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각한 파문을 예고하며, 언론장악 ‘MB악법 전쟁’이 일단 한나라당의 승리로 끝난 듯하다. 그러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다. 언론으로 위장한 범죄집단이나 다름없는 조중동과 재벌에 지상파 방송 등을 내주는 일은 하루아침에 승패가 나지 않는 싸움이다. 신학림 전 언론노조 위원장의 기고를 몇차례 나누어 싣는다. <편집자 주>

2MB 정권의 언론악법 강행처리의 일등 행동대장은 단연 김형오 국회의장이다. 오락가락하던 그가 마침내 감추어 두었던 ‘속셈’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그는 최근 자신의 정치 일생에서 아마도 가장 큰 두 가지 결심을 내린 듯하다. 하나가 지난 제헌절 기념식 등을 통해 밝힌 헌법개정에 대한 강한 집착이고, 다른 하나가 이번 한나라당의 언론악법에 대한 직권상정이다.

▲ 김형오 국회의장. 사진은 국회 문방위 민주당 의원들 항의방문이 예고된 지난 7일 의장실을 나서는 모습. ⓒ 오마이뉴스 남소연
김형오 의장은 지난 3월2일 언론법 직권상정으로 국회가 파국으로 치달을 때 자신의 공식 견해를 담은 ‘보도자료’를 자신의 이름으로 발표했다.

김형오 의장은 당시에도 직권상정은 피할 수 없다면서도, “여당에서는 가장 쟁점이 되고 있는 방송법과 관련해 본회의 표결에 앞서 대기업의 지상파 방송 참여를 원천적으로 배제하는 수정안이 나와야 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그랬던 자신이 입장을 180도 바꾼 것이 마음에 걸렸던지, 22일 대기업과 조중동 등에 지상파 방송 참여를 허용하는, 본질적으로 한나라당의 최초 원안과 다를 바 없는 악법들을 직권상정하며 마치 고뇌에 찬 결정인 양, “저는 외롭고 불가피하게 내리게 된 오늘의 결단에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책임을 지겠다. 국민의 질책을 달게 받겠다”고 주장했다.

그런 김 의장을 미디어오늘은 22일 기자칼럼을 통해 “동아일보 출신 국회의장 ‘정치 야바위’: 언론법 대국민 사기극 '숨은 주연'”으로 묘사했다.

김형오 국회의장이 가장 첨예하고 민감한 두가지 정치현안에 대해 국회의장으로서 본분을 망각한 채 과감하게 승부수(?)를 던진 이유는 무엇일까?

필자가 보기에 김 의장은 2012년 집권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을 염두에 두고 있는 듯하다. 현재로선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확고부동의 우위를 점하고 있는 상황을 고려하면 그가 집권당의 후보가 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그러나 차기 대선 과정에서 한나라당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시도할 것이 예상되는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등의 태도와 변수를 고려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 대선 경선 과정을 통해 이명박 대통령과 이상득 의원 등은 어떤 경우에도 박근혜 전 대표에게 차기 대권을 넘겨서는 안된다는 확고부동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을 김형오 의장이 알아차렸거나, ‘입법전쟁’ 과정에서 여권 수뇌부로부터 이런 사실을 귀띔 받았을 수도 있다.

말하자면, 김형오 의장은 현재 한나라당 내부의 잠재적 대선 후보군들과 자신을 비교한 결과, 자신이 박근혜 전 대표를 대체할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김형오 의장은 동아일보 기자 출신으로 부산 영도를 지역구로 둔 5선 의원이다. 18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부산 영도에 출마해 2만 4,426표(43.46%)를 얻어 2만 3,458표(41.74%)를 얻은 무소속 김용원 후보와 접전 끝에 가까스로 당선됐다. 두 후보의 표 차이는 968표에 불과했다.

김형오 의장은 이명박 대통령 만들기 공신 중 한 명이다. 그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다. 국회 정보과학위원장도 지낸 바 있고, 정치학 박사학위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스스로 차기 대선 주자로서 손색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 사이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가면 가능성이 열릴 수도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정치와 정치인의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있을 법한 계산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MB언론악법 강행처리 과정에서 한 때 주가를 올렸던 박근혜 전 대표는 막판에 국민의 뜻과 배치되는 언행으로 최대의 패배자가 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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