 사태의 중심에 섰었던 학교행정의 주축들이 모두 청문회 증인석에 앉은 모습을 보는 학생들의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교육부 감사에서 정유라의 특혜가 밝혀졌는데도 한사코 특혜가 없었다는 주장으로 일관하는 그들의 모습은 복잡했던 감정을 분노로 바꿔버렸을지도 모른다.

특혜는 있었지만 특혜를 준 사람은 없는, 세상에서 유일하게 대한민국에서만 통하는 기이한 문법. 이날 JTBC <뉴스룸>의 앵커브리핑은 이성복 시인의 <그날>의 마지막 한 줄을 인용했다.

“모두 병들었는데도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시는 늘 어렵다. 이성복의 이 시 한 줄도 참 어렵게 보면 정말 어려운 문장이다. 그렇지만 그 함의를 다 알아내겠다는 의욕을 버리고 담백하게 보면 어렵지 않게 ‘불감증’이라는 단어를 연상해낼 수 있다. 청문회에 선 이화여대 세 명에게는 아무리 큰소리로 울부짖어도 들리지 않을 것이다.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

분노하면서도 부끄러워 견딜 수 없는 시간이었다. 몸은 꽁꽁 묶여 있는데 벌어진 옷섶으로 벌레가 파고드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심정이랄까. 적어도 누군가의 스승이었다면, 다른 증인들과는 달랐어야 했다. 이래서야 이대생들에게 더 나아가 이대를 꿈꾸는 많은 여고생, 여중생들에게 어떤 꿈을 꾸게 할 수 있겠는가.

후안무치의 시대.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도덕의 불감증의 시대라도 스승이라는 말의 무게를 십 원 어치라도 지키고 살았다면 노회한 정치인이나 관료들과는 다른 태도를 보여야 했다. 이공계라서 누구를 잘 몰랐다는 대답 따위는 하지 말아야 했다. 자신들의 제자들이자 후배들을 더 부끄럽게 하는 비정상의 모습은 보이지 말아야 했다. 부끄러운 스승들 덕분에 제자들은 자신들의 간절한 꿈 하나를 지워야 하지 않았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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