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자에게 ‘표절’만큼 치욕스러운 일이 있을까? 보통 창작은 그 수준이 어떠하건 간에 어느 누군가의 상상력이 극한까지 총동원된 결과다. 창작이 어려운 이유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경험해봤겠지만, 긴장의 전율 끝에 만들어낸 창작물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이미 하늘 아래 존재했던 것을 확인하는 순간, 울화통 터지고 경우에 따라서는 눈물이 쏙 빠질 만큼 억울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런데 ‘표절’이 사실이라면. 이미 하늘 아래 존재했던 남의 것을 살짝 눈속임으로 나의 것으로 포장한 것이라면? 상황은 180도 달라진다. 더군다나 그걸 버젓이 공공연하게 내 것이라고 유포하여 이익까지 취했더라면? 비난 정도가 문제가 아니다. 비난은 약소하다. 빤빤한 낯으로 충분히 견뎌내야 한다. 세상에 구구절절한 사연이 없는 ‘표절’은 없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남의 창작물을 가져다 자기 것 인양 허세를 부리고, 이득을 얻었다면 대가를 치러야 한다. 무한한 반성이 필요하다. 남의 지적 재산을 도둑질한 것을 넘어 대중들에게 ‘거짓’까지 행한 셈이니 톡톡히 반성해야 한다.

표절이 창작자에게 끊임없는 긴장이고, 굴욕을 초래할 수 있는 독배인 까닭이다. 대중문화에서 ‘표절’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은 표절과 창작 사이의 긴장, 굴욕을 가까스로 면하고도 포기할 수 없는 독배의 유혹 때문이다. 그만큼 창작은 독창적인 무엇의 개발은 어렵다. 숱한 예능오락프로그램, 드라마가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했고, 굴지의 뮤지션이 발표하는 곡이 표절 시비에 휩싸인 적이 여러 번이다. 거의 매해 영화와 드라마, 소설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표절’ 논란이 있어왔다.

▲ 표절과 거짓말로 물의를 일으킨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 ⓒ 홈페이지 캡처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SBS <놀라운 대회 스타킹>(이하 스타킹)의 경우, 표절에 거짓말까지 보태지면서 점입가경이다. 오죽하면 다음 아고라에는 “SBS 스타킹 프로그램 완전한 폐지를 청원합니다!!!”라는 청원까지 올라왔을까. 알다시피 <스타킹>에는 입이 떡 벌어질 만큼의 기이한 재능과 재주를 가진 일반인들이 출연한다. 프로그램에 대한 질적 평가를 해주기에는 너무 진부한 포맷이지만, 매주 <스타킹>은 일상생활에서 보기 힘든 그런 ‘기인’과 ‘재주꾼’을 발굴해내며 만만치 않은 재미를 보장해왔다.

<스타킹>이 문제가 된 것은 지난 7월 18일 방송이었다. 스튜디오에 마련된 원룸세트에서 일반 출연자가 3분 안에 완벽하게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을 방송한, 일명 ‘3분 출근법’이었다. 헌데 이를 본 시청자들이 표절 의혹을 제기하였다. 일본 TBS 예능프로그램 <시간단축생활가이드쇼>에 소개된 ‘5분 출근법’과 유사하다는 것이었다. 옷을 재빨리 입고 벗는 방법, 빠르게 계란을 익히고 식사하는 방법, 싱크대에서 양치하며 바지를 손쉽게 입는 법 등 <스타킹> 출연자가 출근시간 단축 방법이라며 소개한 ‘비법’이 일본 예능프로그램에서 소개된 것과 똑같다는 것이다. 다만 다르다면 ‘3분’과 ‘5분’의 차이 정도였다.

▲ <스타킹>에서 소개된 '3분출근법'과 일본 TBC <시간단축생활가이드쇼>에서 소개된 '5분출근법' 비교 ⓒ <스타뉴스> 캡처

결국 표절논란이 거세지자 <스타킹> 제작진은 연예뉴스 <뉴스엔>과의 인터뷰에서 입장을 발표하였다. “전혀 몰랐"으며, "단지, 출연자가 구성해 온 내용을 방송하였다”는 해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표절 의혹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었다. 그때가지만 해도 문제는 다만 누구에게 표절에 대한 책임이 있느냐에 대한 해프닝성 문제였다. 제작진의 말대로 출연자가 스스로 모든 내용을 창안한 것이라 한다면, 제작진의 책임이 다소 상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출연자가 제작진을 속였다면, 필터링 과정에 대한 제작진의 ‘실수’ 정도로 인정될 수 있었던 사건이었다. 근데 당시 제작진의 입장이 ‘거짓’으로 들통 나고 말았다.

<노컷뉴스>는 “SBS '스타킹' 표절, 제작진 직접 주문했다”는 기사를 통해 당시 ‘3분 출근법’은 제작진의 ‘주문’이었다고 보도하였다. <노컷뉴스>에 따르면 “인터넷 UCC제작단 ‘두부세모’의 박모씨의 한 측근이 “SBS로부터 출연섭외를 받았을 뿐만 아니라 출연자인 박모씨에 일본 프로그램의 녹화 테이프를 보여주며 똑같이 해줄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제작진이 있는 가운데 연습까지 하는 등 제작진의 ‘주문’대로 구체적으로 관련 내용을 짰다는 것이다. 더욱이 <노컷뉴스>는 ”'스타킹' 연출진, 출연진에 '고정출연' 미끼 회유“라는 후속기사를 통해서 SBS 측에서 출연자에게 ‘고정출연’ 미끼를 던지며 표절에 대한 책임을 지라고 회유하려 했다는 내용을 전하였다. 당시 출연했던 박씨 측근의 증언을 토대로 하였다.

결국 SBS는 <스타킹> 홈페이지에서 ‘스타킹 “표절 건”에 대한 사과문’을 올렸다.

“지난 7월 18일 방송 내용 중 ‘3분 출근법’에 대해 진위를 알아본 결과, 제작진이 일본 동영상을 출연자에게 제공하고 연습시켜 출연시킨 것이 사실로 드러났으며 해당 연출자를 즉시 교체하고 연출 정지의 징계를 하였습니다. 이번 표절 건은 프로그램의 기획 의도와 정면 배치 될 뿐만 아니라 시청자의 신뢰에 반하는 행위로 어떤 변명으로도 용납될 수 없는 사안입니다. 시청자 여러분께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헌데 제작진의 사과에는 몇 가지가 빠져 있다. 표절과 거짓, 프로그램 조작 등을 둘러싼 도덕적 책임이 연출자 ‘징계’로 끝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과문에는 표절보다 시청자를 더욱 우롱했던 연출자의 ‘거짓말’, 그리고 출연자 ‘회유’ 등에 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적시되어 있지 않다. 게다가 <스타킹>의 표절과 거짓말은 “시청자의 신뢰에 반하는 행위”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물론 표절인 줄 알면서도, 연출된 방송에 출연한 출연자도 도덕적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겠지만, 그이 역시 ‘거짓’으로 책임을 회피하려고 했던 <스타킹> 제작국에 의해 피해자이긴 마찬가지이다. 허나 SBS 측에서는 분노한 시청자들에게만 고개를 숙였을 뿐, 이에 관해서는 일언반구도 않고 있다.

개인 PD의 도덕적 자질에 의한 일종의 해프닝으로 보기엔 단단히 찝찝하고, 표절과 거짓말까지 동원할 수밖에 없었던 연예오락프로그램의 무리한 시청률 경쟁이라 하기엔 제작진의 눈속임이 가당찮았던 <스타킹>. 결국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도전하라!”는 <스타킹>의 기획의도처럼 <스타킹> 그 자체가 그렇게 ‘핫’한 이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스타킹>이 의도한 "스타킹 정신"이 부메랑처럼 <스타킹>을 향하고 말았다.

하나. 전 국민을 깜짝 놀래 켜라! → 표절도 모자라, 거짓말까지,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둘. 전 국민이 지루할 틈을 주지 마라! → 지루하지 않고, 분노할 뿐이다.
셋. 전 국민이 스타킹이 될 때까지 방송한다! → <스타킹>이 스타킹이 될 때까지만 방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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