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신이 강림하셨다. 김은숙 작가의 신작 tvN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이하 도깨비)>가 그렇다.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도깨비>는 그간 tvN 금토드라마의 고지였던 <응답하라> 시리즈의 첫 방 시청률(6.7% 평균, 닐슨 코리아 전국 기준)을 너끈히 넘겼고(6.9%), 2회 만에 수도권 10%를 넘기며(10.0234%)를 넘기며 신기록을 갱신했다. 역시 명불허전 김은숙의 성공 신화를 이번에도 이어가고 있는 중이다.

김은숙과 이응복의 절묘한 콜라보

물론 <도깨비>가 첫 방영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데 있어 ‘역시 김은숙’이라고만 한다면 아쉬울 사람이 있다. 바로 첫 회 블록버스터급 판타지 사극으로서의 면모를 선보인 이응복 연출이 그 주인공이다. 2013년 <상속자들>은 김은숙 작가의 작품답게 최고 시청률 25%를 넘겼지만, 작품 초반 동시간대 경쟁작이었던 이응복 피디 연출의 <비밀>에 작품성 면에서나 시청률 면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이에 김은숙 작가가 선택한 방식은 '적과의 동침'. 다음 작품에서 방영 채널을 KBS2로 옮긴 김은숙 작가는 이응복 피디를 연출자로 합류시키며 <태양의 후예>라는 2016년 최대의 히트작을 빚어낸다.

<태양의 후예>는 <상속자들>에서 김은숙 작가의 약점으로 지적되었던 스토리텔링의 부실함을 김원석 작가의 공동 집필로 채우고, 거기에 그리스를 배경으로 이른바 '응복내'라 칭해지는 이응복 피디의 예술적 미장센으로 작품을 업그레이드시킨다. 덕분에 결국 의사와 군인이 연애하는 이야기였지만, 그리스의 풍광과 외국의 전장에서 피어나는 인류애라는 정서를 더한 <태양의 후예>는 그 평범한 이야기를 보편적 인간애로 고급지게 전달한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12월 2일 첫 선을 보인 <도깨비> 역시 김은숙이라는 이름보다는 이응복이라는 이름이 먼저 떠올릴 오프닝을 선보인다. 어린 왕의 시샘으로 역적으로 몰려 죽음에 이른 장수의 서사는 그리 낯설지 않은 것이지만, 그 이야기가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CG로 버무려져 판타지 사극으로 등장하는 순간 신선하고도 웅장한 세계로 시청자를 흡인시켜 버린다.

이 웅장한 판타지 사극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 예전 만화에 등장했던 오래된 빗자루나, 그릇들이 변신한 깨비깨비 도깨비가 아니다. 오히려 그 옛날 억울하게 죽음을 당한 장수를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신격화시켜 무속의 신으로 등극했던 최영 장군이나, 삼국지의 관우 같은 '신'이다. 드라마는 현실의 억울함과 백성들의 숭배라는 역설적 조건을 '도깨비'의 필요조건으로 등장시키고, 거기에 전장에서 수많은 피를 보았던 장수라는 존재론적인 한계를 몸에 칼을 꽂은 채 영생의 세계를 떠도는 원혼이라는 절묘한 운명론적인 장치를 더해 '도깨비 김신(공유 분)'라는 한국적 신을 완성시킨다. '도깨비'는 그렇게 운명적 서사와 캐릭터에서 극 초반부터 단박에 시청자의 가슴을 울린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그 영생의 저주를 풀 인물로서 그의 신부로 등장하는, '무명'으로 죽어야 했을 운명의 소녀 지은탁(김고은 분). 그녀의 슬픈 운명 역시 도깨비의 신부답게 시선을 잡는다. 그리고 그런 그녀를 쫓을 저승사자 (이동욱 분)와, 아직은 그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지만 캐릭터만으로도 두드러진 써니(유인나 분), 이 현실과 비현실을 오고가는 캐릭터들의 존재만으로도 <도깨비>는 흥미를 자아낸다. 하지만 신선한 서사와 그 서사를 압도하는 미장센에도 불구하고, 2회에서 분명해졌듯이 <도깨비>의 본질은 바로 슬픈 운명의 신인 도깨비 김신과 도깨비신부 지은탁의 사랑이 주된 이야기라는 점이다.

군인에서 신까지, 구원자들

여기서 한번쯤 주목해 봐야 할 것은 2016년 한 해 동안 시청률 고공행진을 갱신한 작품 주인공들의 면면이다. 앞서 언급한 최고 시청률 38.8%의 <태양의 후예> 속 남자 주인공은 전 국민에게 졸지에 '말입니다'란 어색한 말을 유행시킨 특전사 대위 유시진(송중기 분)이다. 그는 특전사 대위라는 사실상 군대에서 그리 높지 않은 직책이 무색하게, 드라마 속에서 도대체 안 되는 것이 없는, 심지어 총에 맞고도 다음 날 바로 실전에서 활약하는 능력자로 의사 강모연(송혜교 분)은 물론 대다수 여성들을 매료시킨다.

유시진의 바통을 이어받은 건, 최고 시청률 23.3%의 <구르미 그린 달빛>의 세자 이영(박보검 분)이다. 그 역시 여주인공을 위해서라면 세자의 신분으로 사신에게 칼을 겨눌 정도로 물불 가리지 않는 헌신적인 사랑을 선보였다. 그리고 이제 <도깨비>와 졸지에 자웅을 겨루게 된 SBS 수목드라마 <푸른 바다의 전설>의 주인공은 셜록의 능력치에 최면술까지 구사하는 능력자 사기꾼이다.

tvN 10주년 특별기획 금토드라마 <쓸쓸하고 찬란하神-도깨비>

그리고 이제 도깨비, 그의 진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장면은 2회 마지막 엔딩씬이다. 이모의 빚 때문에 사채업자들에게 납치당한 은탁은 간절히 김신을 원하고, 그에 응답하듯 납치 차량이 달리던 가로등이 하나씩 꺼져간다. 그리고 저 멀리서 등장하는 검은 실루엣, 그 씬만으로 이 드라마의 존재 이유가 설명된다. 아마도 김신은 죽을 운명의 무명이었던 은탁이란 존재의 삶을 구원할 것이다.

이렇게 높은 시청률을 찍은 드라마의 남자 주인공들은 하나같이 능력자다. 2016년만이 아니다. 일찍이 전설을 썼던 <푸른 바다의 전설> 박지은 작가의 전작 <별에서 온 그대>의 남자 주인공은 외계인, 그에 앞서 <해를 품은 달>은 조선의 가상 왕이었다. 이렇게 해를 거듭하면서 '로맨스' 드라마들은 그 규모가 블록버스터급으로 향상되는 것과 더불어, 남자 주인공의 능력치도 업그레이드되며 한 편의 블록버스터 영화처럼 사랑을 수행한다.

시청자들은 외계에서, 해외의 전장으로, 과거로, 그리고 이제 신계까지 넘나들며 여성을 구원하는 남자 주인공의 사랑으로 행복해진다. 현실이 암울할수록, 드라마 속 남자 주인공은 더욱 능력치를 갱신하며 시청자들을 위무한다. 과연 이 '블록버스터급 위로의 사랑'이 어디까지 펼쳐질지, 신 그 이상의 사랑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된다. 또한 물량과 스타로 대형화된 한국형 로코물의 진화 역시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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