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숙자 국회의원'이라는 별명을 가졌던 최문순 의원. 지난 해부터 이명박 정권의 일방적인 언론통제 방송장악기도에 맞서 맨 앞 자리에서 가장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켜던 국회의원. 폭염의 여름 낮에도 혹한의 겨울 밤에도 촛불들과 함께 끝까지 싸움판을 떠나지 않았던 국회의원. 투쟁의 현장에서 연설을 부탁하면 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았고, 경찰의 철통방어벽도 넘어 달려갔던 최문순 의원. 서민을 섬기는 국회의원이 아니라 존재 자체가 서민이었던 그런 최문순 민주당 의원이 23일 국회 의안국에 ‘의원 사직서’를 제출했다.

▲ 7월 23일 '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히는 최문순 의원ⓒ나난

“언론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켜내지 못해 죄송합니다. 헌법을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 민주주의를 지키지 못해 죄송합니다”며 “오늘 국민들께서 저에게 부여해주신 헌법기관으로서의 권능을 국민 여러분들께 반납하고자 한다”며 의원직 사퇴를 선언‘해버린 것’이다.

지난 월요일 저녁부터 최 의원 등과 함께 한나라당의 언론악법 강행처리 저지를 위해 여러 가지 대책을 숙의하고 밤 12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회의를 끝내며 일어나는 데 느닷없이 최 의원이 한 마디 툭 던진다. “만약에 언론악법 못 막으며 내 자리 하나 봐주세요.” 그 때 대답이 이랬다. “최 선배가 언론연대 오시면 자리뿐이겠습니까? 보좌진들도 다 함께 오세요”하며 쉽게 말을 받았다.

그런데 21일 결국 한나라당은 조중동의 홍위병 행세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조중동악법’을 폭력적이고 불법적으로 통과시켜버렸다.

그리고 이 글을 쓰기 직전 최 의원 보좌관으로부터 문자를 받았다. “의원 오늘부로 사퇴...방금 기자회견 했음”이라는 아주 짧은 메시지. 하지만 그 무게와 그 마음을 읽을 수밖에 없는 사퇴로 다가온다. 마음을 무겁게 눌러온다.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아있는데...하는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방송법은 국회법에 따라 무표 처리해야 하고, 앞으로 남은 ‘공영방송법, 미디어렙법’ 등 숱한 반민주적 언론악법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데...하는 마음이 없으면 거짓말이다. 방송법 무효 투쟁에 대한 승리를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더욱 아쉽고 안타깝다.

하지만 동의하고 지지할 이유가 더욱 절실했다. 정치인은 자신이 한 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수 없는 말을 했고, 특히 정치인들의 말에 대해서 한국인들은 거의 믿지 않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세태다.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들의 ‘거짓말’ 때문에 우리 사회는 엄청난 비용을 치러왔고, 치루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헌데 최 의원은 자신이 해 온 말에 대해 책임을 졌고, 그것을 ‘사퇴’로 표현했다.

정치인의 정치적 발언쯤으로 생각하던 국민들에게는 틀림없이 ‘신선한 충격’일 것이고, 정치적 발언쯤으로 폄훼하면서 ‘사퇴하는 지 보자’며 낄낄거리며 비아냥댔을 한나라당의 야비한 정치인들에게는 ‘여전히 일고의 가치도 없는, 굳이 한 마디 한다면 가벼운 처신’쯤으로 매도할 수 있겠다.

내일 ‘조중동악법’의 최대 수혜자 조중동은 언급조차 하지 않거나, 국회의원 자리를 가볍게 생각하고 사퇴하는 철부지 의원쯤으로 매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민주당 내에서는 자기만 영웅이 되려고 한다며 비난하는 분위기라든지, 당내 의원직 사퇴 그룹과 국회 내 투쟁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그룹간의 갈등을 촉발시켰다며, 민주당 내부는 대체적으로 최문순 의원의 ‘돌발적인 행동’에 대해 비난하는 분위기라며, ‘민주당의 한 관계자’ 또는 ‘모의원’으로 표기해 인용하는 ‘익명의 취재원’을 악의적으로 동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최 의원의 의원직 사퇴는 새로운 정치 패러다임의 첫 걸음이 되도록 많은 이들이 크게 의미 부여했으면 좋겠다. 정치인뿐만 아니라 공직자들이 뱉아 온 그 수많은 거짓말, 심지어 검찰총장 후보마저도 불법과 탈법 그리고 위선의 탑 쌓기가 일상인 풍토에서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지고 의연히 의원직 사퇴를 결행한 최 의원의 사퇴가 한낱 ‘치기’쯤으로 치부되며, ‘원래 정치라는 것이 상대방을 속이고 국민을 속이고 심지어 자신마저 속일 수 있는 것 아냐’는 불신을 개선하는 데 의미 있는 밀알이 되었으면 한다.

최 의원의 결단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정치행위로, 한국의 정치문화가 바뀌는 촉매제로 승화시키려면 함께 최문순 의원과 싸워야 한다. 함께 최문순 의원의 결단을 지지하고 '조중동악법 철폐투쟁'에 나서야 한다. 그럴 때만이 감정적인 ‘의미부여’가 아니라 ‘사회적인 의미 부여’가 가능할 터이고, 그럴 때만이 한국정치문화의 개선이 시작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문순 선배 우리 사무실에 와서 신문법, 방송법 등 ‘조중동악법’ 철폐투쟁을 함께 합시다. 그리고 책임지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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