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이 티비와 인터넷 중계를 통해 국회에서 열리는 청문회에 매달렸다. 이른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마침표를 찍게 될 정권 스폰서 재벌총수 9명이 출석하기 때문이었다. 역시 재벌들은 국회 입장부터 남달랐다. 일반 시민이라면 국회에 한번 들어가기 참 까다로운데 재벌총수들은 어떤 배려가 있었는지 일사천리로 입구를 통과했다.

이를 생중계하던 오마이뉴스는 역시 그것을 놓치지 않고 재벌 총수들에 대한 대우를 꼬집었다. 그것을 의식했는지 이후 등장하는 재벌들은 최소한 입구에 잠시 머물며 출입증을 받는 시늉은 냈다. 그런 이색적인 풍경은 이미 이번 청문회에서 건질 것이 없다는 복선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했다.

재벌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대거 출석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원실 앞에서 참여연대 등 단체회원과 유성기업노조 등 노조 조합원들이 "전경련 해체", "재벌 총수 구속" 등이 적힌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던 중 입구가 소란해졌다. 현대, 삼성 총수가 등장하자 기다리던 시민들의 구호가 터져 나왔다. 그러자 어디선가 우락부락하고 거친 일단의 무리들이 등장하더니 구호를 외치던 시민들을 억세게 제압했다. 처음에 중계를 하던 기자들은 국회경위로 여겼다. 그러나 잠시 그들을 지켜보던 기자의 입에서 다른 말이 나왔다. 그들의 복장이 정장을 입는 국회 경위와 다르다는 것이었다.

그 점을 수상하게 여긴 오마이티비 기자들은 그 의문의 남자들을 쫓았다. “어디서 나오셨나요?” “기업관계자인가요?” 등의 질문을 했지만 오토바이 마스크 같은 복면까지 착용한 그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과연 그들은 누구였을까? 청문회가 열리자 손혜원 의원도 이를 들었는지 경찰에 수사를 요구하기도 했다.

재벌 총수들이 '최순실 국정농단 게이트'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청문회에 대거 출석한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민원실 앞에서 사복을 입은 남성들이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던 한 시위 참가자(맨 오른쪽)를 끌어내고 있다. Ⓒ연합뉴스

그리고 청문회가 열리자 재벌총수들은 돌림노래라도 하듯이 똑같은 답변으로 일관했다. 이를 JTBC <뉴스룸> 손석희 앵커는 “총론 인정 각론 부정”이라는 워딩으로 정리했다. 모두가 잘못했다고 하면서도 정작 무엇이 잘못됐냐는 질문에는 동문서답하거나 동어반복으로 일관한 재벌들. 그런 모습을 본 한 누리꾼은 ‘저런 식으로 답변하면 삼성 면접에서 떨어질 것’이라고 꼬집었다.

전날 청와대 기관보고에서는 그나마 의무실장의 기대하지 못한 답변을 얻기도 했지만, 재벌청문회는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끝나고 말았다. 아니 얻은 것이 있기는 했다. 청문회가 시작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 국조위원장 김성태 의원에게로 전달된 쪽지 하나가 있었다. 거기에는 청문회에 참석한 재벌총수들 중 고령인 세 명을 일찍 귀가시키는 ‘배려’를 해달라는 새누리당 이완영 의원의 부탁이었다.

6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등 민간인에 의한 국정농단 의혹사건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성태 위원장이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에게 건네받은 쪽지를 읽고 있다. Ⓒ뉴스1

그런 식이었다. 대통령 탄핵국면에 있어서도 집권여당 국회의원의 관심사는 진실규명이 아닌 재벌의 건강이었다. 그의 뜻대로 되지는 않았지만 쪽지가 딱 걸렸으니 최소한 재벌들이 그의 가상한 노력을 모르지는 않게 됐다. 절반의 성공일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재벌들의 모르쇠 작전은 어쩌면 쓸모없는 짓일지 모른다. 재벌들은 대가성 없이 공익을 위해 순수한 의도로 기금을 냈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처벌까지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체적인 대가성 대화가 오가지 않았더라도 대통령이 모금을 요청한 것 자체가 뇌물죄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재벌들의 오리발 내밀기가 답답하고 분통은 터져도 특검이 가동되고 있기 때문에 재벌들의 피해자 코스프레는 실패할 수가 있으니 아직 더 두고 볼 일이다.

6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 특위 1차 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한 재벌 총수들이 의원질의를 듣고 있다. Ⓒ연합뉴스

다만 여전히 화가 나는 것은 바로 재벌들의 입장 때 벌어진 폭력사태다. 국민을 대신하는 국회에서 공권력도 아닌 사인의 용역이 도사리고 있다가 시민을 폭행한 것. 그런 그들을 만류할 공권력이 없었다는 것. 재벌들은 이미 그런 상황을 예측하고 그들 복면사나이들을 대비했을 것이다. 경찰은 왜 그러지 못했을까? 정당의 건물 청소까지 해주던 친절한 경찰은 그곳에 없었다.

국회에서 정체 모를 사람들이 시민과 노조원의 시위를 강제 진압하는 상황. 그 잠깐의 항의도 견디지 못하는, 국회조차도 프리패스가 당연했던 그들. 장시간 청문회에서 남은 것은 그것뿐이었다.

매스 미디어랑 같이 보고 달리 말하기. 매일 물 한 바가지씩 마당에 붓는 마음으로 티비와 씨름하고 있다. ‘탁발의 티비 읽기’ http://artofdie.tistor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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