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촛불집회, 전국 232만, 서울 광화문 광장에만 170만. 전국적으로 번진 이 촛불은 6주 전 2만 명으로 시작됐다. 이후 2차 촛불 집회에는 20만 그리고 3차부터 촛불의 규모는 폭발했다. 3차부터 넘긴 100만이라는 숫자는 더 이상 규모를 논하는 것이 의미 없음을 말하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4차, 5차, 6차까지 점점 촛불은 더 많이, 더 뜨겁게 타올랐다. 특히 서울에 첫눈이 내렸던 5차 촛불집회는 궂은 날씨에 혹시라도 다른 이들이 나가지 않을까 두려워 나라도 나가야겠다는 신기한 이심전심이 만든 기적이었다. 그리고 대통령의 3차 담화로 당황하고, 우왕좌왕하던 정치권과는 달리 촛불은 232만이라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모여들었고, 정치권의 모든 셈법을 정지시켰다.

그로부터 일주일, 국회는 234대 56이라는 압도적 표차로 대통령의 탄핵을 가결했다. 국민의 승리였다. 그날의 <JTBC 뉴스룸> 손석희의 앵커브리핑.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또다시…"뒷일을 부탁합니다"

이날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은 ‘어쩌면 태블릿PC 따위는 필요 없었는지도 모릅니다’라는 역설로 시작했다. 10월 24일 처음 공개된 최순실의 태블릿 PC가 가진 의미를 몰라서, 새삼스럽게 겸손하기 위함이 아니었다. “2014년 4월 16일 시민들의 마음이 그 배와 함께 가라앉았던 날”의 의미, 촛불혁명의 시작점을 말하고자 함이었다.

그때부터 보였던 불온한 흔적들. 304명의 생명이 물속에 가라앉는 동안 대통령의 모습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고, 그 원죄로부터 시작된 국가의 일탈은 걷잡을 수 없었다. 국민, 그것도 아직 그렇게 죽기에는 너무도 아깝고, 안타까운 아이들의 살려달라는 절규에도 단 한 명도 구조하지 못한 무능한 정부는 반성을 해도 모자랄 판에 훼방꾼이 되었다.

유족은 조롱당했고, 그 아픔과 슬픔을 위로하는 것에는 수상한 색깔을 입히려 했다. ‘고통 앞에 중립 없다’라고 말한 교황조차 경계의 대상으로 분류한 그들이 진상규명 요구를 정치투쟁으로 매도한 것은 어쩌면 당연했다. 그렇게 야만의 시간이 흐르는 동안 세월호는 잊혀져 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점점 커지는 촛불 속에서 우리는 또 다른 간절함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슬픔이었고, 아픔이었고, 고통이었고, 분노였다. 그 고통과 분노의 더께는 깊은 신음처럼 시민들의 가슴 속에 자라고 있었던 것이었다. 어둠은 빛을 이기지 못하는 법이다. 천년의 어둠도 촛불 하나의 여린 빛에 깨지고 마는 것이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장에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뒤 눈물을 흘리고 있다. Ⓒ연합뉴스

2014년 4월 16일로부터 969일 후, 대통령은 국회로부터 국민으로부터 탄핵을 당했다. 그 현장을 지켜보던 유족들은 박수를 치면서도 눈물을 흘렸다. 969일 만에 처음으로 기쁨이 조금은 섞인 눈물이었을 것이다. 234 대 56. 대통령의 탄핵을 바라던 국민의 바람과 정확히 일치한 숫자였다.

국회의 탄핵으로 직무정지를 목전에 둔 대통령은 마지막 인사를 단행했다. 보류되었던 사표를 수리하면서 법적으로는 조력을 받을 수 없는 청와대 민정수석에 조대환 변호사를 임명했다. 세월호 특조위 부위원장이라는 이력이 있지만 이상하게 세월호 훼방꾼이라는 별명을 가진 사람이었다. 마지막까지 세월호 유족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버린 대통령. 그조차 순수한 마음으로 한 것일까?

JTBC 뉴스룸 [앵커브리핑] 또다시…"뒷일을 부탁합니다"

손석희의 앵커브리핑이 애써 태블릿 PC 따위는 없었어도 좋았을 것이라는 역설을 통해 탄핵이 끝이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해야 했던 이유를 거기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고 김관홍 잠수사의 유언을 인용했다.

“뒷일을 부탁합니다”

다른 나라였다면 영웅으로 추앙받았을 의인이 거꾸로 죄인으로 만들었던 야만의 시간. 순실의 시대는 아직 끝난 것이 아니라는 말을 하고 있었다. 봄이 오기까지 겨울을 이겨내며 해야 할 일들이 많고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였다. 조금은 흐트러졌을지 모를 마음에 죽비로 툭 치는 느낌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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