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전날 국회에서 대통령 탄핵안이 234 대 56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가결된 이후에도 시민들은 광장으로 향했다. 몹시도 추운 날이었다. 기온이 떨어지면 작은 바람도 뼈에 스민다. 그렇지만 바람도, 추위도 촛불을 끄게 하지는 못했다. 몇 명이 모였다는 집계는 또 의미 없는 것이다. 여전히 많은 촛불, 여전히 뜨거운 촛불이면 된 것이다.

그래도 추운 것은 추운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날 7차 촛불집회에는 평소보다 많은 문화공연이 준비되었다. 낮에는 DJ DOC가 무대에 올라 지난번에 무산됐던 ‘수취인불명’을 비롯해서 여러 곡을 시민들에게 들려주었다. 또 저녁에는 권진원, 이은미 등 듬직한 가수들도 무대를 채워주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 층의 따뜻한 호응을 받은 낯선(?) 가수가 눈에 띄었다. 그들은 바로 볼빨간 사춘기. 여성 2인조인 이들은 음원강자로 떠올랐지만 광장에서 그들은 한눈에 알아볼 그런 유명 가수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다른 누구보다 눈길을 끌었고, 보는 이를 흐뭇하게 만든 이유가 있다.

7차 촛불집회 '인권콘서트' 무대에 오른 볼빨간 사춘기 (OhmyTV 영상 갈무리)

볼빨간 사춘기는 무대에 올라 “두렵고 무서웠다”는 말을 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국민의 일원이라는 사실로 그 두려움을 극복했다는 의미의 말을 남겼다. 바로 그 점이었다. 그동안 일곱 차례 열린 광화문 광장에 적지 않은 뮤지션들이 시민들의 촛불에 동참했다. 자신들이 가진 재능으로 광장의 시민들을 격려했다.

그런데 소위 유명가수들의 면면을 보면 전인권, 양희은, 안치환, 이은미 등 중견가수 이상의 연륜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사실 볼빨간 사춘기의 정체성을 어떻게 봐야 할지는 조금 고민이 된다. 인디라고 하기에는 너무 인기가 많고, 그렇다고 아이돌이라고 하기에는 많이 진지하다.

볼빨간 사춘기의 멤버는 95년생 안지영과 96년생 우지윤이다. 우리 나이로 스물두 살 남짓이다. 딱 아이돌 멤버들 나이에 불과하다.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이들을 인디 아이돌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인디 아이돌이라는 용어는 아직 정착된 공용어는 아니지만, 대형기획사의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린 가요계에 변화를 가져올 하나의 대안으로 대두될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다.

7차 촛불집회 '인권콘서트' 무대에 오른 볼빨간 사춘기 (OhmyTV 영상 갈무리)

어쨌든 그런 긍정적 의미로의 인디 아이돌 볼빨간 사춘기가 어쨌든 아이돌로서 촛불집회 현장에 나선 것에는 그들 스스로도 말했듯이 두려움을 이겨낼 용기가 필요했고, 시민과 하나라는 의식이 동반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상업적 아이돌과는 분명히 비교가 되는 부분이다.

광장에는 분명 어떤 아이돌의 팬들은 존재했지만 아이돌은 없었다. 많은 유명 연예인들은 정치적 소신을 밝히길 두려워할 수밖에 없는 분위기라고 한다. 그것은 그들의 인기가 방송출연과 광고 의존성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볼빨간 사춘기라고 그런 부와 인기를 일부러 마다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아직 많은 것을 갖지는 못했지만 미리 그것을 포기할 이유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인기 급상승 중인 이들은 촛불에 동참했다.

그리고 이은미처럼 “박근혜는 당장 내려와라” 정도의 구호는 외치지 못하고 대신 “대한민국 파이팅”을 시민들과 함께 외쳤다. 말은 달라도 그 말이 그 말인 것은 다 알 수 있다. 이은미에 비해 소극적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들이 광장에 선 것만으로도 소극적이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 수많은 아이돌, 이름 앞에 국민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인기 연예인들을 부끄럽게 만들 용기를 보였다.

그런 볼빨간 사춘기를 보며 나도 모르게 볼이 발그레 해진 것은 추위 때문이었을까?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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