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통과되어버린 이 시점에 ‘작은 민주주의’같은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왠지 부적절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나 또한 한나라당에 의해 저질러져버린 미디어법 개정에 대해 할 말이 많지만, 이 지면의 존재 이유는 그것을 성토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게 해주는 두 개의 사례를 소개하는 것으로 만족하고자 한다.

1리터짜리 생수 한 병을 만들기 위해서는 3리터의 물이 소요된다. 1리터는 병 속으로 들어가고, 나머지 2리터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사라져버린다. 게다가 그 물을 슈퍼마켓까지 운반하고 냉장고에서 차갑게 보관하기 위해서는 250밀리미터의 석유가 필요하다. 플라스틱 병에 담긴 생수만큼 식수를 비효율적으로 생산•운반•보관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무방할 지경이다.

국내에서는 한나라당에 의해 수돗물을 병에 담아서 파는 것을 허용하는 방침이 추진되고 있지만, 해외의 경우에는 정반대의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환경 문제에 관심을 보이는 시민들이 생수를 조직적으로 거부하고 있는 것이다. 호주의 New South Wales 지방의 한 마을인 분다눈(Bundanoon)의 350여명 주민들은 마을 회관에서의 투표를 통해 생수를 금지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 BBC는 ABC의 보도를 인용하여, 오직 한 사람만이 금지안에 대해 반대표를 던졌는데, 그 사람은 생수 업체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었다고 보도했다.

대체 왜 주민투표까지 벌어지게 된 것일까? 시드니에 위치한 한 생수 업체가 분다눈 인근의 수원지에서 물을 가져다가 생수로 만들고, 그것을 다시 분다눈에 판매할 것이라는 계획이 주민들의 귀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우리 동네 물을 퍼다가 우리 동네 주민들에게 팔아먹겠다는 것이다. 화가 나지 않는다면 그게 이상할 일이다.

그런데 우리의 상식으로 보자면, 그런 경우 생수 자체를 금지할 필요는 없다. 수자원 사용에 대한 보상금을 타낸다거나, 이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서 받아가는 식으로도 문제는 해결될 수 있었다. 하지만 분다눈의 주민들은 생수 자체에 대한 전체적인 금지 조례를 통과시켰다. 그 브랜드의 생수 뿐 아니라 모든 생수의 유입과 판매를 금지한 것이다. 이러한 결정은 ‘생수가 환경 파괴에 일조한다’는 인식이 없다면 행해질 수 없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지구적인 이슈에 맞서는 한 지역의 작은 노력을 발견할 수 있다.

우르과이의 수도 몬테비데오에서 40킬로미터 떨어진 작은 마을 수아레즈(Suarez)에서는 마을 광장의 가로등을 LED로 전부 교체했다. 이것 역시 지역 의회에서 결의하여 추진된 일이다. LED 가로등은 일반 가로등에 비해 70에서 최고 90퍼센트까지 에너지 효율이 높다. 게다가 그 가로등 위에는 태양 전지 패널이 부착되어 있다. 낮동안 내리쬔 햇빛으로 밤의 거리를 밝히는 것이다. 앞으로 닥쳐올 에너지 위기에 맞서기 위해 여러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가 벌어지고 있는 가운데, 그다지 부유하지 않은 개발도상국의 지역 의회가 앞장서서 고효율 에너지 소비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더욱 눈여겨봐야 할 것은 그들이 친환경정책과 더불어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는 것이다. BBC는 한 지역 의회 의원과의 인터뷰를 통해, 수아레즈가 LED 가로등 완제품을 수입하는 대신 부품만을 수입하고 그 조립은 인근 업체에 맡김으로써 지역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했다는 내용을 보도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추진하는 일에 대해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지역 경제에 도움을 주고, 동시에 전 지구적 문제에 대응하며, 그 과정에서 ‘작은 민주주의’를 하나씩 실천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7월 22일 한나라당에 의해 ‘민주적’으로 통과된 미디어법과 금산분리법 등을 살펴보고 있노라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세계는 지금 전 지구적 이슈와 맞서 싸우고 있다. 우리는 특정 재벌 및 언론사가 방송을 소유하지 못하도록 하는 일에 모든 정치적 자원을 소비하고 있는 형국이다. 국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작은 민주주의는 온데간데없고, 대신 국회 점거와 질서유지권 발동 따위만 난무한다. 더운 여름, 어지러운 정국이다. 우리가 이루어내야 할 민주주의는 국회만의 민주주의가 아닐 것이다. 지구적 인식을 바탕으로 지역적 노력을 기울이는, 우리들의 작은 민주주의를 희망한다.

<드라마틱>에서 수습기자 및 취재기자로 일했고, <Foreign Policy> 한국어판의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21세기를 규정짓게 될 키워드에 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며, 옮긴 책으로는 <아웃라이어>가 있다. 고려대 법학과 졸업, 현재 서강대 철학과 재학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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