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의 날이 밝았다. 야3당이 제출한 탄핵안이 가결될 것인가 부결될 것인가에 온 국민의 이목이 쏠려 있다. 가결되면 박근혜는 그날로 대통령의 권능이 정지된다. 부결되면? 그건 차마 상상하고 싶지 않다. 광장의 정치를 국회에서 수렴하지 못 했을 때 생기는 격한 파열음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떨리기 때문이다.

촛불을 들고 '박근혜 즉각 퇴진'을 목 놓아 부르짖는 사람들에게 탄핵은 더 이상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다. 국회를 인간띠로 포위한 채 새날이 밝기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탄핵은 이미 성사 여부를 떠나 마땅히 당연히 무조건 절대로 이루어져야만 하는 당위의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부결 이후를 상상하기조차 싫은 까닭이 여기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어쩌다 이렇게 됐을까. 따지고 보면, 작금의 사태는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 전부터 예견돼 있었다.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될 사람이 대통령이 된 것부터가 불행의 시작이었단 얘기다.

의원 시절의 박근혜를 지근거리에서 보살폈던 전여옥은 지적 능력의 부족, 설득 능력의 빈곤, 순발력 결여, 그리고 인간미 부재, 이 4가지를 들어 박근혜에게 대통령은 결코 어울리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개인적으로 전 씨를 좋아하지 않지만, 그러나 그의 지적은 수긍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동안 지겹도록 봐 왔던 모습들이 바로 그러했으니까.

최근 박사모가 주최한 맞불집회에서 "쓰레기언론, 야당, 친북 반미세력 등이 똘똘 뭉쳐서 제가 알몸으로 인턴 엉덩이를 만졌다고 생매장했던 것을 지금 박 대통령을 향해 하고 있는 것"이라며 "박 대통령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을 지킬 수 없다"고 소리 높여 외쳤던 '그랩' 윤창중의 변신은 더욱 특별하다.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그가 "공감 능력이 결여됐다"거나 "사람 남새를 맡을 수 없다"며 비판의 칼날을 날렸다는 사실을 아는가?

"큰 인물에겐 비전보다 더 중요한 것이 ‘사람의 냄새’다. 이명박과 박근혜로부터는 ‘사람의 냄새’를 맡을 수가 없다... 그저 돈과 권력을 위해서라면 한 치도 양보하지 않는 ‘장사꾼 정치’, ‘권력 만능 정치’가 체질화되어가고 있다."(문화, <이명박 박근혜의 ‘좁쌀정치>, 2007.05.09)

"근본적으로 MB와 박근혜는 다가설 수 없는 인간형, 눈물을 닦아주기는커녕 약이 오르게 만드는, 공감할 수 없는 ‘딴나라 인간’들로 보이기 때문..."(문화, <박근혜에게 다시 묻는다>, 2011.10.31)

같은 글에서 그는 당시 MB와 반목하던 박근혜를 설득하기 위해 커피숍에서 독대했던 2009년 어느 날의 풍경을 회고하여 가로되, 박근혜는 1시간 반 동안 시선을 아래로 내려 뽀족히 깍은 연필만 빙글빙글 돌리며 아무 반응이 없었다면서 "설득하려고도 않고 설득 당하지도 않으려는... 저 난공불락의 고집"이라고 한탄하기도 했다.

그 뒤 박근혜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인수위를 꾸리는 과정에서 드러난 그의 독선을 경계한 몇몇 신문의 사설을 읽노라면 소름마저 돋을 정도다. 너무나 사실적이고 너무나 정확해서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우려를 차례로 들어 보시라.

"인수위에서 당선인이 발언하면 인수위원들은 열심히 받아 적는다. 토론은 거의 없고 강의만 있는 것이다. 받아 적는 이 중에서 이견을 과감히 말하는 '노'맨은 몇이나 될까... 자신이 철석같이 믿는 문제에 대해 누가 다른 의견을 말할 때 그가 보이는 반응에 대해선 증언이 많다. 시선을 돌린다, 눈에서 '레이저 광선'이 나온다, 이후부터는 전화 목소리가 달라진다, 다시는 찾는 일이 없다…"(중앙 사설, 2013. 01.31)

"대통령 당선인이 스스로 선택한 고립인지 아니면 믿고 맡길 사람이 귀해서인지 경위는 알 수 없으나 당선인이 지금처럼 철저하게 가림막에 가려 있는 경우는 역대 정권 발족 시기에 좀체 없던 현상이다... 박 당선인이 국정마저도 무엇을 누구와 어떻게 상의하는지 모를 방식으로 진행하다간 큰 어려움이 닥치게 될 것이다."(조선 사설, 2012.12.26)

이들의 예견처럼, 자기와 다른 의견을 말하는 사람에게 눈에서 '레이저 광선'을 발사하고, 철저한 가림막 속에서 국정을 누구와 상의하는지 모를 방식으로 진행하다가 결국 이 모양 이 꼴이 되고 만 것 아닌가. 문고리 3인방에 십상시가 날뛰고, 그 뒤에서 최순실 일가가 나라를 좌지우지한 것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될 성 부른 사람은 떡잎부터 알아본다고 했다. 옛사람들의 지혜가 어린 속담을 무시하다가 대한민국은 이번에 큰 곤욕을 치렀다. 이젠 어그러진 모든 것을 바로 잡을 때다. 탄핵이 가결되면 곧 대선정국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람 냄새가 나는 사람, 공감 능력이 뛰어난 사람, 대화와 소통이 가능한 사람을 눈에 불을 켜고 찾아 봐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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