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꼭 학교에서 책 읽고, 시험보고 하는 걸로 한정하긴 어렵다. 공사장에서의 막노동도, 여행도, 나아가 극한의 상황으로까지 치닫는 등반도, 모두 공부다. 하지만, 난 여기에서 이처럼 광범위한 의미를 가지는 ‘공부’를 말하지 않으련다. 내가 말하는 공부는, 고등학교에 들어가면 그 체제에서 제공하는 교육과정을, 대학의 경우엔, 대학의 교양이나 전공과목을 수강하고, 시험보고, 그 평가를 받는 일반적 체제에서의 활동을 말한다.
또한 여기에서 말하는 신세대 스타란 ‘김연아’와 ‘박태환’을 말한다. 난 이들의 운동능력, 경쟁에서 이기려 쏟는 노력에 경의를 표한다. 자의든, 타의든, 현재 외적으로 자본의 논리에 휘둘리는 것 같아 다소 아쉬운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어찌되었든, 그대들이 한국 스포츠 역사에 그은 획은 너무나 대단하다.
문제는 이들이 현재 공부를 하지 않고 운동과 그 밖의 다른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는 것이다. 운동선수가 운동 열심히 하는 거 가지고 뭐라 그러냐고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렇다. 대부분의 엘리트 선수들이 공부를 잘 안 한다. 아니, 못 한다. 시합에, 전지훈련에 공부할 시간은 없다. 운동하느라 피곤해서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그런지, 그런 선수들 옆에서 보면서, 힘든 거 뻔히 아는데, 거기다 대고 “공부해야지” 말 못한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학교는 가야지. 가서 앉아만 있던, 가서 ‘학생’ 노릇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보다가 하도 답답해서 몇 자 적는다.
그대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1):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에
허무개그가 아니다. 그대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명료하다. 그대들이 대학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한 번 묻고 싶다. 대학에 들어간 이유가 뭔가? 박태환은 단국대에, 김연아는 고려대에, 왜 들어갔는가? 부모가 가라고 해서? 아니면 매니지먼트사가 종용했나? 그것도 아니라면, 진정 그대들이 원해서 들어갔는가? 세 번째 이유일 것이라 굳게 믿는다. 이유를 한 번 듣고 싶다. 박태환의 경우, “열심히 공부해서 체육교사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는데, 김연아의 경우엔 아무리 기사를 뒤져 봐도 그런 건 보기 어렵다. 김연아의 말처럼 “앞으로 선수생활에 있을 많은 어려움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대학이라고 여겨 입학”한 것인가? 항간에는 둘 다 교수자리를 보장받았다고 하던데, 그거야 어디까지나 소문이니까 논외로 하고.
어떤 이유로든, 그대들이 대학에 들어갔다면, 그대들은 대학교육과정을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뭐, 그대들의 잘못만은 아니다. 한국체육의 시스템이 원래 그렇다. 조금 잘 나가는 선수들 대학에서 홍보용으로 끌고 들어와서 겉으로는 ‘수업 다 받게 한다’ 뻥쳐놓고, 뒤에서는 서류 다 조작해서 수업 다녔다고 한다.
만약, 그대들이 대학에 가지 않고 실업팀으로 갔다면? 이런 글 쓰지도 않는다. 왜? 그대들은 이미 학생이 아닌 사회인이 되었기 때문에. 그 때부턴 그대들 자유대로 공부를 하던, 말던, 상관도 않는다. 하지만, 그대들은 이미 교육과정이 엄연히 존재하고, 그걸로 나중에 학력자본이라는 무시 못할 지위를 얻을 수 있는 대학에 진학했다. 자신의 의지에 따라. 어떤 대가를 받으려면, 그에 대한 책임을 완수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나, 그대들은 정녕 그렇게 하는가?
김연아의 경우 고려대에 입학한 후, 4월에 학교 캠퍼스에 와 총장 보고, 도서관을 ‘둘러본 후’ 갔고, 5월에 학생증 받으려 모교를 ‘방문’했다. 난 지금까지 재학생이, 그것도 신입생이 모교를 방문한다는 소식은 처음 듣는다. 물론, 언론의 오버다. 중요한 건, 그대가 겨우 5월에나, 대학에서 중간고사로 한 창 열낼 기간에 학교를 ‘처음으로’ 갔다는 거다. 이거, 정말 위험하다. 내 생각에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때까지 김연아는 고대에서 수업받는 일수,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가 될거다. 그의 의지의 문제도 있겠지만, 주변에서 난리를 칠 테니 말이다.
김연아와 박태환을 사랑하는 이들은 그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왜 우리 연아와 태환이만 가지고 뭐라느냐. 다른 애들 다 그렇게 한다. 그리고 대학교에 들어간 연예인들은?’ 옳은 지적이다. 연예인의 경우, 내 관심사도 아니고, 그 쪽은 다른 사람들이 비판하겠지. ‘다른 선수들이 그렇게 하는 건 왜 지적하지 않나?’란 반론에 주목해보자. 물론, 맞다. 그들에게도 한 마디씩 해야 한다. 물론, 지금까지 해왔다. 문제는, 김연아와 박태환이 너무나 상징적이고, 그 영향력이 거대한 ‘스포츠 명사(celebrity)’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보여주는 뽀스가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공부해야 하는 이유(2): 그대들이 너무 유명하니까
허무개그 그 두 번째다. 난 그대들이 너무 유명하니까 더더욱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빙빙 돌리지 않고, 그냥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우리 좀 도와달라” 이거다. 지금 한국체육계는 딜레마에 빠져있다. 엘리트 선수들 공부를 시키면서 운동을 시키려고 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그 동안 너무 잘못된 길로 달려온지라, 다시 원점으로 가려면 뜯어고칠게 한 두 개가 아니다. 그냥, 한국체육의 틀을 통째로 들어 엎어야 할 지경이다.
제일 큰 문제는 개혁을 위한 공감대가 형성이 안 된다는 점이다. 판을 뒤집으려면 뒤집으려는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일을 벌여야 하는데, 이게 쉽지 않다. 그대들도 눈치채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체육계 사람들이 – 나를 포함해서 – 협동이 잘 안 된다. 말들은 참으로 잘하는데, 막상 뭐 하자고 하면 잘 뭉치질 못한다. 바쁘고, 각자가 그러한 개혁의 실천을 하고 있어서 그러하겠지, 자위하면서도 내심 아쉬운 게 이쪽이다. 그래서 체육개혁, 그것도 흐지부지, 매년 ‘바꿔야 한다’면서도 말 뿐이다. 분위기가 조금 잡히려 하면 바로 올림픽이다 뭐다 해서 ‘이거 끝나고 얘기하자’ 한다.
공감대의 형성 뿐 아니라 일반인들의 인식도 부족하다. 그대들의 팬들은 그대들에게 ‘공부하세요?’라고 물어보나? 안 물어본다. 마찬가지로 국민들도 엘리트 선수들이 공부를 하는지, 안 하는지 관심이 없다. 왜? 그들은 선수들의 경기력, 금메달이냐, 똥메달이냐에만 관심이 있지, 그들이 경기생활을 마치고 뭐 하는지엔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수들 공부시켜야 합니다”하면, 당장 학교 관계자들부터 길길이 날뛴다. 성적 때문이다. 그렇게 보면, 그대들은 학교에 볼모로 잡힌 꼴이다. 나아가 국가에 종속된 꼴이다. 오버냐고? 조금 오버하자. 그래서인지, 난 선수들이 국제대회에 가서 좋은 성적을 거두고 난 후엔 그들이 더더욱 애처롭게 느껴진다.
그래서 그대들의 도움이 필요하다. 그대들의 영향력은 엄청나다. 일거수일투족에 10대 뿐 아니라 40대에서 노인분들까지 열광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한 마디, 더 나아가 행실이 사회를 개혁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김연아와 박태환, 특히, 그대들은 CF도 많이 찍는데, 여기에 딴지걸 생각은 없다. 할 건 하는게 좋다. 그런데, 그대들은 만약 나중에 같은 운동을 했던 후배들이 대학에 들어오면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텐가? 운동 열심히 하고 CF 열심히 찍으라고 할 건가? 아님 운동 열심히 하면서 공부는 더 열심히 하라고 할텐가?
괜히 이런 말 하는거 아니다. 엘리트 선수로 이름을 날리고 난 후 교수가 되었거나, 후에 필 받으셔서 학문에 심취하신 분들 얘기 들어보면, “왜 미리 공부를 안 했나” 후회한다. 물론, 공부가 평생을 걸쳐 하는 것이지만, 대학에서 요구하는 그만한 지식을 그대들은 쌓아야 한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강하기 때문이다. 이는, 다시 말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는 지위에 있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 없다. 그런 사람들이 공부는 안 하고 맨날 운동하고, CF찍고, 여기 저기 행사에 불려다니고, 그거 보는 다른 선수들은 어떻게 느낄까? 또, 일반인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아, 쓰다 보니 흥분했다. 다른 사람 시선 생각치 마시고. 진정 그대들은 운동만 하다 인생 종칠건가? 그대들이 좋아서 시작한 운동인 거 안다. 그런데, 지금 보면 그대들이 좋아서 시작한 운동, 외부에서 좋아서 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들이 대학에 들어갔고, 더불어 사회적으로 명망있는 자리에 올랐다면, 말할 것 없다. 그 위치에서 해야 할 일을 보여줘야 한다.
그대들이 사회를 변화시키고, 작게는 한국체육계를 개혁할 의무는 없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대들이 원치 않아도, 그대들은 이미 그 위치에 올라가 있다. 사실, 그 동안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변화’를 외쳐왔는가? 그런데 씨도 안 먹혔다. 그러다 미국의 오바마 대통령이 ‘변화’ 한 마디 하니까 사회가 다 ‘변화’하자고 한다. 담론의 위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표상 역시 다른 선수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슈퍼울트라짱급이다. 그래서 부탁하는거다.
그대들이 협회에다, 대학에다 “연습은 수업을 다 받고 하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해라. 절대로 안 된다고 그러면 기자회견 요청해라. 전지훈련을 자주 가서 어렵다고? 전지훈련 일정을 방학으로 조정하자고 말해보라. 과학적인 훈련 시스템을 원한다. 자료 더 가지고 와서 빡세게 그 때 하자고 말해보라. 어렵다고 그러면 나도 그럼 안 한다고 해라. 해도 된다. 대한민국 체육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대들은 그대들을 돌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은 그대들이 그대들을 돌보면서 공부하는 길이 대한민국 체육을 위하는 길이다.
공부는 책임
두 가지 이유로 난 그대들에게 공부를 하라고 강요하고 부탁한다. 훈련에, 시합에, 그리고 그 과중함에 짓눌리면서 그대들이 힘들어하는 거 이해한다. MB식으로 말하자면, “나도 운동해봐서 그 마음 다 안다.” 그래도 그대들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대들은 해야 한다. 힘들어도 해야 한다. 일단, 대학졸업장을 따기 위해, 학문적으로 말하자면, 학력자본이라는 것을 획득하려 선택해 들어갔기 때문이고, 나아가 그대들이 가지는 사회문화적 영향력 때문이다. 명사(名士)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다.
공부의 목적은 따로 없다. 삶을 제대로 살기 위해서이다. 그대들은 지금까지 오면서 학창시절의 추억이 있나? 공부에 대해 말해본 적이 있나? 적어도 내가 외견상으로 보기에는 없는 것 같다. 그래서 조심스럽다. 조심스럽더라도, 그대들이 선택한 길에 대한 책임은 져줘야 한다. 안 그러면 그대들의 후학 역시 주구장창 그대들이 했던 것처럼 운동 잘 해서 소위 ‘뜨면’ CF찍고, 외부논리에 휩쓸리게 된다.
사태를 바로 보자. 그대들에게 지금 중요한 게 뭔지. 운동? 광고? TV출연? 돈 버는 거? 운동선수에게 운동이 중요하냐 안 중요하냐고 묻는 내가 지금 입장에서 보면 완전 무개념 질문 같지만, 사실, 원래대로 하자면, 학생에게 중요한 건 공부지, 다른 게 아니다. 스포츠는 원래 ‘유희’였다. 그 본질이 공부하고 난 뒤 쉬는 시간에 하던 것인데, 이게 변질돼서 그런 거다. 운동 가지고 직업처럼 하는 거, 현재 구조 상 어쩔 수 없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변화를 시도해보자.
대학 4년. 후딱 지나간다. 후회하기 전에 어떻게 하면 대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앞서 말한 것처럼 협회하고 대학하고 싸우시라. 공부 좀 하면서 하자고. 만약 협회에서 제명하거나 처벌한다면? 그냥 외국으로 유학 가서 공부만 하던지. 운동처럼, 공부도 화끈하게 하는 모습 좀 보여 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마디 더.
“그대들은 학생이지, 운동하는 기계가 아니다.” 건투를 빈다.
체육교사로서의 직업정체성을 고민하며 충남대에서 2006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남대 스포츠인문사회과학 전공자들의 스터디 그룹인 ‘세미나리움’의 실장을 하고 있고, 미디어와 젠더, 운동장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