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통과됐다. 무효 논란이 계속될 수 있지만 어쨌든 현재로서는 통과됐다. 10% 30% 30%라는 비율과 의미를 알게 되었다. 신문과 대기업이 콘소시엄을 구성하면 지상파 20%, 종편 60%, 보도전문채널 60%까지 소유할 수 있게 된다. 외자에도 종편의 20%, 보도전문채널의 10%까지 지분 소유가 가능하도록 했다. 신문과 대기업과 외자가 연합하면 지상파 20%, 종편은 80%, 보도전문채널 70%까지 장악할 수 있다. 누군가의 말대로 여론을 지배하는 막강한 초국적복합미디어기업(transnational media corporation)이 얼마든지 출현할 수 있다. 신문과 대기업의 컨소시엄에 종편 2개가 승인되고, 여기에 초국적 미디어자본이 연합하는 그림이다. 미국 미디어자본으로서는 한류 열풍으로 컨텐츠 유통시장이 잠식되는 걸 차단하기 위해, 또 종편의 특혜를 배경으로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판단이 들면 바로 뛰어들 수 있다.

이처럼 10% 30% 30%를 만들기 위해 국가권력, 미디어권력, 자본권력이 총동원되었다. 말 그대로 규제 장벽을 무너뜨린 것이다. 그 비율의 최고 수혜자로 지목되는 조중동의 오늘 사설은 전율을 느끼게 한다.

“미디어법 통과는 어떤 분야든 '개방'과 '경쟁'이 상식인 글로벌 시대에 누구는 되고 누구는 안 된다는 구(舊)시대적 진입 장벽 하나가 일부라도 무너졌다는 상징적 의미가 있다.”(7월 22일자 조선일보 사설)

“어제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새 미디어법의 핵심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0개국 중 한국에만 있는 신문과 방송의 겸영금지 조항을 없애 매체 간 장벽을 허문 것이다.”(7월 22일자 동아일보 사설)

“이제부터는 미디어산업 육성을 위해 국민적 힘을 모으는 데 집중해야 한다. 미디어 산업은 선진 강국들이 미래의 성장동력으로 군침을 흘리는 분야다. 우리도 결코 놓쳐서는 안 될 블루오션이다.”(7월 22일자 중앙일보 사설)

▲ 동아일보 7월 23일자 31면 사설.
‘글로벌 개방과 경쟁’ ‘규제 장벽 해체’ ‘차세대 성장동력’... 익숙한 경구들이다. 미디어법 추진 과정에 바닥에 깔려 있던 단어와 단어의 조합이다. 이들 경구들은 최소한 미디어법 추진에 있어 여론의 지지를 받지는 못했다. 다만 미디어 분야가 아닌 부문 분야에서도 일관되게 관철되는 오늘날의 지배적인 이데올로기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주목할 만한 것으로 이들 경구의 저작권 시비를 가리자면 최소한 한나라당은 아니라는 점이다.

조선일보는 방송 진출 후보기업들이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삼성, 현차, LG 등은 여론 반감이 큰 상황에서 이름이 오르내리는 걸 꺼려하고, 이미 방송에 한 발을 담근 SK, KT, CJ, 태광산업, 현대백화점 등은 제각기 물밑 계산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만으로 보면 적극적인 개입과 투자에 나서는 분위기가 아니다. 당장에 대규모 투자로 품질 높은 컨텐츠가 생산되지도 않을 거니와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지지도 않을 전망이다. KISDI가 미디어법안 통과시 최대 2만1,400개의 일자리와 2조9,419억 원의 생산 유발 효과가 있다고 밝힌 추정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당장 미디어법이 통과됐다고 외자가 물밀듯이 들어올 것 같지도 않다. 자본의 미디어 시장 진입 규제는 없어졌지만 자본이 어떤 방식으로 어느 규모의 투자를 할 지, 얼마만큼 경쟁력 있는 미디어의 산업적 재편을 가져올 지 현재로서는 가늠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서는 한나라당도 설득력 있는 데이타를 내놓은 적이 없다.

▲ 조선일보 7월 23일자 31면 사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보니 새삼 떠오르는 게 한미FTA 협상이다. 한미FTA 비준동의안에 포함된 방송.통신 분야 협상 내용은 △방송채널사용사업자(PP) 외국인 간접투자 100% 허용(보도.종편 및 홈쇼핑은 49%) △국산 프로그램 의무 편성 비율 5% 완화(영화 20%, 애니메이션 30%) △1개 국가 수입쿼터 제한 20% 완화 △기간통신사업자의 간접투자 100% 허용((KT, SKT는 49%)으로 외국인 지주회사의 IPTV 등 뉴미디어 사업 진출 보장 등으로 정리됐다. 지상파방송 및 보도.종편채널에 대한 외국자본의 직접투자는 금지하는 내용의 ‘현재유보(AnnexⅠ)’가 적용됐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미디어법은 한미FTA 협상에서 제한했던 직접투자까지 죄다 열어놨다. ‘개방’ 정도로 따지자면 참여정부가 창문 틈을 살짝 열어놓는 정도를 이명박 정부가 대문까지 열어놓은 셈이다. 국내 자본과 외자가 얼마든지 연합할 수 있고, 얼마든지 수익을 나눠가지며, 얼마든지 먹고 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참여정부 당시 기획재정부는 2006년 기준 미국 통신시장 규모가 약 359조 원으로 한국 통신시장 규모(37~38조 원)의 약 10배라는 소개와 함께 “통신강국인 한미 양국간 FTA를 통해 국내 제도의 선진화 및 통신서비스산업의 경쟁력과 소비자 혜택을 제고할 수 있다”고 자랑했다. 정보통신부도 2007년 4월 초 한미FTA 협상 결과 브리핑에서 ‘대체로 만족할만한 결과’라고 했다. KT, SK텔레콤, 하나로텔레콤 등 기간통신사업자에 대한 외국인 직접 투자 지분 제한율을 49%로 지켜낸 걸 엄청 자랑했었다. 타임워너. 디즈니. NBC유니버설 등 미국 미디어그룹들이 한국 국경을 넘을 수 있게 되었다고 들뜬 표정들이었다. 외자가 직접 손실을 입은 경우 해당 기업을 직간접적으로 소유 또는 통제하는 투자자가 해당국 정부를 제소할 수 있도록까지 해놨다. 한미FTA 협정문의 이른바 투자자 정부 제소 조항으로, 외자의 투자활동의 안정성을 법제도적으로 뒷받침해두었다.

이점 한나라당 미디어법이 갖는 맥락을 살피는 데 있어 놓치면 곤란할듯 싶다. 전 사회를 토론과 논쟁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던 한미FTA 협상 과정, 그리고 체결될 때까지 찬성의 논리로 동원된 대표적 경구들이 ‘글로벌 개방과 경쟁’ ‘규제 장벽 해체’ ‘차세대 성장동력’이었던 거다. 그 경구가 미디어법 추진과정에 그대로 동원되었으니 익숙하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 중앙일보 7월 23일자 38면 사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추진과 반MB 진영의 투쟁 과정은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주었다. 우선 조중동의, 조중동을 위한, 조중동에 의한 언론악법이라는 사실이다. 김형오 의장도 시인한 것이니 두말할 필요가 없겠다. 재벌에게 미디어를 넘겨주는 언론악법이라는 사실도 확인됐다. 조중동 사설도 일제히 인정하고 있다. 민주주의 유린, 의회 폭거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대리투표, 재투표 현장이 실시간으로 중계됐으니 논란이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모양이다.

이런 점이 한나라당 미디어법에 대해 미디어 당사자들이 언론악법이라 규정한 요소들이다. 그리고 지켜야할 것으로 암묵적 동의가 이루어진 것이 미디어공공성 가치에 대한 승인이었다. 이 미디어공공성의 가치는 공영방송 유지 강화, 방송의 독립성, 여론의 다양성, 수구족벌언론 타파와 같은 실천으로 구체화되었다. 때문에 개방과 경쟁으로 미래의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는 논리와는 충돌이 불가피했다. 언론악법 저지 실천은 그런 수준에서 위치지어졌다. 역사적 정당성, 이성과 상식의 이해는 온전히 여기에 부합했다. 그런데 이런 사실 확인만으로는 뭔가가 부족하다.

냉정이 필요하다. 미디어법이 관철되는 정치구도에 스트레스 받고 화풀이만 할 일이 아니다. 아닌 말로 이렇게 될 줄 누가 몰랐나. 그러니 복기를 하자면 지금으로서는 ‘글로벌 개방과 경쟁’ ‘규제 장벽 해체’ ‘차세대 성장동력’이 제기되어온 역사적 맥락을 추적해보는 게 필요하겠다. 그리고 이 경구들이 지배적 이데올로기로 작동되는 현실을 차분히 짚어보는 일이다. 한나라당 미디어법이 확인해준 사실들 말고, 그 바닥에 뭔가가 깔려있는데, 그게 오늘날 이성과 상식을 호소하는 시민사회의 발목을 계속 잡고 있는 건 아닌지 그런 걸 계속 자문해봐야 한다.

가령 이런 거다.

“청와대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의 총론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초 노무현 대통령이 협상 의지를 밝힌 지 1년여 만이다. 한미FTA는 그동안 무수한 음모론과 정략적 공세 속에서 우여곡절을 겪었다. 양국이 각론에서 몇 가지 조율할 것이 남았지만, 여기까지 온 데는 누구보다 노 대통령의 공이 컸다. 그는 고비마다 ‘통상은 국가 발전의 핵심 요소며 FTA는 하는 게 맞다’고 강조하며 힘을 실었다. 지지층으로부터의 비난도 감수했다. 노 대통령이 이런 결단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않았으면 애초에 어려운 일이었다. 다음 정권에서도 하라는 보장이 없다. 정치인이기에 앞서 대통령으로서 정파를 떠나 승부수를 띄운 것으로 평가하고 싶다. 그동안 양극화가 심화하고, 한미동맹에 균열이 가는 등 실정이 적지 않았으나 그는 한미FTA를 이끌어낸 대통령으로 후세에 기억될 것이다.” (2007년 3월 31일자 중앙일보 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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