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원천무효 논란을 빚고 있는 한나라당 방송법 최종안을 드디어 볼 수 있었다. 나경원 의원의 입을 통해 말로만 전해들을 수밖에 없었던 방송법 개정안 최종안을 날치기 통과 이후에 국회 사이트에서 찾아 읽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 언론인들도 사정은 같았던 모양이다. 이것 자체가 저질 코미디다.

언론계에서 이미 '언론 9적'의 한 명으로 통하는 나 의원이 그동안 의도적으로 밝히지 않았던 내용이 있었는지 확인해 봤다. 아니나 다를까 있었다. 그것도 매우 중요한 내용이 있었다.

▲ 국회 의안 정보 화면 캡처.

한나라당은 박근혜 전 대표가 제안한 매체 합산 점유율 상한선 제도를 상당 부분 도입했다고 떠벌렸다. 미디어다양성위원회를 구성해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를 개발하겠다는 게 바로 그것이었다. 언제까지 개발하겠다는 말은 없었다. 기상천외하게도 신문 구독률로 신문시장 여론을 측정하고, 이렇게 측정된 결과를 신문이 소유하는 방송뉴스채널의 시청점유율에 반영해 여론다양성을 꾀하겠다는 설명도 한나라당 쪽에서 흘러나왔다.

거대신문과 거대기업, 외국자본이 연합해 소유할 방송뉴스채널을 방송통신위원회가 곧바로 승인하겠다고 일찌감치 밝힌 상태에서, 새로운 방송뉴스채널은 늦어도 내년 상반기 안에는 등장할 것이라고 보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그런 만큼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는 서둘러 개발될 필요가 있다.

허걱,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한나라당 방송법 최종안에는 2012년 12월 말까지 개발을 완료한다고 돼 있다. 2012년 12월 말까지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를 개발하면, 도대체 신문 구독률을 시청점유율에 어떻게 반영하겠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그래서 찾아봤다. 신문 구독률을 어떻게 시청점유율에 반영하려고 하는 것인지.

최종안 문구는 이랬다. "방송사업을 겸영하거나 주식 또는 지분을 소유하는 그 일간신문의 구독률을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일정한 비율의 시청점유율로 환산하여 해당 방송사업자의 시청점유율에 합산한다." 환산비율을 대통령령(방송법 시행령)으로 위임해 놓은 것이다.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각 매체의 점유율을 일정한 가중치를 두어 환산하는 작업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이 없이는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의 개발은 불가능하다. 가중치를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작업은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의 필요충분조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지수는 2012년 12월 말까지 개발되도록 돼 있다. 그런데 신문 구독률을 일정한 비율로 환산해 시청점유율에 반영하는 것은 늦어도 2011년부터 이뤄져야 한다.

결론은 둘 중의 하나다. 2012년 12월 말까지 신문 구독률을 일정비율로 환산해 시청점유율에 반영하는 작업을 하지 않는 것이다. 아니면 시청점유율 계산 과정에서 신문의 소구력을 방송의 3분의 2 수준으로 판단해 신문의 발행부수 점유율에 3분의 2를 곱해 시청점유율에 합산하고 있는 독일 모델을 그대로 한국에 직수입하는 것이다. 이걸 방송법 시행령에 졸속으로 그대로 규정하는 것이다.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의 말처럼, "신문의 가구구독률을 시청점유율과 합산하는 것이 가능하다면 이것은 노벨수학상을 받을 일"이다. 공정거래법을 바꿔 이동통신사업자의 시장지배적 사업자 기준을 매출액이나 시장점유율이 아니라 '가구이동통신이용률'을 따로 조사해 적용하라는 이 의원의 비아냥은, 한나라당의 주장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작업임을 말해준다. 그걸 아는 것일까? 한나라당은 매체 합산 영향력 지수 개발을 2012년 12월 말까지 한참 늦추어 놓았다. 그러면서 신문 구독률을 일정 비율로 환산해 시청점유율에 반영하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모두가 지적하듯이 이건 '사기'다. 박근혜 전 대표도 한나라당 대다수 의원들도 사기를 당한 것이다. 잘못 끼운 첫 단추를 바로잡지 않고 억지로 옷을 입는 데서 필연적으로 빚어질 수밖에 없는 사기 말이다. 매체실태 조사를 통해 발행부수와 유가부수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 이것이 첫 단추다. 이걸 부인하고 싶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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