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신정아씨는 문화일보 대표와 편집국장을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와 정정보도 요청을 내용으로 하는 소장을 서울중앙지법에 접수했다. 신씨는 소장을 통해 "누드사진을 촬영한 사실이 없고 성로비를 한 사실이 없는데도 문화일보가 누드사진을 게재하면서 무차별적 성로비를 벌인 듯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보도를 하여 초상권ㆍ인격권 등을 심각하게 침해당했다"고 언급하면서, 그로 인해 강도 높은 성로비 의혹 관련 조사를 받는 등 견디기 어려운 치욕을 경험하였다고 하였다.

이는 가히 상상하고도 남을 일이다. 여전히 ‘성도덕’ ‘성윤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잣대가 이중적이고 보수적이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녀가 겪었을 모욕의 크기는 상상하고도 남을 만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언론과 검찰의 기대와는 달리 그녀 주변의 성로비 흔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오로지 횡령과 뇌물 혐의, 업무방해 등이 그녀의 구속 사유다.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었던 사건인 만큼 그녀에 대한 조사가 녹녹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이는 신뢰할 만한 내용이다.

▲ 경향신문 11월9일자 11면.
그렇다면 이제 언론은 마땅히 그녀의 사생활에 대한 온갖 추측과 과장으로 일관 하였던 어제의 일들을 사과하여야 한다. 이는 그녀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사실과는 별개로 인격적으로 부당하게 유린되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다. 그런데 어느 언론도 사과를 하기는커녕 이러한 사실을 부각조차 시켜주지 않는다. 모두 지난 일을 빨리 잊고만 싶어 하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그녀가 해당 사실에 대해 유감을 표명하고 10억의 소송을 하였다는 사실에만 유독 관심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그 대상은 오로지 문화일보로만 한정되어 있다. 그간 ‘신정아 의혹’에 대해 목소리를 높여온 언론의 행적을 되돌아볼 때 정말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더욱 우리를 절망하게 하는 것은 문화일보의 태도다. 9일 문화일보는 자신의 지면을 통해 ‘신정아씨 본보에 10억 손배소’라는 제목의 글을 실었다. 이는 신정아씨의 누드사진 진위여부 주장에 대한 반박의 내용이다.

▲ 11월9일자 문화일보 7면.
반박문의 개요는 확보한 사진 12장이 모두 필름으로 촬영한 인화사진으로 다수의 전문가를 통해 진본임을 확인했으며, 그 근거로 △빛의 방향과 그림자가 일치하며 △최근 촬영된 신씨 사진과 손·신체비율 등이 동일하고 △같은 장소에서 찍은 사진들 중에 초점이 제대로 맞지 않는 사진도 있는 점 등을 감안해 합성사진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는 내용이다.

이 글에서 그나마 절반쯤의 사과 의지를 담았던 지난 사과문은 흔적조차 찾아보기 어렵다. 오로지 자신들이 게재한 사진이 진품임을 강조하는 당찬 주장만이 담겨있을 뿐이다. 그 진위 여부야 법원에서 가려질 예정이니 조금 더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면 될 것이나, 그로 인해 성로비 의혹을 기정사실로 만들었던 문화일보의 기사내용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할 때 그 기사에 대한 책임은 누가 어떻게 질 것인지가 궁금할 뿐이다.

▲ 강혜란 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 / 미디어스 편집위원.
사실 우리는 문화일보가 사과문을 게재한 지 채 일주일도 지나기 전에 본인 동의조차 구하지 않은 또 다른 누드사진으로 물의를 일으키는 것을 보며 이미 편집국의 자정기능에 대한 기대를 접었을 지도 모른다. 형식적인 편집국장의 사표 제출과 반려 과정도 깊은 유감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기자들 개개인에 대한 희망을 모두 버리기는 어렵다. 도대체 국민의 알권리를 주장하던 그 많은 문화일보의 기자들은 다 어디에 있단 말인가?

기자들은 이제라도 문화일보의 상황을 직시해야 한다. 그리고 법이 강제하기 전에 자신들로 인해 부당하게 내몰린 한 여성에게 진정어린 사과를 하여야 한다. 또 이제라도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을 마련하여야 한다. 그것만이 문화일보의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고 독자들의 외면을 제자리로 돌아오게 할 유일한 방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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