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법이 강압적으로 통과됐다. 경제지들은 ‘미디어빅뱅’이 시작됐다고 말하고 있다. 언론시장이 무한경쟁체제로 재편된다는 얘기다. 한나라당 정병국 의원은 미디어산업 발전이 목표라고 했다. 그것을 위해 규제를 풀고 대자본이 자유롭게 경쟁할 수 있도록 한다는 논리다.

이미 유통부문에서 그런 식의 빅뱅이 벌어졌었다. 어떤?

대형마트 환란이다. 유통시장을 자유화한 결과 무한경쟁이 벌어져 국내 자본과 외국 자본이 한국 유통시장을 놓고 격투를 벌였다. 그 결과 유통부문에 대충격이 발생해 한국 서민 자영업자들이 몰락하고, 지역경제도 몰락한 대신 유통재벌 대형마트가 생기는 빅뱅이 터진 것이다. 이것을 두고 한미FTA 추진 세력은 ‘한국 유통업이 선진화됐다’, ‘한국 유통업의 경쟁력이 강화됐다’라고 표현했다. 이런 사고방식이 미디어법 사태에서 그대로 반복된다.

그것이 미디어산업 발전이다. 국내외 대자본이 피를 뿌리며 혈투를 벌여 승자가 한국 방송업을 장악하는 미디어공룡이 되는 것. 물론 현재 시장 조건상 승자는 대형마트에서처럼 국내자본이 될 것이고 외국자본은 거기에 참여하거나, 향후 개방을 통해 재차 경쟁을 시도하게 될 것이다.

이번 미디어법에서 국내의 신문, 대기업에겐 지상파 소유지분을 10%까지, 종합편성채널의 지분은 30%까지, 보도채널도 30%까지 풀어줬다. 그리고 외국자본에겐 종합편성채널 20%, 보도채널 10%까지 풀어줬다.

국내자본과 외국자본이 합종연횡, 경쟁하며 한국 방송시장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조건이 형성된 것이다. 경제지들은 이를 통해 한국에서도 미국의 CNN이나 폭스뉴스같은 거대 미디어가 탄생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한국 방송사들이 이렇게 선진화됐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민이 바보가 된다!

- 미국같은 선진 미디어가 생기면 국민이 바보 된다 -

▲ 로버트 그린왈드가 감독한 다큐멘터리 <안티폭스>(원제 Outfoxed) 포스터. 루퍼트 머독의 폭스뉴스가 권력에 대한 감시기능을 포기하고 공화당의 이익에 철저히 봉사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실태를 다뤘다.
이익을 추구하는 미국의 미디어산업은 타 문명권에 대한 증오, 공포, 인종차별, 미국인들의 국수주의 등 대중이 선동되기 좋은 이슈를 팔아먹으며 돈을 벌어왔다. 가장 차분하고 냉정해야 할 순간에 상업적 미디어는 오히려 대중을 충동질해 재앙을 초래했던 것이다.

미국의 민영언론이 맹목적으로 이라크 침략을 옹호하며 국민을 열광 속에 밀어 넣은 것이 그 대표적 사례다. 미디어법 찬성자들이 세계적인 미디어라 칭하는 폭스뉴스의 시청자는 일반인에 비해 이라크가 9·11 사태의 배후라고 믿는 비율이 네 배 더 높았다. 판단력을 완전히 마비시킨 것이다.

007 시리즈는 지구인의 적이라고 생각되는 세력을 상정해가며 꾸준히 작품을 발표해왔다. 물론 그 기준이 전적으로 미국적이라서 문제가 되지만, 어쨌든 그런 007마저도 시리즈 18탄엔 007의 적으로 미디어제왕을 상정했었다. 그 미디어제왕의 모델이 바로 폭스뉴스의 루퍼트 머독이었다. 이런 게 우리가 따라야 할 모델이라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하지 않으면 국민은 우민이 될 수밖에 없다. 남북전쟁 당시 남부의 일반적인 백인들은 대단히 빈곤했었다. 그런데 그들은 그 스트레스를 흑인에게 풀었다. 남북전쟁 후에도 못 사는 백인들이 더 흑인과 이민족에게 적대적이었다. 자신들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를 엉뚱하게 이민족에게 찾고, 인종차별 이외엔 고통을 해소할 방법을 못 찾았기 때문이다.

만약 정상적인 언론이 그들에게 미국의 기형적인 양극화 체제가 근본적인 문제라는 사실을 알려줬다면? 그랬다면 미국은 지금처럼 되지 않았을 것이다. 언론이 최근에 가난한 백인들의 불만을 유도한 곳은 이라크였다. 미국인들은 넙죽넙죽 그 선동에 따랐다. 이것이 선진 미디어가 있는 나라의 모습이다.

- 국내외 자본의 항구적인 이익 -

방통위는 연초 업무보고에서 한미FTA 등을 통해 외국 자본의 국내 진출이 예상되므로 이에 경쟁할 수 있는 국내 방송사업자를 육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었다. 바로 이런 논리가 IMF 사태의 원인 중 하나였다.

개방 세계화 기조로 외국자본의 자유영업을 보장해주는 판에 한국자본을 규제해서 되겠느냐는 논리로 삼성승용차가 허용되고 기아자동차가 몰락했던 것이다. 한미FTA 이후에 언제나 등장하게 될 역차별 논리다. 똑같은 논리로 한국의 사학재단들은 한미FTA 교육개방에 대비해 한국 사학에게 자율성을 주라고, 즉 개정 사학법을 폐기하라고 주장했었다.

향후 개방으로 한국 방송시장에 외국자본을 끌어들인 후에는, 외국자본의 자율성만큼 국내자본에게 자율성을 주게 되고, 다시 국내자본에게 자율성을 준만큼 외국자본에게 자율성을 주는 악순환이 반복될 것이다. 한미FTA는 외국자본에 대한 규제를 어렵게 할 것이고, 그에 따라 국내자본에 대한 규제도 어려워질 것이다. 이번에 미디어법으로 들어올 외국자본은 국가의 규제를 막는 방패막이 역할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자본은 자기 마음대로 자신의 속성에 따라 영업을 하게 되는데, 자본의 속성이란 결국 이윤추구다. 물론 국내에선 국내자본이 미디어시장의 주류가 될 텐데, 거기에 외국자본이 지분으로만 참여한 경우에도 외국자본은 더욱 강력하게 언론공공성이 아닌 수익성 극대화를 주도할 것이다. 국내자본의 행태도 못지않을 테고.

전쟁을 부추겨 이익이 나면 전쟁을 부추길 것이고, 인종적 혐오감이나 약자에 대한 혐오감을 부추겨 이익이 나면 그렇게 할 것이며, 벗은 연예인만을 내보내는 것이 돈이 되면 그렇게 할 것이고, 당장의 수익을 넘어 그들 자신의 근본적인 이익을 위해서라도 부자들만을 위한 정치적 입장을 견지할 것이다. 결국 미디어산업 선진화의 대가로 공화국은 내파될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를 소유하게 된 한국의 지배그룹에겐 막대한 이익이 돌아간다. 미디어 소유권을 가질 수 있는 세력은 재벌과 대형 신문사 등 극소수 그룹이고 그들은 모두 연혼관계로 이어져있다. 그 집단과 지분 참여한 외국자본이 함께 직접적인 이익을 얻으며, 한국인 우민화를 통해 포괄적인 정치적 이익을 얻는다. 또 그들이 보유한 인재풀에 미디어 일자리를 줄 수 있다. 황당한 우익 논객이 멀쩡한 방송인으로 활동하는 모습을 보게 될 텐데 미국에선 이미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한국 사회질서의 항구적 재편을 위한 기반조성 작업이다. 교육자유화와 미디어자유화를 통해 국민우민화는 돌이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될 것이다. 우리 국민의 ‘정신’이 위협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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