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촛불에 데이기 직전인 정치권은 그들끼리의 계산에 분주하다. 야3당이 합의한 2일 탄핵소추안 발의, 8일 본회의 보고, 9일 표결이라는 탄핵 일정은 정치권이 직면하고 있는 딜레마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명확한 이해를 위해 상황을 다시 한 번 정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 이후 비박계가 탄핵전선에서 한 발 뺀 게 문제의 시작이다. 새누리당은 1일 박근혜 대통령이 4월에 퇴진하고 6월에 조기대선을 치르자는 일정을 당론으로 합의했다. 탄핵 표결 회피를 위해 친박과 비박이 손을 잡은 모양새지만 입장에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비박계가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 표명’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박계가 주장하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이 내년 4월에 스스로 사임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탄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1일 청와대는 4월 퇴진 일정에 대한 ‘여야 합의’를 하는 게 먼저라며 다시 국회에 공을 넘겼다. 이렇게 되면서 비박계는 이중적인 전선에 노출된 상태다. 대통령과 친박계를 상대로 대통령이 4월에 사임한다는 의견 공표를 얻어내야 하는 동시에 야당을 상대로 6월 조기대선을 핵심으로 하는 ‘질서있는 퇴진’을 합의해야 한다.

2일 비박계가 중심이 된 비상시국회의가 7일 오후 6시까지 대통령이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최후통첩’을 한 것은 이런 맥락 때문이다. 만일 이들이 제시한 시간 내에 대통령이 4월 말에 사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지 않으면 8일부터는 9일 탄핵안을 표결하기 위한 실질적 행동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청와대는 여전히 ‘야당과 합의하라’는 반응이다. 그러나 보수언론 일부는 다음 주 초에 박근혜 대통령이 4차 대국민 담화 등을 통해 비박계의 탄핵 회피에 명분을 주는 ‘이벤트’를 강행할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만일 대통령이 어떤 방식이든 8일 이전에 4월 퇴진을 시사하는 약속을 하는 척이라도 한다면 비박계는 공식적으로 탄핵 전선에서 완전히 철수할 것이다.

새누리당 비주류 모임인 비상시국회의를 이끌고 있는 김무성 전 대표가 2일 오전 국회에서 정진석 원내대표를 만난 뒤 취재진 질문을 받고 있다. (연합뉴스)

어쨌든 탄핵안 가결을 위해선 비박계의 협력이 필요하고, 탄핵안을 본회의에 보고하면 72시간 내에 표결을 해야 하며, 부결되면 지금까지의 모든 일들이 의미가 없어진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이 움직이지 않는 사실은 국민의당이 탄핵안 2일 표결을 거부하는 명분이 되었다. 2일 표결에 응하겠다는 비박계 의원들이 거의 없다시피 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즉, 국민의당이 내세운 9일 표결론은 비박계가 대통령 및 친박계와 지리한 밀고 당기기를 하며 입장을 정리할 동안 기다려주자는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이에 반대했다. 1일 추미애 대표가 김무성 새누리당 전 대표를 만나 담판을 벌인 사실이 근거다. 이 자리에서 추미애 대표는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절차가 형사재판과의 그것과는 다르므로 1월 말이면 대통령의 퇴진이 가시화될 수 있다는 주장을 하며 비박계의 협력을 요구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김무성 전 대표는 대통령의 4월 퇴진을 관철시켜 보겠다는 입장을 거두지 않았다.

추미애 대표는 이 자리에서 김무성 전 대표의 언동을 볼 때 비박계가 9일 표결에도 응할 의사가 없는 걸로 판단했다고 밝히고 있다. 비박계 내의 주요 인사들의 입장을 보면 이런 판단에 근거가 없는 건 아니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정병국 의원과 유승민 의원은 야당과 4월 퇴진 일정에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탄핵 표결에 임하겠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들은 각각 수도권과 대구경북 지역의 비박계를 대표하고 있으나 세력은 미미하다. 비박계의 다수는 김무성 전 대표 측 인사들인데 이들은 대통령이 4월 퇴진을 약속하지 않거나 야당과 합의가 되지 않는 경우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즉, 더불어민주당과 추미애 대표의 주장은 어차피 탄핵은 가능하지 않으니 발의라도 하고 부결될 것이 뻔한 표결이라도 해서 역사의 죄인을 기록으로 남기자는 것에 가깝다. 또 이런 강경한 태도가 비박계를 압박하는 또 다른 요인이 될 수 있다는 판단도 함께 하는 것 같다. 야3당이 똘똘 뭉쳐서 부결이 되든 말든 탄핵안 표결을 밀어 붙이면 결국 부결의 책임은 비박계가 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의 입장 차이는 비박계에 대한 판단과 태도에서 비롯되고 있는 셈이다. 정치라는 게 그저 인상과 감으로 하는 것은 아니니 비박계와 어떤 관계를 맺을 것이냐는 향후의 정치 일정과 대선에서의 유불리 문제와도 연동이 돼있다고 볼 수 있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더불어민주당과 문재인 전 대표는 지금 이 구도가 유지되는 게 가장 좋고, 국민의당과 안철수 전 대표는 어떤 형식으로든 ‘정계개편’이 있어야 비로소 대권을 바라볼 수 있는 입장에 처해있다.

야 3당 원내대표들이 2일 오전 국회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 회의실에서 회동하고 있다. 국민의당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우상호 원내대표,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연합뉴스)

여기서 다시 문제가 되는 것은 국민여론이다. 매주 주말마다 촛불을 들고 있는 국민들은 정치권이 헌정을 유리한 박근혜 대통령을 탄핵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만을 나날이 키워가고 있다. 2일 탄핵안 표결 무산이 국민의당에 있다는 결론에 이르자 이 당의 주요 인사들에 대한 상당한 대중적 압력이 가해진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결국 정동영 의원 등이 5일 표결이라는 나름의 중재안을 내놓기도 하였으나 비박계가 동의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관철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다 생각할 수 있는 일이다.

3일 예정된 대규모 촛불시위의 여론에 야권이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점은 명약관화하다. 여기서 야권에 대한 비난이 나온다면, 그 내용은 첫째로 앞서 언급한 것처럼 2일 표결 무산에 대한 책임론이 언급되는 게 불가피하고 둘째로 탄핵안이 발의조차 되지 않은 상황이 비난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최소한 2일 탄핵소추안을 발의는 해놓아야 야권에 대한 비난을 최소화할 수 있는 거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결국 박근혜 대통령의 법적 퇴진을 바라는 시민들이 비판할 수 있는 포인트는 크게 두 가지 대목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첫째는 탄핵전선에서 어떻게든 이탈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려는 비박계 인사들의 처신에 대한 비판이다. 둘째는 탄핵소추안 처리를 둘러싸고 국민의 눈치를 보면서도 이후 국면에서의 작은 이득을 따지는 데 몰두하고 있는 야권 일반에 대한 비판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헌정을 유린하였고, ‘주변 관리 부실’ 이외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걸로 볼 때 지금도 그런 방식의 통치를 포기할 생각이 없는 걸로 보인다. 따라서 위헌적인 박근혜 대통령의 통치는 단 1초도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에게 위임된 권력을 회수하는 헌법적 수단은 국회에서의 탄핵 외에는 없다. 탄핵은 이럴 때 쓰라고 만들어 놓은 장치다. 어떤 방식으로든 이러한 책임을 외면하고 회피해보려는 국회 내의 세력은 정치적 심판을 면치 못하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이번 주말의 촛불 시위는 중요하다.

저작권자 © 미디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