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의 날이 밝았다. 국회가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킬 것인지에 온 국민의 눈길이 쏠린다. 언론 역시 탄핵안의 가결 여부와 이후 시나리오에 관한 온갖 예상을 내놓고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의문과 기대가 엇갈린다.

9일 국회 본회의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을 진행한다. 탄핵안은 전날 오후 2시 45분에 본회의 보고되었다. 국회법은 탄핵안 보고 이후 72시간 이내에 표결을 진행하도록 돼있다. 실제 국회 본회의는 이날 3시부터 소집돼있다. 탄핵소추안에 대한 표결만 진행하기로 했고 찬반토론 등의 절차는 진행되지 않기 때문에 의사진행 발언 등을 고려해도 1시간 내에 결론이 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다.

친박 빼고 모두 찬성 표결할까

탄핵안이 가결되느냐 부결되느냐는 각 계파마다 셈이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가결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야3당은 흔들림 없는 탄핵 가결을 장담하며 부결 시에는 의원직을 총사퇴한다는 약속까지 해놓은 상황이다.

탄핵안 가결의 핵심 키를 쥐고 있는 새누리당 내 비박계는 탄핵안의 내용과 관계없이 찬성 표결 준비를 끝냈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언론을 통해 드러난 탄핵 찬성 입장 세력의 숫자만 모두 더해도 가결에 필요한 200표를 넘길 수 있다는 결론이 가능하다.

국회 탄핵표결을 하루 앞둔 8일 오전 서울 세종대로에서 바라본 청와대 (연합뉴스)

물론 상황을 낙관할 수만은 없다. 친박계는 195표 부결 또는 205표 가결이라는 구체적 시나리오까지 언급하고 있다. 친박계가 이런 주장을 내놓는 것은 탄핵 국면이 길어지면서 보수적 유권자층 일부의 결집 현상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는 박근혜 대통령 지지자들의 탄핵 반대 집회가 매일 같이 이어지고 있다.

친박계가 부결 가능성을 언급하는 또 하나의 이유는 탄핵안 가결이 결국 ‘야당 좋은 일’이 되고 만다는 판단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즉, 탄핵안에 대한 표결에 나서는 개별 의원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헌정유린 행위에 대한 판단이 아니라 곧 실시될 조기대선에서 각 대권주자들의 유불리를 기준에 놓고 표결할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이다.

새누리당 내 비박계 역시 이러한 가능성을 무시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흔들림 없이 찬성표결을 하겠다고 확언하면서도 야권이 제출한 탄핵안에서 ‘세월호 7시간’ 관련 문제를 빼야 한다는 요청을 한 것이나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가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한 것 등을 보면 그렇다.

그러나 이런 기류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친박계에 속하는 의원들 역시 마음 속으로는 찬성 표결 의사를 갖고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런 분석에 의하면 탄핵안은 거의 250표에 달하는 압도적 찬성으로 가결된다. 한국일보는 9일 지면에서 새누리당 소속 의원들을 전수조사해본 결과 최소 205표에서 최대 248표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하고 있다.

탄핵안 가결되면 ‘황교안 체제’ 논란 속에 개헌론 점화

어찌됐건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되면 공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간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가 1월 말에 끝나고 이정미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기는 3월에 만료된다는 점과 과거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에 67일 정도가 걸렸다는 점, 탄핵안 가결에 대한 국민적 여망이 높다는 점을 고려할 경우 헌법재판소가 1월이 지나기 전에 결론을 내릴 가능성이 언급된다.

반면, 사망한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을 통해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박한철 헌법재판소장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헌법재판소가 신의성실하게 탄핵심판에 임할 것인지에 의문을 품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한철 헌법재판소장의 임기 내에 탄핵안이 처리되지 못할 경우 새로운 헌법재판소장을 사실상 임명할 수 없는 상태에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

8일 오후 서울 강남구 수서역에서 열린 '수서고속철도 개통식'에 참석한 황교안 국무총리가 박수치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이 길어질 경우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는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확대될 수 있다. 전례에 비춰봤을 때 황교안 국무총리는 최소한의 국정운영을 가능토록 하는 역할만을 요구받게 되는데, 권한대행의 기간이 길어지면 현실적으로 책임과 역할이 확대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것인지 더불어민주당은 탄핵안에 내각불신임의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에 국무총리를 포함한 내각의 총사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야권 일각에서는 황교안 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을 진행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는데, 이럴 경우 권한대행은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맡게 된다. 그런데 유일호 부총리는 교체 대상으로서 후임이 내정돼있는 상태다. 게다가 유일호 부총리 역시 국회에 있을 때에는 ‘친박 정치인’으로 분류되던 인물이다. 중대한 시국에 국정운영이 표류할 가능성이 배가되는 셈이다.

정치권 일각에서 현 사태를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개헌론에 불이 붙을 가능성도 크다. 그간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와 안철수 국민의당 전 대표를 중심으로 한 인물을 제외하고, 거의 모든 정치권 인사들이 개헌 논의에 대한 긍정적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정세균 국회의장과 여야3당 원내대표는 정기국회가 마무리 된 이후 국회에 개헌특위를 설치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이 경우 개헌론 그 자체 보다는 개헌을 고리로 한 정계개편 가능성에 관심이 집중될 가능성이 크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과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전 비대위 대표 등은 ‘비패권지대’의 필요성을 언급하며 제3지대 정계개편 추진을 시사한 바 있다. 최근까지 여의도 주변에는 국민의당과 새누리당을 이탈한 비박계 인사들을 중심으로 정계개편이 현실화될 수 있다는 전망이 심심찮게 언급돼 왔다.

부결되면 대혼란 불가피… 새누리당 운명은?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국회는 사실상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앞서 언급했듯 야3당이 국회의원직 사퇴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회기 중이 아니라면 이들의 사퇴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인정할 때만 가능하다. 만일 회기 중이라면 국회의원의 사직원을 처리하기 위한 본회의 표결이 필요하다. 따라서 야3당 국회의원들의 사퇴가 현실이 되느냐는 정세균 국회의장이 사직서를 수리하느냐, 또는 이의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느냐에 달렸다.

그러나 그동안의 전례와 현실의 정치적 상황을 고려했을 때, 야3당의 국회의원직 사퇴 언급은 이탈표 방지 등 표 단속 목적과 혹시라도 부결될 경우의 책임 논란을 피하기 위한 측면이 큰 걸로 생각된다. 따라서 굳이 국회의장이 사직서를 수리하거나 이의 처리를 위한 임시국회를 소집하는 방안을 선택할 것인지는 의문이다. 또, 실제로 의원직 사퇴가 현실이 됐을 경우 정부가 황교안 국무총리 권한대항으로 운영되는 상태에서 국회마저 국정운영의 책임을 버린 결과가 되기 때문에 오히려 비판 여론이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따라서 국회의장이 사직원 수리 절차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야3당이 등원을 거부하는 사태가 될 가능성을 점쳐볼 수 있다.

이후에는 국민여론에 달렸다. 국민 대다수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을 요구하는 상황을 감안하면 야3당이 국회의원직 사퇴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에 대한 탄핵에 다시 나서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릴 수 있다. 만일 야3당이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재추진하게 되면 탄핵소추안의 내용에서 ‘세월호 7시간’을 제외하는 등 수정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8일 오전 비상시국회의를 마친 뒤 국회 본청을 찾아 엘리베이터를 타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다. 왼쪽 부터 정병국, 김무성, 나경원, 유승민. (연합뉴스)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새누리당에서 비박계의 이탈 가능성은 커질 수밖에 없다. 탄핵안 찬성 표결을 공개적으로 거론했던 의원들의 경우 앞으로는 친박계 지도부에 의해 ‘공적’, ‘배신자’ 등으로 내몰리며 정치적 손해를 감수해야 하고 뒤로는 탄핵 실패에 대한 국민의 비난 여론이라는 이중의 짐을 감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만, 실제로 새누리당 이탈을 선택하는 의원이 어느 정도 수준이 될 것인지에 대해선 판단이 엇갈린다.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되는 경우도 새누리당의 운명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탄핵안이 압도적으로 가결된다는 것은 친박계 상당수도 찬성 표결을 함께 했다는 것으로서, 비박계로서는 새누리당 내에 남아 당권을 쥐고 ‘재창당’에 준하는 개혁을 추진해볼 수 있다는 전망을 가질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민주자유당’을 모태로 하는 단일보수정당의 명맥은 이어질 가능성이 크지만, 이정현 대표나 서청원 의원을 비롯한 친박 핵심들의 사실상 축출이 불가피하다.

결국 탄핵안이 어떤 형태로 가결 또는 부결되느냐에 새누리당에서 친박계 핵심이 축출되느냐, 비박계들이 이탈하느냐의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다. 이정현 지도부가 국민적 비난을 감수하면서 ‘탄핵 반대’ 입장을 고수하는 이유에는 이런 현실 또한 작용하는 것으로 비춰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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