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대통령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또는 좋은 친구나 애인은 대체 어떤 사람인지 하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간단히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국가인권위원장이라는 자리

인권을 옹호하기보다는 침해하기 일쑤인 ‘국가’와 그 국가에 대항하고 저항하는 일을 숙명으로 알아야 하는 ‘인권’이 만나는 야릇한 지점에 사법·행정·입법부로부터 모두 독립되어 있다는 이 독특한 국가기구의 장은 도대체 어떠한 사람이어야 할까요? 인권단체 활동가들이 지난 17일 청와대가 국가인권위원장으로 임명한 현병철 한양대 사이버대학장의 취임식을 막아 나섰다는 소식을 듣고 새삼 이 질문을 떠올립니다.

2005년 3월 무렵이었을 겁니다. 당시 두 번째로 국가인권위원장이 된 최영도 위원장의 재산이 무려 백 억 원에 달한다는 사실이 어느 보수 월간지를 통해 대서특필되면서 참 말들이 많았습니다. 현행법을 어긴 것이다, 아니 더 많은 재산을 기부했다더라, 그렇지만 도의적 책임을 져야 한다, 등등. 건실한 시민단체의 공동대표였고 몇 안 되는 인권변호사의 존경받는 원로였던 그는 결국 논란 끝에 사퇴를 해야 했습니다.

흔히들 자유권이라고들 말하는 표현의 자유, 사상과 양심의 자유, 언론의 자유와 같은 인권만이 아니라 사회경제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과 같은 사회권에 2기 인권위원회의 힘을 쏟겠다는 최 위원장의 이야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그가 가진 백 억 대의 재산은 치명적인 결격 사유였고, 따라서 올바른 결정이라 여겼습니다. 다만 이를 계기로 한국사회 고위 공직자, 그리고 국가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사회적 고민이 깊어지고 그에 따라 마땅한 제도적 절차가 마련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졌더랬습니다.

▲ 인권단체로 구성된 ‘국가인권위 제자리찾기 공동행동’이 16일 오후 서울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병철 신임 인권위원장의 내정을 즉각 철회할 것을 촉구했다. 발언하고 있는 사람은 류은숙 인권연구소 ‘창’ 활동가. ⓒ곽상아
파리원칙과 현병철 위원장

인권위원장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하는 질문에 국가인권위원회법은 단 한 줄로 답하고 있습니다. “인권문제에 관하여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고, 인권의 보장과 향상을 위한 업무를 공정하고 독립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말이죠. 하지만 무엇이 인권문제인지, 어느 정도가 전문적 지식이고 경험인지, 어떤 사람이 공정성과 독립성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일 것인지 등등 이 규정은 추상적이기 그지없습니다. 그래서 인권단체들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생길 때부터 지금까지 줄기차게 인권위원장을 비롯한 인권위원들의 선출에 공개성과 투명성을 높이고 검증절차를 마련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주장해왔습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어떤 사람들은 얼마 전 국회에서 열렸던 검찰총장 인사청문회가 떠오를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 이전에 국가인권기구의 설립과 운영의 바이블로 불리는 ‘파리원칙’(정식 명칭, 국가인권기구의 지위에 관한 원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1993년 유엔 총회에서 채택된 이 원칙은 “인권위원 선정 과정에서 인권 향상과 관련된 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갖는 협력관계가 필요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 국회가 그러한 대표성을 가진다고 보기는 어렵겠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서둘러 국가인권위원장 선임과 관련한 바람직한 협력관계의 제도적 틀과 절차를 마련해야 합니다.

여기서 “인권 향상과 관련된 사회 세력의 대표성을 가진 협력관계”가 중요한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국가인권기구의 독립성 때문입니다. 어느 나라 인권위원회 보고서는 “이 보고서는 정부가 원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로 시작한다고 합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국가인권위원회의 수많은 보고와 권고, 결정이 휴지조각처럼 나뒹굴었습니다. 이 정부 들어서는 아예 인권위원회 조직이 반 토막 나버렸고 이에 임기가 4개월 남은 위원장은 불만을 토로하며 사퇴를 했습니다. 그리고 청와대는 보란 듯이 인권문제와 인권위원회와 인권현장에 대해 문외한인 현병철 교수를 인권위원장에 임명했습니다.

지금 필요한 국가인권위원장의 역할

▲ 현병철 신임 국가인권위원장 ⓒ한양사이버대학교
현 교수는 내정 직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내정 소식을 듣고 머리가 멍했다.” “너무 이쪽(인권위 업무)에 대해서 모른다.” “인권위 또는 인권 현장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현황 파악을 먼저 해야겠는데, 구체적인 것(계획)은 아직 없다.”(한겨레) “학자로서 인권을 공부했지만 인권위에 대해선 아는 것이 없어, 인권 운동 단체 등을 많이 만나며 현안을 점검하겠다.”(연합뉴스)고 합니다. 인권위의 '좌편향' 논란이나 독립성 훼손 문제에 대한 질문에는 "학장으로서 일이 너무 바빠 그런 뉴스를 보질 못했다"(연합뉴스)고도 이야기했다 합니다.

이 사람을, 아니 국가인권위원장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오늘(20일)은 며칠 전 하지 못했던 취임식을 다시 한다고 합니다. 같은 날 정리해고에 맞서 ‘함께 살자’는 구호를 든 노동자들이 모인 평택 쌍용자동차 공장에 경찰병력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6개월 동안 온갖 모멸과 수모를 겪고 있는 용산참사 유족들, 시설에서 쥐도 새도 모르게 죽어나가는 장애인들, 그런 시설을 탈출해 역시 ‘함께 살자’며 인권위원회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또 다른 장애인들, 오늘하루도 인간사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이주노동자들, 대형마트의 횡포와 정부의 무관심에 견디다 못해 사업자등록증을 반납하는 자영업자들, 정부정책에 반대했다고 이메일이 공개된 방송작가와 헌법소원을 했다고 징계를 받고 군복을 벗어야 하는 군법무관, 반정부적인 정치적 표현을 했다고 수사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교사와 학교 밖으로 입시경쟁으로 죽음으로 내몰리는 청소년들….

이들에게 이번 국가인권위원장 임명은, 현병철 교수의 발언은, 아니 어쩌면 국가인권위원회 그 자체는 폭력이고 모욕이고 서글픔이지는 않을까요.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