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이다.” 기 드보르, <스펙터클의 사회>

때로는 한 장의 사진이 모든 진실을 함축한다. 이 때, 진실이란 것은 불변하고 고정된 무엇이 아니다. 저기 멀리 있어 누구나 노력하면 손닿을 수 있는 것이 아니란 말이다. 진실은 그보다는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 속에 있다. 어떠한 관계를 구성하는가에 따라 진실은 달라진다. 한 장의 사진이 진실을 함축하는 방식이 이와 같다. 사진 속 프레임의 진실은 시간이 정지되고 공간이 한정되어 불변하고 고정되기 때문에 진실이 담기는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사진 속 피사체의 관계가, 사람들의 사회적 관계가 시각화되기 때문에 그 곳에 진실이 담겨 있다.

미디어악법이 날치기된 날, 우리는 다시금 스펙터클의 사회를 실감하였다. 무수히 많은 시각적 이미지들이 그 날의 비극을 증거한다. 시각적 이미지로 ‘채증’하려는 시도들이 뒤따르고 있다. 이를 통해 그 날의 몰염치와 비상식을 폭로하려 한다. 허나, 이것으로는 부족하다. 단순히 대리투표를 ‘채증’하고, 폭력행위를 확정하려는 행위는 그 날만의 몰염치와 비상식만을 고발하고, 이를 야기한 더 큰 맥락을 놓치도록 만든다. 그리하여 자칫 더 큰 진실을 가리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그보다는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를 읽어내야 한다. 기 드보르가 말한 것처럼 “스펙터클은 이미지들의 집합이 아니라, 이미지들에 의해 매개된, 사람들 간의 사회적 관계이다.”

▲ 22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 의장석 주변을 에워싸고 있는 한나라당 진성호 신지호 의원등이 안상수 원내대표로부터 오늘중 직권상정 처리 의사를 밝힌 김형오 의장의 메시지를 들으며 표정이 밝아지고 있다. ⓒ 오마이뉴스
22일의 진실이 담긴, 즉 사람들 사이의 사회적 관계가 드러난 이미지로 <오마이뉴스>의 위 사진을 꼽는다. 기사를 업데이트한 시각은 12시20분. 날치기가 이루어지기 세 시간 반 전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과연 한나라당이 미디어악법을 통과시키는 무리수를 둘 것인지가 확실치 않았다. 허나 필자는 이 사진으로 22일의 비극을 직감적으로 예감했다. 허리에 뒷짐을 지고 득의양양하게 웃음을 짓는 진성호 의원의 모습은 흡사 개선장군을 연상케 했다. 그의 미소는 이미 승리를 선취하였다. 의회제의 민주적 합의의 정신을 하찮게 여기는 저 모습. 국민의 다수가 반대한다는 사실 자체를 망각한 저 모습. 공익을 먹이삼아 다가올 사익으로 배를 채울 기쁨에 얼굴 한 가득 포식자의 여유를 감추지 못한 저 모습에서 이미 판은 어그러질 것임을 예상했다.

일말의 희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허나 몇 시간 뒤 속절없이 상식은 짓밟혀졌고 분노와 허탈감은 가득했다. 저녁 무렵 여의도 집회 현장으로 찾아가 공분을 나누려 했음에도 쉽사리 해소할 수 없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다시금 저 사진을 꼼꼼히 살폈다. 무엇이 나로 하여금 미리 비극을 예감케 했을까를 다시 살폈다. 단순히 진성호 의원의 득의양양한 웃음과 그로 인한 패배의 모멸감 때문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미처 머리로는 깨닫지 못한 허나, 가슴으로는 직감한 진실이 저 사진 속에 담겼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직감을 이성으로 이해하고자 했다.

다시금 살펴본 사진 속에서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 즉 맥락이 놓여있음을 발견한다. 진성호 의원이 누구던가? 이른바 ‘네이버는 평정, 다음은 폭탄’ 발언으로 사회적 파장을 낳았던 인물이 아니던가? 포털 사이트를 관리, 평정하여 이를 토대로 국민의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는 뻔뻔함을 드러낸 인물이 아니었던가? 진성호 의원 본인은 그와 같은 발언을 부정하지만 한 토론 프로그램에서 그는 간접적으로 그와 같은 발언이 있었음을 시인한 바 있다. 또한 이것만은 부정할 수는 없겠다. 그는 전직 조선일보 기자였다. 조·중·동에게 방송을 안겨주는 미디어악법의 중심에 전직 조선일보 기자 진성호 의원이 있었다. 결코 그는 보수 언론의 이익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은 인간이었다. 그의 미소는 지상파 방송까지 ‘평정’했다는 개선장군의 미소였음이 분명하다. 그의 미소는 옛 주군에게 일용할 양식을 갖다 바쳐 영구적인 충성 서약을 하는 기쁨의 미소였음이 분명하다. 고양이에게 생선 가게를 맡긴 꼴이었다.

진성호 의원의 옆에서 또한 승리의 미소를 짓고 있던 인물도 주목해야 한다. 그는 22일의 대리투표 논쟁의 중심에 서 있는 신지호 의원이었다. 작년 신지호 의원이 민주당의 전 김근태 의원을 제치고 국회에 입성한 것은 세간에 큰 화제가 되었다. 민주화 운동의 대표 격인 김근태를 보수·수구 뉴라이트의 신지호가 꺾은 것은 대한민국에서 민주주의 세력의 후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후 그는 결코 믿음을 배신하지 않고 이번에도 민주주의적 절차를 훼손했다는 논쟁의 중심에 서 있다. 또한 그는 전직 교수 출신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 후기 뉴라이트의 중심에 있으면서 학계를 대표해 한나라당의 보수 세력을 측면 지원하던 그가 이제는 국회의원이 되어 본격적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역행하는 핵심 세력이 되었다. 정치학을 전공한 학자로서의 양심은 도대체 어디까지가 진심이었을까?

전직 기자와 전직 학자의 연합에 또 다른 한 연합의 축을 구성하는 것은 전직 검사였다. 안상수 원내 대표는 검사 출신으로 국회에 입성한 인물이었다. 그는 고 노무현 대통령 추모 정국에서 “국민장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세력이 있어 소요사태가 일어날지 걱정”이라고 발언해 국민적 추모의 여론과 동떨어진 시대 인식을 보여준 바 있다. 국민의 상식적 비판으로부터 거리두기는 요즘 그의 유일한 관심사인 듯 보인다. 미디어악법 날치기의 총연출자인 그는 날치기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에 "정권퇴진이니 반정부니 하며 흑색선전으로 사회를 분열시키는 것은 국가 이미지를 실추시키고 국민에게 해독을 끼치는 것"이라 하며 또다시 국민과 거리를 둔다. 이로써 분명해지는 것은 미디어악법 제정의 목적이다. 국민의 상식적 비판을 멀리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여론을 호도·조작하기 위해서는 수족처럼 부릴 온순한 미디어가 필수적이었겠다.

언·학·검의 삼각동맹. 가슴의 직감을 머리의 이성으로 되돌려 보건대, 오마이뉴스의 위 사진에서 읽을 수 있는 보다 심층적인 진실은 대한민국 대표적 기득권들의 삼각동맹이었다. 정치의 장에 소환되어 온 그들은 국민 전체를 대표하고 대의하기보다는 기득권에 의한, 기득권을 위한, 기득권의 정치를 펼치고 있다. 더 나아가 국민의 의견을 전달하려는 언론을 옥죄고, 더 나아가 언론을 자신들의 선전 도구로 이용하기 위해 미디어악법을 관철하려 한다. 그 와중에 자신들의 기자로서의, 학자로서의, 법조인으로서의 양심은 마치 헌 신짝처럼 내 던져 버렸다. 한 장의 사진이 전해주는 진실은 그와 같았다. 이는 지난 8 개월간의 미디어악법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의 진실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은 단지 소란스러운 정쟁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의 권리가, 우리의 미래가 저들에 의해 저당 잡혀 있다는 사실이다. 침묵과 냉소로 회피하기에는 저들의 미소가 너무나 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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