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참하다. 새삼스런 일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조중동이 세상의 논리를 떴다. 신문 글쓰기의 정수라고 할 사설이 논리의 영역에선 전혀 구성력을 갖지 못하고, 정치의 언저리에서나 통용될 드잡이의 고함으로 점철되는 일은 지켜보는 일은 무참한 일이다.

그래서 역설적이다. 오늘 사설을 읽어 보면 왜 조중동이 공공재인 전파를 사용하면 안 되는지가 적나라하게 절개된다. 미디어 관계법을 둘러싼 극한 대치가 초읽기에 들어간 오늘, 11년 만에 지상파 3사가 동시 총파업에 돌입한 순간에서 조중동은 사회적 보편타당함으로서의 상식, 사물의 정당한 도리로서의 이치, 진실에 부합하는 지혜로서의 정의 모두를 버렸다. 사실과 다르고 볼품없게 해석하는 왜곡, 도리에 어긋나고 이치에 맞지 않는 부조리, 천둥이 치듯 시끄럽기만 한 뇌동만 진동할 뿐이다.

조선은 '미디어법 관련 민주당 주장 정직하지 않다'고 했고, 중앙은 '야당 대표가 단식할 사안인가'하고 물었고, 동아는 '미디어법 제동 건 박 전 대표의 미디어관'에 문제를 제기했다. 신경질이 극에 달한 모습이고, 그 발작적 흥분이 사방에 뻗친 양상이다. 왜곡과 부조리 그리고 뇌동을 범벅 한 구조는 판박이로 한 채, 정교하게 타격 대상만 나눠 가지는 환상적인 역할분담은 지금 제기해야 할 언론 독과점의 문제의식이 무엇을 향해야 하는지를 교과서적으로 설명한다.

▲ 조선일보 7월 21일자 31면 사설.
조선일보는 정색하고 미디어법 관련한 민주당의 주장이 정직하지 않다고 비난했다. "이제는 미디어법을 타협하고 협상할 일이 아니다"는 이강래 원내대표의 발언을 따 옮기며 '미디어법 관련 합의가 시간끌기용 위장전술'에 불과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나라당이 단독 처리를 강행하려 할 때마다 민주당이 합의처리를 강조해왔지만 실상은 합의를 실천할 생각이 없었다는 것이다.

딱 봐도 2가지가 결여되어 있다. 이강래 원내대표 발언이 나온 맥락에 대한 기술이 없고, 전체 내용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 이강래 원내 대표의 발언에 앞서 지난 17일 나경원 한나라당 문방위 간사는 기자들을 불러 '더 이상의 문방위 소집은 없다'고 대못을 걸었다. 맥락상 이강래 원내대표의 발언은 내용적으로는 의원들을 향해 한나라당의 직권상정에 맞서자는 독려의 뜻을 던진 것이고, 시기적으로는 최종 협상을 하면서도 수정안을 공개조차 않고 있는 한나라당을 압박하기 위한 것이다.

덧붙여 조선일보는 골백번은 더 우려먹었을 진영논리, 정파적 글쓰기로 문단을 이어간다. 그리곤 결론으로 민주당이 정직해져야 한다고 나무란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나무라는 전형적인 적반하장의 드잡이이다. 미디어법 논란과 관련하여 누가 봐도 부정직한 것은 조선일보이다. 미디어법 개정을 두고 "3개 메이저 신문사에 방송을 나눠줘 여론을 독점하려는 것"이라는 민주당의 주장과 "미디어 산업의 선진화와 함께 TV의 독과점을 해소해 미디어 전체의 공정성과 중립성을 강화하려는 것"이라는 조선일보 주장 중 부정직한 주장은 과연 무엇인가? 제발, 보편타당한 상식으로, 정당한 도리인 이치로, 진실에 부합하는 정의로 돌아보는 척이라도 좀 해라. 언제까지 언론판을 목소리 큰 놈이 이기는 <개그콘서트> '실미도 학원' 수준으로 꾸려갈 셈인가?

▲ 중앙일보 7월 21일자 42면 사설.
중앙일보는 야당 대표가 단식할 사안인가하고 물었다. 조선일보보단 한결 온건한 태도이지만, 너무 수준이 낮은 질문이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건대, 충분히 그럴만한 사안이다. 중앙일보는 뜬금없이 정세균 대표를 '온건합리주의' 성향으로 분류하더니 어쩌다 '정치적 쑈'를 하게 됐느냐고 힐난한다. 설령, 정세균 대표가 중앙일보의 기대처럼 '온건합리주의' 성향이있다고 치다. 그렇다면 그런 그가 '단식'이라고 하는 극한 선택을 하게 된 행위의 동기와 상황을 살펴야지 그 행위는 물론 동기와 상황 자체를 일언지하에 폄훼하는 것은 무슨 경우란 말인가?

조선일보의 드잡이가 논두렁 깡패의 완력이라면, 중앙일보의 드잡이는 깔끔한 정장 차려 입은 '아메리칸싸이코'의 이중성이다. 중앙일보의 드잡이를 3문장으로 압축하면 이렇다. '정세균 대표 그러지 마세요. 단식도 때와 장소를 가려서 하시는 것이 마땅합니다. 굶는 것 당신 마음이지만, 우리 앞길 막으면 제거합니다.' 모골이 송연하다.

▲ 동아일보 7월 21일자 31면 사설.
마지막으로 동아일보이다. 앞서 조선일보를 논두렁 깡패, 중앙일보를 '아메리칸싸이코'에 비유했는데 굳이 동아일보까지 칭하자면 문자 그대로 수구꼴통 3류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 야바위꾼이다. 동아일보는 오늘 박근혜 전 대표의 미디어관을 문제 삼았다. 그 수준은 흡사 무한도전의 언어관을 문제 삼은 뉴라이트의 그것과 같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가 진즉에 미련을 버린 '미디어법=일자리 창출'과 같은 날림 속임수를 동아일보는 여전히 무슨 비기라도 되는 냥 아무 때나 휘두르고 있다. 지난 시절 박근혜 대표가 한 약속에 순정을 요구하는 우직함에서는 차라리 그 단순 무식 지랄 맞음이 조선과 중앙의 노련함에 비해 풋풋한 것이 아닐까 싶어지려고까지 한다.

옛말에 '부자집 밥벌레'라는 속담이 있다. 일은 전혀 하지 아니하면서 먹는 데만 눈이 밝은 게으름뱅이를 일컫는 말이다. 조중동은 미디어법 개정의 당위성을 설명하며, 독과점 해소, 미디어의 다원성과 공정성 확보를 근거로 들고 있다. 하나같이 아름다운 말들이다. 바보 같은 일이지만, 한번만 더 따져 물어보자. 그 아름다운 말들을 위해 조중동은 그동안 무엇을 했는가? 오로지 조중동이 방송에 진출하는 길을 여는 것만이 독과점을 해소하고 미디어의 다원성과 공정성을 확보한다는 개코같은 말을 어찌 그리 정색하고 할 수 있는가. 차라리 솔직하게, 방송에 진출하지 않으면 곧 죽을 것 같다고 잘 할 테니 살려달라고 애원해도 시원찮을 판에 말이다. 그러니 '부자집 밥벌레'만도 못한 조중동이란 말을 들어 싼 것이 아니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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