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 원내대표를 비롯한 새누리당 원내지도부가 사퇴했다. 이로써 새누리당 내 친박 대 비박의 ‘진검승부’는 앞당겨질 전망이다. 새누리당의 내외를 둘러싼 안개가 더 짙어지는 셈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는 12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데 대해 집권여당 원내대표로서 책임지는 게 온당하다고 생각한다”면서 “대통령 직무가 중지된 사건에서 집권 여당은 대통령과 똑같은 무게의 책임을 질 수밖에 없다”며 자진 사퇴 의사를 밝혔다. 이 자리에 동석한 김광림 정책위의장과 김도읍 원내 수석부대표도 함께 사의를 표명했다.

친박이냐 비박이냐, 갈림길에 서자 ‘탈출’?

정진석 원내대표가 사퇴한 것은 본인이 여러 차례 사퇴를 공언한 것에 더해 21일로 예정된 이정현 대표 사퇴 이후 비대위 구성 과정에서 친박과 비박 중 어느 한쪽의 손을 들어줘야 한다는 것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이정현 대표가 사퇴할 경우 정진석 원내대표가 권한대행을 맡아야 하는데, 친박계 최고위원들이 남아있는 상황에서 불가피하게 ‘악역’을 맡아야 할 가능성이 생긴 것이다.

새누리당 정진석 원내대표가 12일 오후 국회 정론관에서 원내지도부 사퇴 기자회견을 마친 뒤 발걸음을 돌리고 있다. (연합뉴스)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정현 대표 사퇴 이후 비대위 구성 국면에서 비박계 손을 들어주면 친박계는 본격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된다. 반대로 비박계의 도전을 일축하고 자신들이 선호하는 인물로 구성된 비대위를 전국위에서 인준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는 친박계의 손을 들어줄 경우 비박계는 사실상 탈당을 선택하는 수만 남게 된다. 이래도 문제 저래도 문제이니 ‘탈출’을 선택한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로써 후임 원내대표 선출 일정에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게 됐다. 당규에 따르면 원내대표 궐위 시 7일 이내에 선거를 실시해 원내대표 및 정책위의장을 선출해야 한다. 이날 친박계와 비박계가 정면충돌 양상의 구도를 형성한 것을 보면 이 선거가 친박 대 비박의 ‘진검승부’가 되리라는 것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친박 대 비박, 일주일 안에 진검승부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찬성 표결한 숫자가 234표였다는 점과 친박계가 구성한 혁신과 통합 연합에 참여한 현역의원이 41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는 점을 종합해보면 이후 국면을 예측해볼 수 있다. 탄핵소추안 찬성 234표의 의미는 새누리당 내 친박계 30명 정도가 찬성표를 던졌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새누리당 의석 수가 128석이고 당일 비상시국위원회 참가자가 33명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대략 65명 정도의 의원이 친박계의 반대투표 방침을 지지한 걸로 해석된다. 이 중 24명은 혁신과 통합 연합 모임에 참석하지 않았다. 이들과 친박계임에도 불구하고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에 찬성표결 한 30여명이 원내대표 선거에서 친박계가 미는 후보를 얼마나 지지하느냐에 따라 새누리당의 이후 운명이 달라질 수 있게 된 셈이다.

물론 이 원내대표 선거 한 번으로 새누리당의 운명이 결정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있다. 앞에서 설명한 것과 같은 상황 때문에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자신들에 편향된 후보를 낼 수 없는 조건이 강제되기 때문이다. 정진석 원내대표처럼 ‘낀박’으로 평가받는 인물이 다시 등장해 상황을 주도할 가능성도 있다. 이 인물이 비대위 구성에 대한 양측의 합의를 이끌어 낸다면 친박과 비박의 ‘한지붕 두 가족’ 동거 기간은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

12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여야 원내대표회담에서 여야 3당 원내대표와 원내수석부대표들이 손을 잡고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관영 국민의당 원내수석부대표, 박지원, 새누리당 정진석 ,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새누리당 김도읍,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원내수석부대표. (연합뉴스)

여야정협의체 운명은? 개헌론에 불 붙을까

더불어민주당 등 야당이 ‘친박’ 지도부와의 대화를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는 당 외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새누리당,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등 여야3당은 12일 여야정협의체를 운영하고 이미 합의했던 대로 국회에 개헌특위를 신설키로 합의했다. 여야정협의체는 형식상 정부와 국회가 국정을 놓고 ‘협치’를 진행하겠다는 것인데, 내용으로 따지면 야당이 국정에 참여하는 게 된다.

이날 오전 새누리당 이정현 대표는 여야정협의체 구성에 대해 “쓰레기통으로 들어갈 이야기”라면서 “신뢰도 가지 않고 기대도 하지 않는다”라고 발언한 바 있다. ‘손을 장에 지진다’는 약속에 이어 또 하나의 번지 수 잘못 찾은 이야기의 주인공이 돼버린 것인데, 이는 사실상 여야정협의체 구성에 합의한 정진석 원내대표가 이정현 대표와 제대로 소통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황교안 대행 체제가 여야정협의체를 어떤 방식으로 인정하고 운영할지는 지켜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어떤 면에서 이 시도는 분권형대통령제 등의 권력구조 개편이 됐을 경우를 상상해볼 수 있도록 한다. 내각제든 분권형대통령제든 결국은 국회가 국정을 책임진다는 게 핵심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앞으로 야권이 대응해야 할 주요한 정치 일정 중 하나에 개헌이 포함될 것이라는 추측을 해볼 수 있다.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논의를 하지 않을 방법도 없다.

이런 형태의 개헌에 적극적인 것은 비박계 중에서도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흐름이다. 일각에서는 김무성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비박계가 결국 밀려 나오는 경우 개헌을 통한 보수연립정권 구성이라는 방식으로 집권을 시도하지 않겠느냐는 예측도 내놓고 있다. 실제 지난 주말 비박계 주도의 비상시국위원회 의견수렴 과정에서 김무성 전 대표는 ‘탈당’을 언급한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어떤 원내대표가 탄생하느냐에 따라 여야정협의체의 운명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여야정협의체의 성공 또는 실패에 따라 이후에 따라 붙을 ‘개헌론’의 세기도 달라질 수 있다. 정진석 원내대표의 사퇴가 나비의 날갯짓 한 번에 비가 내리는 것과 같은 양상이 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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