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가 인터넷 언론사의 설립 요건을 제한하면서 언론을 통제하려고 했다는 ·정황이 포착됐다. 전국언론노조(위원장 김환균)가 지난 2일 추가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 비망록에서 이와 같은 추정이 가능한 메모들이 나왔다. 김 전 수석이 2014년 12월31일 남긴 메모에는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이· ‘언론사 설립 법적 요건 – 문제점, 개선방안’ 관련 논의하라고 지시한 내용이 적혀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김환균)이 지난 2일 추가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언론사 설립 법적 요건 – 문제점, 개선방안’이라고 지시한 부분.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언론사 설립 법적 요건’을 언급한 때는 ‘정윤회 문건 파동’ 시기와 맞물린다. 세계일보는 2014년 11월 ‘비선 실세 정윤회씨의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하며 정윤회 문건을 공개했다. 청와대는 정윤회 문건이 공개된 11월28일 세계일보 사장 등 6명을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와 더불어 통일교 계열사를 상대로 세무조사를 실시하며 세계일보에 대한 노골적인 보복을 일삼았다.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인터넷 여론에 민감하게 반응했다고 추측할만한 단서들이 등장한다. 12월2일자 메모에는 ‘조선·중앙 취재경쟁’과 ‘대통령말씀-상층부와 인터넷상 여론 상이’라는 대목이 등장한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은 “여기서 ‘상층부’란 맥락상 ‘정윤회 문건 파동’과 관련된 보도를 하는 조선·중앙과 같은 주요 언론사 간부들을 거론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박 대통령을 향해 비판의 날을 세우는 인터넷 여론과 정권과 말이 통하는 언론사 간부들이 당시 사건을 대하는 태도가 달랐다는 해석으로 추측된다.

▲언론노동이 공개한 고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 중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언론 보도에 대해 지적하고 대응 지시를 내린 대목.

12월9일자 메모에는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언론의 무책임 보도, 황색지적 행태 개별적 정리 – 시정요구하며 계도토록해야 – 권위지’란 지시를 내린 대목이 적혀있다. 또한 13일에도 ‘온 나라가 들끓을 사안이 아님. 황색지의 작태에 지나치게 반응하는 것임’ 등 이처럼 당시 사태를 보도하는 언론에 대해 지속적인 모니터링과 이에 대한 대응 지시를 내린 것이 확인된다.

언론노조 김동원 정책국장은 “고 김영한 전 민정수석의 비망록에서 12월 내내 세계일보 관련 얘기가 나왔다”며 “‘정윤회 문건 파문’과 같은 일들이 앞으로 재발하지 않도록 김 전 비서실장이 ‘언론사 설립 법적 요건’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 같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이후 그것과 관련해서는 ‘신문법 등록 요건’ 관련해 바뀐 것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말 헌법소원 기자회견에 나선 언론개혁시민연대 및 한국인터넷기자협회, 정의당 언론개혁기획단 등. (미디어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해 8월 ‘신문법시행령 개정안’ 입법을 예고한다. 2014년 12월31일 김기춘 당시 비서실장이 '언론사 설립 요건'과 관련해 언급한 지 8개월이 지난 후다. 핵심 골자는는 유사언론 행위를 규제한다는 명목으로 인터넷신문의 등록요건 중 ‘취재 편집 인력 3인 이상’으로 규정한 조항을 ‘5인 이상 상시 고용’으로 강화하는 내용이다. 정부는 작년 11월 이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했다. 이에 따라 기존 인터넷신문들은 1년 유예기간 안에 새로운 등록요건에 맞춰 관할 지자체에 재등록을 해야 하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신문법이 개정됨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 언론사들은 박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인 기사를 생산하는 언론사들이 많았다. 지난해 말 미디어스를 비롯한 참소리, 평화뉴스, Y사이드저널, 아이엠피터 등 20여곳의 인터넷 신문 및 1인 미디어 활동가 등 63명과 언론시민단체는 신문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들은 정부의 방침은 사실상 인터넷신문을 통제하고 길들이기 위한 ‘정치적 탄압’이라고 지적했다.

헌법재판소는 올해 10월27일 “인터넷신문사업자인 청구인들의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헌법에 위반된다”며 상시고용 인력이 5인 미만인 언론사를 사실상 ‘등록 취소’토록 한 신문법 시행령에 대해 위헌 판결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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