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가시’의 박정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판도라’의 개봉 타이밍은 가히 천우신조라고 표현하는 것이 정확할 듯하다. 개봉 타이밍이 늦춰지지만 않았다면 우리는 이 영화를 이미 접했을 텐데, 투자를 받지 못해 영화를 제작하는 데에 애를 먹었을 뿐만 아니라 촬영 후 1년 이상 개봉이 연기됨으로 말미암아 감독과 배우, 영화 제작사는 말 못할 속앓이를 했어야만 했다.

한데 개봉이 늦춰진 게 도리어 이 영화에 플러스로 작용할 듯하다. 이 영화는 원전 폭발이라는 재난에 대처하는 영웅의 활약이 다가 아닌 영화다. 영화 속 국가 비상 시스템의 작동 방식이 현 시국과 상당히 겹치는 부분이 많기에 그렇다.

영화 <판도라> 스틸 이미지

‘판도라’에서 국가 운영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는 이는 대통령(김명민 분)이 아니다. 행정권을 장악한 총리(이경영 분)다. 직위만 대통령이지 실질적인 권한을 행사하는 이는 총리다. 그런데 총리라는 이는 원전 사고가 났음에도 사태를 적극적으로 대처하려 하기보다는 미봉책을 내놓거나 심지어는 언론 통제라는 시대착오적인 발상을 신봉하는 자다.

작년에 촬영을 마치고 순탄하게 개봉되었더라면 ‘판도라’는 재난에 대처하는 무능한 시스템을 비판하는 수순에 머물렀을 게 뻔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개봉하는 현 상황은 그런 차원만 시사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비선 실세가 누구인지 훤히 들통 난 현 정국에서 개봉하게 될 이 영화는 현실의 분노와 정확하게 맞닿는다.

영화 <판도라> 스틸 이미지

비선에 의지한 나머지 자기소임을 다하지 못한 현실의 대통령과, 총리의 일갈에 제 소리 한 번 내지 못하는 영화 속 김명민이 정확하게 오버랩되는 ‘판도라’의 개봉 시기가 늦춰진 건 결과론적으로 ‘화가 복이 된’ 셈이다.

재난영화, 재난 시스템의 무능을 비꼬는 차원을 넘어서서 청와대의 비선실세와 이경영이라는 두 라스푸틴에 휘둘린 현실과 영화 속 대통령을 짚고 넘어가는 현실 비판 재난영화가 되었으니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는 시대를 반영한다고 하는데, ‘판도라’는 올해 개봉하는 영화 가운데서 현실과 싱크로율이 최고일 듯하다.

‘판도라’는 ‘연가시’의 연장선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감독이 메가폰을 쥐었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재난 상황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하는 국가 시스템, 도리어 ‘각자도생’을 추구해야 한다는 내용은 ‘연가시’와 ‘판도라’의 공통점으로 보인다.

영화 <판도라> 스틸 이미지

선장과 선원은 무사히 구조된 반면 선장의 지시만 믿고 배 안에 있다가 차디찬 바닷물에 수장된 세월호의 가련한 청춘처럼, ‘판도라’에서는 방사능이 언제 유출될지 모르는 긴박한 상황에서 피난민을 버려두고 허둥지둥 철수하는 경찰 공무원의 무능함과 이기심이 적나라하게 노출된다.

시스템을 신뢰하지 말고 개인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재앙을 극복해야 한다는 각자도생의 가치관은 언제쯤 극복될 수 있을까. ‘연가시’가 개봉되었던 4년 전이나 지금이나 주인공의 각자도생이 철회되기는커녕 강화된 모양새를 보면, 각자도생을 안고 살아야 하는 현대인의 초상이 4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아진 게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판도라’는 이렇게 ‘연가시’의 바통을 이어 재생산 및 동어반복하고 있다.

늘 이성과 감성의 공존을 꿈꾸고자 혹은 디오니시즘을 바라며 우뇌의 쿠데타를 꿈꾸지만 항상 좌뇌에 진압당하는 아폴로니즘의 역설을 겪는 비평가. http://blog.daum.net/js7kei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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