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들고 나올까, 기대가 아닌 호기심 차원에서 지켜봤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제안한 매체 합산 시청점유율 상한선 제도를 부분적으로 수용하겠다고 한나라당 쪽에서 밝힌 터라 호기심은 더 컸다. 하지만 어제 여야 원내대표 회담에서 안상수씨는 상상을 뛰어넘는 ‘쌩쇼’를 펼쳤다.

언론보도를 보면, 안상수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방송뉴스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신문의 진입 기준으로 ‘가구구독률 20% 이하’라는 조건을 내세웠다고 한다. 발행부수도, 유가부수도 아닌 가구구독률이 등장한 것이다. 신문의 지상파방송 소유는 금지하는 대신에, 사실상 전국을 대상으로 지상파방송이라고 한나라당 스스로도 인정하고 있는 종합편성채널을 가구구독률 20% 미만인 신문이 소유하도록 하자는 내용이다.

신문의 지상파방송 소유 금지야 논리적으로나 현실적으로 당연한 성격을 지닌다. 20%까지 소유하게 하면서 경영에 개입하지 못하게 하겠다는 궤변을 담고 있는 한나라당 개정안은 자가당착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아울러, 언론악법 폐기를 요구하는 세력의 분열을 꾀하겠다는 계산도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가 21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전날 가졌던 민주당과의 미디어법 협상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발행부수/유가부수와 가구구독률의 결정적 차이

그러나 안 대표 제안의 핵심은 사실상 전국을 대상으로 지상파방송이나 마찬가지인 종합편성채널의 소유와 관련해 아무런 제한도 두지 않겠다는 것에 있다. 겉으로 보기에, 안 대표의 제안은 ‘발행부수 기준 20% 미만인 신문(전국 대상의 종합일간지뿐 아니라 무료신문과 경제지, 스포츠지 등 모든 일간지 포함)의 방송뉴스채널 20% 소유’라는 내용을 담은 2006년 12월 한나라당 신문법 개정안과 비슷하다. 발행부수가 가구구독률로 바뀐 점만 다른 것처럼 보인다.

천만의 말씀이다. 방송뉴스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신문의 대상을 전국 대상의 종합일간지(일반일간신문)로 한나라당이 설정했는지는 확인된 바 없으니 논외로 한다(아마도 그동안 행태에 비춰보면 십중팔구 그렇지 않았을 테지만).

발행부수/유가부수와 가구구독률, 이 둘 사이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발행부수/유가부수는 신고를 해야 하고 신고한 내용에 대해 검증을 받아야 한다. 유가부수의 경우 불법적인 경품 및 무가지 제공을 통해 확보한 독자는 유가부수로 인정받지 못한다.

반면, 가구구독률은 이런 검증이 필요 없다. 해마다 한 차례 정도 외부 조사기관에 의뢰해 1만명 내지 1만5천명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하면 그만이다. 발행부수나 유가부수를 신고할 필요도 없고 검증받을 필요도 없다. 발행부수/유가부수, 구독수입/광고수입 등을 신고하도록 돼 있는 규정을 삭제한 한나라당 신문법 개정안과 정확히 들어맞는 게 가구구독률 기준이다. 아울러, 신문의 여론을 재는 단위는 ‘가구’일 수는 없으며, 신문을 읽는 ‘개인’이 돼야 한다는 점이다. 이 측면에서 가구구독률은 도저히 말이 안 된다.

한나라당이 즐겨 쓰는 표현을 빌리면, 신문의 방송뉴스채널 소유 여부를 결정하거나, 신문시장의 점유율 상한선 기준으로 발행부수나 유가부수가 아닌 가구구독률을 삼는 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듣보잡’이다.

‘가구구독률 20%’의 함의 - 분모가 무엇인가?

가구구독률이란 기준이 이런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을 직시하면서, ‘가구구독률 20%’의 함의를 따져보자. 발행부수나 유가부수는 정확한 자료가 없는 반면, 가구구독률에 대해선 이런저런 조사결과가 있다. 2년마다 5천명을 대상으로 하는 한국언론재단의 언론수용자조사도 그 중의 하나다.

2008년 이 조사를 보면, 전국 종합일간지를 포함한 모든 신문의 가구구독률은 36.8%이다. 전국을 100가구로 치면 37가구만 신문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한나라당이 말하는 가구구독률 20%가 전국의 가구 대비 비율이라면 이는 사실상 ‘한반도 남쪽에 사는 인구는 1명에서 5천만명 사이에 있다’고 말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전국을 1680만가구(2007년 기준)라고 할 때 20%는 336만가구이다. 전체 가구 중에서 618만가구(1680만*36.8%)가 신문을 구독한다. 결국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할 수 있는 신문은 전체 구독시장 618만가구의 54%(336만/618만*100)가 돼도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전체 신문 구독시장의 과반을 차지하는 신문도 종합편성채널을 소유할 수 있다는 궤변인 셈이다.

그렇다면 전국 대상의 종합일간지를 구독하는 가구 중에서 상위 3사의 비중은 얼마나 될지를 추정해 보자. 2007년이나 2008년의 경우 이 비중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가 내겐 없다. 그러나 신문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가 극성을 부리던 2004년의 경우 관련 자료가 있다. 한국언론재단이 12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언론수용자 의식조사 결과를 보면, 신문 구독가구(579가구) 중 전국 종합일간지 구독률은 86.7%였는데, 이를 100%로 놓고 조중동 3사가 차지하는 비중을 환산한 결과 74.8%가 나왔다. 최소한 3사 모두 가구구독률 20%를 훨씬 웃돌고 있는 셈이다.

또 다른 자료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가 2005년 11월 전국 1만247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전국 지역신문 구독자 조사>인데, 이 자료에서 전국 종합일간지를 구독하고 있는 구독가구 41.5% 중에서 조선, 중앙, 동아 3사의 구독가구 비율은 각각 13.6%, 11.1%, 10.0%였다. 이를 환산해 보면, 전국 종합일간지 구독가구에서 조선이 차지하는 비중은 32.8%, 중앙과 조선은 각각 26.7%, 24%였다. 3사 모두 가구구독률 20%를 훌쩍 넘고 있으며, 3사 합계는 83.5%로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위에 해당하고도 남음이 있다.

이렇게 가구구독률 20%라는 의미가 ‘전국 대상 종합일간지 구독가구 대비 20%’를 의미한다면 민주당이 수용해도 좋은 것 아니냐는 물음이 제기될 수 있다. 정략적으로 치면 충분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입법적이고 행정적인 측면에서 대단히 무책임한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신문시장의 점유율 기준은 발행부수나 유가부수가 되는 게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다. 아울러, 가구구독률 기준은 불공정한 신문시장 상황을 그대로 추인한다는 문제점을 갖는다.

오히려 민주당 이강래 대표가 제안한 것처럼, 발행부수를 기준으로 전국 대상 종합일간지 시장에서 15% 미만의 점유율(매체 합산 25% 미만의 점유율)을 갖는 신문이 종합편성채널을 20% 미만에서 소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차라리 더 나을지 모른다. 이 경우에도 왜 15%인가 하는 문제가 남는다. 결국 매체시장 실태조사가 전제되지 않고서는 정치권이 타협 가능한 비율을 도출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다시 한 번 김형오 국회의장에게 촉구한다. 직권상정 협박하며 ‘여야 합의 가능하다’고 발뺌하지 말고, 직권으로 국회의장 직속 ‘매체시장 실태조사 위원회 구성’을 제안하라. 그것만이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여야 모두에게 퇴로를 열어줄 수 있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기 바란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