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에 빛나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I, Daniel Blake)>는 지금 여기 우리들에게 꼭 필요한 영화이다. 심장병을 앓고 있음에도 정부로부터 질병 수당을 받지 못하는 주인공 다니엘 블레이크(데이브 존스 분)와 아이 둘을 키우는 싱글맘이지만 복지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케이티(헤일리 스콰이어 분)의 이야기는 남일 같지 않다. 칸영화제가 황금종려상으로 선택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 이미지

영화 오프닝, 정부에 의해 파견된 미국업체 소속 ‘의료전문가’에게 심장병을 진단받아야 하는 다니엘은 정작 심장 질환과 거리가 먼 질문만 일삼는 의료전문가에게 분통을 터트린다. 그런데 영화는 다니엘과 의료전문가의 대화만 들려주며 당시 벽하고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었을 다니엘의 답답한 감정을 관객에게 그대로 전이시킨다. 또한 영화는 현실의 다니엘들을 좌절시키는 영국의 선별적 복지정책의 문제점을 일일이 열거하지 않는다. 대신 그 복지제도의 폐해를 고스란히 떠안게 되었지만 자기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다니엘을 통해, 오늘날 영국의 암울한 현실을 신랄하게 꼬집으면서도 따뜻한 희망을 전하고자 한다.

영화에 매 장면 수많은 관객들의 탄식과 분노, 안타까움을 자아내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이런 류의 영화가 흔히 범할 수 있는 ‘선동’과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무기력한 신파를 보여주지 않는다. 운영자 편의 위주의, 복잡한 관료적 절차로 중무장한 영국 보수당의 부조리한 복지제도가 다니엘을 번번이 좌절시키지만 그럼에도 그는 주저앉지 않는다. 정부 보조금을 받기 위해 자신의 가난과 무기력함을 증명해야 하는 시스템에서 다니엘은 인간으로서 응당 가져야할 존엄성을 외친다. 복지는 정부가 가난한 자들을 위해 베푸는 선심이 아니라, 국민이라면 누구나 누려야할 권리임을 다니엘의 선언을 통해 재확인하게 된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 이미지

해피엔딩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다소 의외의 결말을 보여주는 <나, 다니엘 블레이크>는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느꼈을 씁쓸함과 좌절감을 배가시킨다. 달콤한 판타지가 아닌 냉정한 현실을 택한 영화는 빼앗긴 권리를 찾기 위해 용감무쌍한 누군가에게 기대는 것이 아니라, 자각하고 행동할 것을 촉구한다.

만약 <나, 다니엘 블레이크>가 아무 일 없이 평온한 시절에 상영되었다면 우경화되어가고 있는 사회를 우려하는 슬픈 우화로만 비추어졌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는 희대의 사건에 분노한 수백만의 국민들이 매주 거리로 나와 촛불을 밝히고 있는 지금의 대한민국은, 어쩌면 평생을 사회주의 영화 운동에 바쳤던 켄 로치 감독이 부러워할 만한 풍경이 아닐까 싶다.

다니엘의 인간 선언엔 수십 명의 시민들이 열띤 환호를 보냈지만, 그 이상의 집단행동을 이끌어 내지는 못했다. 이는 지난 박근혜 정부 3년 반 동안 대한민국에서 흔히 보아왔던 장면이기도 하다. 거리로 나온 사람들의 사연이 안타깝긴 하지만, 먹고 살기 바쁘다는 이유로 그들을 외면하는 일도 더러 있었다. 그러다가 평생을 성실하게 살아온 수많은 국민들에게 자괴감을 들게 하는 엄청난 사건이 터졌고, 수백만의 국민들은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세우기 위해 거리로 나와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영화 <나, 다니엘 블레이크> 스틸 이미지

이미 시대의 거장이지만, <나, 다니엘 블레이크> 이후 현 사회가 가장 필요로 하는 영화감독으로 자신의 위치를 공고히 한 켄 로치 감독은 극중 다니엘과 케이티의 입을 빌러 이렇게 말한다. 결국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은 우리 스스로에게 달려있는 문제이며, 현실에 대한 자각과 부조리한 사회를 바꾸기 행동 그리고 연대가 우리를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 것이라고. 평생을 소시민의 한 사람으로 살다간 다니엘은 그의 배려를 통해 다시금 살아갈 용기를 얻게 된 이웃들에게 영웅으로 칭송받는다.

"평범한 이웃사촌, 당신은 내게 영웅입니다"

나는 이 말을 무너진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 거리로 나온 수백만 촛불 시민들에게 돌려주고 싶다.

“평범한 이웃사촌, 그대들이 있기에 대한민국의 미래는 밝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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