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하여 임시국회 회기 내 처리를 공언했다. 언론노조의 총파업 결의 등 미디어 당사자들이 반발하고 있지만, 한나라당이 수적 우세를 앞세우겠다고 한 이상 국회 통과는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진다.

한나라당이 내놓은 미디어법은 내용과 추진 과정 모두 폭력을 동반해왔다. 방송법, 신문법, IPTV법, 정보통신망법 등은 김형오 의장의 말처럼 ‘조중동’의 방송 진입을 목적으로 한다. 조중동이 신문에 이어 방송도 소유하면 미디어를 정권 유지의 수단으로 수직 직계화 한다는 정권의 구상이 이뤄진다. 아울러 잇속에 밝은 자본권력이 미디어시장에 진출해 특수한 동맹 관계를 형성하게 된다. 미디어발전국민위원회를 통한 사회적 논의(합의)는 한나라당 미디어법의 관철을 위한 알리바이 과정에 불과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한나라당 미디어법의 국회 통과는 한국사회에 파시스트가 출현할 수 있는 물적 토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긴장이 커진다. 이같은 제기가 가능한 것은 단지 미디어법 때문만은 아니다. 7월을 뒤흔들어놓고 있는 사건들, 그러니까 비정규직법과 미디어법, 쌍용자동차와 용산참사의 전개와 해결 과정에서 엠비 파시스트 출현의 징후가 간헐적으로 포착되기 때문이다.

▲ 20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한나라당 의원총회에서 안상수 원내대표가 김정훈 원내수석부대표와 얘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남소연
과거 역사에서 파시즘은 세계 대공황과 맞물려 출현했다. 때문에 파시즘을 말할 때 일국 차원의 권력의 형태나 성격으로 단정하지 않는다. 쌍용자동차 사태는 일국 산업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 생산설비는 약 8,500만 대(2007년 기준)이고 실제 생산은 6,800만 대로 추산된다. 약 1,700만 대의 생산설비가 과잉되어 있다. 자동차 업체들은 규모의 경쟁에서 밀리면 퇴출된다는 위기감 속에 설비 증설에 나섰고, 이는 다시 과잉경쟁의 악순환을 불렀다. 서브프라임모기지로 촉발된 미국 금융위기의 배경이 실물경제의 위기에서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은 아미 잘 알려져 있다. 미국 자동차산업의 파산에서 확인되듯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세계 경제위기의 중요한 배경이 되고 있다. 한국에서 쌍용자동차는 퇴출 대상 1호였고, 올해 1월 기어이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976명의 해고는 투자가치 회수를 위한 전제가 되었다. 이명박 정부는 노사대립의 장기화를 방치함으로써 쌍용자동차의 파산을 유도했다. 자본의 구조조정에 있어 노동력의 청산이 요점이고, 967명의 생존은 고려되지 않았다. 오늘내일 하는 공권력 투입은 필연의 사태로 예견되었고, 최소한 지금 한국사회는 이로 인한 비극적 결과를 피해갈 합리적인 방책을 갖지 못하고 있다. 오늘 쌍용자동차노조 간부의 아내 박모 씨가 또 죽음을 선택했다.

용산참사는 자본이 토지와 주거에 개입하여 이윤을 창출하려다 빚은 정치적 사건이다. 용산참사는 사회구성원의 삶의 문제를 놓고 국가가 사회 모순과 적대를 어떻게 해결하려고 하는가를 보여준다. 이명박 정부는 용산참사에 대해 ‘당사자 문제’(조합과 유족)라며 일체 간여하지 않아왔다. 모순과 적대는 심화되어 유족이 시신을 들고 청와대로 행진하겠다고 공언하는데 이르렀다. 인권활동가가 집행위원장으로 있는 용산범대위가 시신 사진을 공개하고 시신을 들고 행진을 하겠다고 결정한 것 자체가 상서롭지 않은 일이다. 모순과 적대에 따른 갈등의 심화는 파시스트적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기존의 질서와 체계, 즉 자유민주주의 체계조차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때, 역사적 파시즘은 이 모두를 거부하며 출현했다.

비정규직법 공방은 현재 대한민국의 의회가 더 이상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없다는 사실을 웅변했다. 기간 유예라는 처방은 극단에 대한 극약 처방이다. 비정규직이 850만 명인지, 850만10명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비정규직법이 얼굴을 드러낸 2003년 가을부터 지금까지 한국사회에 살고 있는 사회구성원들은 노동유연화의 족쇄에서 아무도 자유롭지 않다. 비정규직법이 적용된 2007년부터 2009년 7월 1일이라는 날짜는 아무런 의미없는 숫자였다. 비정규직의 재생산이 유지되는 동안 조직노동자를 포함한 상층과 중간계층은 부동산과 주식 투자를 통해 약탈에 동원되어왔다. 중간계층의 몰락에도 불구하고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강력한 힘을 유지해왔고, 이같은 대중 동원의 정점에 이명박 대통령이 자리잡았다. 역사적으로 파시즘은 아래로부터의 대중의 동의와 참여 속에 정당성을 획득했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직권상정 시도는 쌍용자동차와 용산참사와 비정규직법에서 확인되는 파시스트 출현의 징후를 구체화한다. 파시즘을 연구해온 프리드리히, 브레진스키 등은 전체주의론과 관련, 국가관료제와 융합된 과두적이고 위계적인 대중정당의 존재, 사회.국가 및 정당을 통제하는 비밀경찰의 존재, 여론의 조작을 위한 모든 매스미디어의 독점 등을 지적했다. 전체주의론과 파시즘론의 역사적이고 일반적인 정의와 적용, 한국사회에서의 해석을 떠나 매스미디어의 정치적 독점은 전체주의나 파시즘을 진단하는 중요한 지점으로 이해된다.

전규찬 교수는 지난 17일 ‘거꾸로 가는 방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토론회 발제에서 독점자본 및 수구매체와 국가권력의 조직적 유기적 관계를 폭로했다. 행정부는 정권의 의중을 선전 발화하는 에이전트가 있고, 방통위.방통심의위원장이 합심하고 있으며, 라디오 선전이 국민과의 대화로 치장되고, ‘PD수첩’ 수사로 악명을 떨친 검찰이 사법부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입법부에는 한나라당이 친위 돌격대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미디어권력은 신문산업의 위기에서 벗어나기 위해 신문.방송 교차소유 및 미디어복합자본의 형식을 추구하고, 자본권력은 시장 친화적인 방송 환경 구성의 특수한 이해관계를 맺고, 국가권력은 정권을 유지, 재창출하기 위해 시민사회의 감시통제를 포함한 방송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여기서 공통이익을 추구하는 미디어권력, 자본권력, 국가권력이 동맹을 꾀한다.

4개의 미디어법이 통과되고, 올 가을에 공영방송법 제정과 민영미디어렙 도입까지 이뤄지면 한나라당의 방송 장악 시나리오는 완성된다. 이는 정권의 언론장악이라는 수사에 그치지 않는다. 엠비 파시스트 출현을 위한 미디어의 최소한의 물적 토대 구축의 의미를 내포한다.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이 와중에 개헌론이 불거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김형오 의장은 국회가 정치의 중심이라는 대명제를 실현할 절호의 기회이고, 87년 체제의 불합리한 면을 고칠 때가 됐다는 여론을 근거로 18대 국회의 개헌 구상을 던졌다. 헌법 개정은 사회구성원과 이해 당사자 간의 수많은 논란을 예고한다. 여론의 선점을 위한 쟁투가 불가피하다. 18대 국회가 개헌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는 시점에 한나라당 미디어법의 시행령이 적용된다고 치자. 헌법적인 수준에서 엠비 파시스트 정말 그분이 오실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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