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스=전혁수 기자] 조선일보가 개헌 군불때기를 시작했다. 9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 처리 이후 정국에 대해 여론형성을 시작한 것으로 풀이된다.

9일 조선일보는 태평로 칼럼에 <마테오 렌치의 개헌 도전과 좌절>이라는 최유식 국제부장의 글을 실었다. 이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이탈리아가 개헌에 실패해 정치 시스템 문제를 극복하지 못한 것을 예로 들면서,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 개헌에 대한 논의가 반드시 필요하다는 내용을 강조하고 있다.

▲9일자 조선일보 칼럼.

해당 칼럼에서 조선일보는 "2012년 제정된 혼외 자녀의 법적 권리에 관한 한 법안은 발의부터 의회 통과까지 1300일이 걸렸다. 의회가 쓰는 한 해 쓰는 세금이 90억 유로(약 11조 원)에 달하고, 1948년 공화국 출범 이후 68년 동안 63번 정부가 바뀌었다"면서 이탈리아 정치의 고비용·저효율적인 측면을 소개했다. 또한 이탈리아의 완전양원제(상·하원이 동등한 권리를 갖는 제도) 때문에 법안처리가 느리며, 이러한 낙후한 정치구조가 이탈리아를 그리스·스페인 수준의 '병자'로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조선일보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의 개헌안에 대해 "상원을 유명무실하게 만들어 사실상 하원 중심의 단원제로 가자는 방안을 담고 있다. 정치의 틀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려는 시도였다"고 평가했지만, "그러나 결과는 20% 가까운 압도적 표차의 부결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한 국가의 정치 시스템과 권력 구조를 바꾸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면서 "명분과 시대정신이 있어야 하고, 변화를 이끌어 낼 정치력과 시운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조선일보는 마테오 렌치 전 총리의 개헌안 부결에 대해 "이탈리아의 만성병을 치유할 만한 처방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정치 기득권층과 실업난에 시달리는 청년층의 반발을 넘지 못했다"면서 "21년 무솔리니 독재의 트라우마를 가진 국민은 권력 집중을 우려했다"고 진단했다. 조선일보는 "그는 패배가 확인되자 미련 없이 총리직을 던졌지만, 이탈리아에는 다시 대혼돈의 그림자가 드리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그리고 칼럼 말미에 조선일보가 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등장한다. 조선일보는 "최순실 게이트는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역대 정권 때마다 있었던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그대로 되풀이했다"면서 "이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 사회가 한 발짝 나아갔다고 하려면 새로운 정치 시스템을 만드는 개헌이 절실하다. 당장 쉽지 않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집권 초부터 개헌 문제를 공론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면, 국회는 개헌특위를 설치하고 개헌에 대한 논의를 이어나갈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시기를 두고 이견이 있으며 구체적인 개헌의 틀에 대해 협의된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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