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는 20일자 사설에 ‘쌍용차 사태는 우리의 불행한 현주소다’를 실었다. 좋은 제목인데 나쁘다. 쌍용차 사태는 정말 우리 모두의 불행한 현주소가 맞다. 행복하지 않은, 불행한, 안타깝고 슬픈 현실이다. 그렇다면 첫 물음은 ‘누가 이렇게 만들었지’ 여야 하지 않을까. 구구절절이 늘어놓더라도 하고싶은 이야기가 많아도 이건 빠뜨리지 않아야지. 간추려봤다.

“대화와 협상은 두 달 넘게 설 자리를 찾지 못했고, 결국 힘과 힘이 충돌하는 야만적인 폭력으로 이어진 것이다.”
“경찰의 공장 진입도 불행한 일이지만 공권력 집행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다. 우리 사회의 어디에도 사법부의 결정마저 거부하는 해방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인화물질이 가득한 도장공장을 점거한 채 경찰과 살벌한 대치를 풀지 않고 있다. 노조가 왜 이렇게 명분 없는 싸움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외부세력과 관련) 우리 사회의 현주소가 아무리 참담하다 해도 과연 누가 쌍용차 사태를 악용하는지는 확실하게 지켜볼 것이다”

없다. 누가 이같은 불행한 현주소를 만든 걸까.

7월20일자 중앙일보 사설

공권력이 투입된 20일 아침 정부는 쌍용자동차의 파산 가능성을 제기했다.

“지금과 같이 세계 자동차 시장이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쌍용차의 생존 가능성도 대단히 낮다고 보고 있다.”

이윤호 지식경제부 장관이 20일 국회 조찬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놀랄 일이 아니다. 뒷짐 지고 강 건너 불 구경하듯 하니 파산은 수순이다. 7월을 넘기면 회생이 어렵다. 회생하더라도 떨이로 넘어갈 형편이다. 더 늦출 수 없으니 7월 전에 공권력을 투입해 정리하겠다는 거다.

쌍용자동차 사측은 파업중인 노동자에게 했던 말만 반복했다.

“지금이라도 노조는 현재 점거파업중인 해고근로자에 대한 기본적인 생계방안이나 처우에 뭔가 실속 있는 제안을 해온다면 대화에 응할 것이지만 그렇지 않고 대정부 관련한 공적자금 투입 같은 명분론적인 입장만 제기한다면 어떠한 대화도 유용성이 없다. 인도주의와 적법을 이야기하는데 실제 저 안에 계신 분들은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지금이라도 적법한 절차에 의해 퇴거 조치에 응하면 된다. 그렇지 않고 불법 파업을 하는 상황에서 인도주의 주장은 온당치 않다.”

20일 최상진 쌍용차 기획재무본부장의 말이다. 공적자금 같은 입장을 제기하며 불법파업을 하는 한 인도주의는 턱도 없다는 말이다.

쌍용자동차노조는 상하이차와 정부가 쌍용자동차 사태를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때문에 정부와 협상을 하겠다며 대화를 제안했다. 정부가 나서서 상하이차 지분을 소각하고 공적자금 투입 같은 책임 있는 조치를 해서 책임질 걸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길을 가는 시민에게 생존은 일상이지만, 두 달 째 점거농성을 벌이는 쌍용자동차 해고 조합원에게 생존은 목숨이다. 가족과 이별한 채 인화성 물질 가득한 곳에서 두 달씩이나 ‘생존’하는 것 자체가 경이로운 일이다. 목숨을 걸어놓고 하는 주장인데 불법이라고 몰아세우니 염치 없는 일이다.

7월20일 쌍용자동차 공장 안으로 공권력이 투입됐다. (사진제공/ 쌍용차노조)

쌍용자동차 사태는 간단하다.

2004년 산업은행과 조흥은행 등 채권단이 5,900억 원에 매각을 결정했다. 매각 대금 중 3,900억 원은 빌려주기까지 했다. 상하이자동차는 2006년에 이 매각차입금을 상환했다. 상하이자동차와 채권단 사이의 특별약정은 해제됐다. 상하이자동차는 10억 달러 투자약속도 신차 개발 투자도 하지 않고, 핵심 기술을 빼낸 후 달아났다.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이 쌍용자동차의 기술 유출을 인정해버린 결과다.

언론악법을 막으려 단식농성중인 정세균 민주당 대표. 단식하는 분한테 시시콜콜 따지자니 유감이지만 당시 산자부 장관으로 그 일을 책임지고 결정하는 위치에 있었으니 소회가 남다르지 않을까 싶다.

이쯤 되면 정부는 상하이자동차의 대주주 자격 박탈 조치를 거론해야 한다. 이건 자본주의 논리로만 따져도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이같은 수순을 밟지 않고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 탓만 한다.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생 가능성을 타진하는 것도 정부가 마땅히 나서서 할 일인데 그렇게 하지 않는다. 불행의 현주소가 어디에서 비롯되었는지는 조금만 들여다봐도 선명하고 정확하다.

중앙일보 사설은 “대화와 협상은 두 달 넘게 설 자리를 찾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실 관계로 봐도 지금도 대화를 원하는 쪽은 노조 측이다. 다만 정리해고의 불가피성만 이야기하는 사측과는 딱이 더 할 이야기가 없는 처지다. 그렇다고 정부는 대화 요청을 시종일관 거절하고 있다. 중앙일보는 이같은 “결국 힘과 힘이 충돌하는 야만적인 폭력”의 발화점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이윽고 중앙일보는 ‘야만의 폭력’이 있으니 “경찰의 공장 진입도 불행한 일이지만 공권력 집행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며 공권력 투입을 사실상 인정한다. 그리고 “왜 이렇게 명분 없는 싸움에 집착하는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며 노조를 겨냥한다. 이윽고 중앙일보의 시선은 외부세력을 향하는데, “과연 누가 쌍용차 사태를 악용하는지는 확실하게 지켜볼 것”이라며 엄포를 놓는다.

중앙일보는 불행에 대한 책임을 과거 원인에서 찾지 않았다. 그리고 현재 피해당사자와 그 아픔을 나누려고 연대하는 사람들을 감시하는데 초점을 맞췄다. 좋지 않다. 매우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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