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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선 의료' 앞에 무너진 법과 원칙정치적 냉소주의 뒷받침하는 '효율성 추구'와 맞서야
김민하 기자 | 승인 2016.12.15 08:44

14일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국정조사 특위의 청문회는 서글펐다. 박근혜 대통령의 ‘미용시술’에 대한 질문과 답이 오가는 와중에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는데, 그것들이 의미하는 바는 대통령의 건강이 아무런 체계 없이 다뤄졌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청문회에 출석한 김상만 전 대통령 자문의는 자신이 대통령에게 주사제를 직접 건넸고 이용 방법까지 설명했다고 증언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면역 기능에 이상이 있었다는 증언도 나왔다. 이런 문제들이 대통령의 건강을 책임지는 공식 라인이 아닌 대통령이 개인적으로 진료를 받았던 의사들에 의해 다뤄졌다. 이 의사들은 ‘비선 실세’ 최순실 씨와의 인연으로 여러 특혜를 받았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대통령의 건강은 안보사항이다. 정신을 잃는 것이 두려워 아예 수면내시경을 거부했다는 전임 대통령들도 있다. 비록 가상이긴 하지만 민주당 소속 대통령이 주인공으로 나오는 미국 드라마 <웨스트윙>도 대통령의 건강 문제를 소재로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드라마에서 대통령은 다발성경화증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숨겼고 의사인 영부인이 이 증상을 감경하기 위한 주사를 임의로 놓았다는 의혹에 휘말려 특검 조사를 받는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런 중대한 문제를 비선 의사들에게 내맡기고 아무렇게나 다룬 이유가 무엇인지 의문이다.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다른 국정 사안에도 그랬듯 대통령이 공적 문제에 대한 인식 자체가 없고, 문제를 공적으로 다룬다는 게 어떤 것인지를 이해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김영재 김영재의원 원장이 14일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박 대통령의 안면시술 의혹과 관련된 자료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규칙과 체제에 대한 냉소주의적 태도이다. 냉소주의는 당위나 명분을 어떤 ‘핑계’의 지위로 끌어내리고 그것이 가리고 있었던 실제적인 것을 추구하려는 태도로 이어진다. 박근혜 대통령에게 자신의 건강을 관리하기 위해 존재하는 이런 저런 체계들은 그저 의미 없는, 일을 번거롭게 하는 규정에 불과하였다. 안보사항인 대통령의 건강을 다루는 방식에 대해 고민하기보다는 자기가 받던 특수한 진료를 청와대 안에서도 반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만이 중요했다. 그 결과가 이날까지 이어진 낯 뜨거운 논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경제 정책에 대해서도 이런 태도로 일관했다. 언젠가 박근혜 대통령이 쓴 ‘규제 단두대’라는 표현은 경제 주체들이 자기가 가진 힘을 남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존재하는 ‘규제’들의 대다수가 쓸데없는 것들이므로 이것들을 모두 없애야 한다는 취지다. 그런데 대개의 규제란 이유가 있어서 존재하는 것이다. 국가가 할 일이 없거나 민간을 괴롭히고 싶어서 쓸데없이 만들어 놓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미르 K스포츠 재단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국가 발전을 위한 일이었고 자신은 사익을 편취한 적이 없다는 주장을 반복하는 것 역시 이런 인식을 보여준다. 미르 K스포츠 재단 출연을 위해 재벌 총수를 윽박지르고 돈을 낸 대기업에 특혜를 준 것은 비록 법과 상식을 거스르긴 했으나 ‘통치행위’라는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는 항변이다. 즉, 자신이 직접적으로 돈을 받은 것이 아니라면 이런 사소한(?) 법 위반 정도는 괜찮다는 인식이다.

‘본질’을 위해 규칙이나 법을 업신여기는 태도에는 ‘효율성’을 다른 모든 가치의 앞에 놓는 이데올로기가 작용한다. 자신의 의도를 효율적으로 추구할 수 있다면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규칙이나 법 위반은 감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인식은 경제정책에서 ‘규제’에 대한 태도를 드러낸 것과 자신에 대한 의료행위를 비선의사에게 맡기는 행위 등 대통령이 국정을 대하는 모든 태도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을 찾다 우리가 발견한 것은 대통령이 평소 출근을 하지 않는 ‘관저 대통령’이었다는 사실이다.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과거 “대통령은 아침에 일어나면 출근이고 잠자면 퇴근이다”라고 주장하였는데, 이 발언이 이런 진실을 가리키고 있었다는 걸 우리는 미처 알지 못했다.

이러한 태도의 배후에도 효율성의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박근혜 대통령이 본관에 출근하기 위해서는 90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리를 매만지고 화장을 해야 한다. 그러니 특별히 밖에 나갈 일이 없는 날에는 ‘효율적으로’ 관저에서 전화로 업무를 봐도 괜찮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정확한 동선과 업무 내용이 상시적으로 파악돼야 긴급 사태에 대응이 가능하다는 원칙은 무력화돼야 한다.

울산 군 부대에서 일어난 폭발 사건은 이런 식의 개념이 박근혜 대통령뿐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강력하게 뿌리 내리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 사건에서 군인들은 상부로부터 불이익을 받지 않기 위해 장부를 조작해 훈련에 쓰이는 폭음탄을 완전히 소모한 것처럼 꾸몄고, 이에 대한 근거를 사후적으로 만들기 위해 남은 폭음탄의 임의 소모를 결정했다.

여기까지만 봐도 법과 규칙이 어떻게 거추장스러운 종류의 것으로 여겨지고 있는지 알 수 있으나 군인들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갔다. 폭음탄을 그저 소모하는 것조차 효율적이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래서 이들은 좀 더 효율적으로, 폭음탄을 분해해 화약만을 추출하는 방법을 택했다. 뇌관이 없으니 안전하다고 생각한 것인지, 이들은 추출된 화약을 길에 아무렇게나 방치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1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3차 청문회에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질문에 답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 역시 효율성 추구의 이데올로기에 의한 파국이 실제로 나타난 대표적 사례이다. 이윤을 위해서라면 이미 존재하는 법과 원칙을 무너뜨려도 괜찮다는 인식이 참사의 근본적 원인이다. 세월호의 선사는 이윤의 극대화를 위해 배의 균형을 유지해줄 평형수를 덜어냈고 승객을 더 태우기 위한 개증축과 필요 이상의 과적을 감수했다. 최근에는 이 과정에 국정원 등 국가기관이 모종의 이유로 적극적으로 동조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효율성의 이데올로기는 그 자신을 반박하는 과정에서도 등장한다. 효율성을 추구하려고 법과 규칙을 업신여기면 오히려 비효율적이 된다는 식이다. 법과 규칙을 지키는 게 당장은 아닌 것 같아도 멀리 보면 효율적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효율성의 이데올로기와 맞서는 것은 원칙과 제도, 즉 당위나 명분을 어떤 ‘핑계’로 보는 냉소주의와 대결해야 할 문제이지 또 다른 형태의 효율성을 추구할 문제가 아니다.

세월호 7시간의 진실이나 대통령의 ‘비선 의료’에 대한 문제의식은 이 지점까지 가 닿아야 한다. 그런 면에서 14일 청문회는 표면적 사실만을 다루려는 정치권의 편의적 인식을 드러낸 것이 아닐까 한다. 가장 섬뜩한 것은 박근혜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권력이 총과 탱크가 아닌 정상적인 대의민주주의의 절차에 의해 선출되었다는 사실이다. 이런 냉소적 권력이 이미 우리 체제의 일부인 것이다. 체제의 문제와 맞서려는 정치권의 노력이 절실한 때다.

김민하 기자  acidkis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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