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검열의 치안스테이트, 지금 상황이 조금만 더 지속된다면 한국 방송은 20여 년의 민주화 투쟁을 통해 획득한 신뢰를 송두리째 상실한다. 정부와 한나라당이 언론악법과 공영방송법 등 공영방송의 틀을 바꾸는 신보수/신자유주의 정책을 고집하고, 경영진과 제작자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고, 통제적 행정 조치의 조직적 실천이 확고하게 나타난다.

어찌할 것인가. 전규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상황 타개에 있어 편이하고 확실한 해법은 없다고 판단했다. 제도적, 절차적인 대응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상황 인식이다. 다만 자율적 생산 활동으로 자율적 방송 문화를 재구축해야 한다는 제언을 던져놓긴 했는데.

▲ 17일 한국PD연합회.한국언론정보학회.전국언론노조가 주최한 연속기획토론회 '거꾸로 가는 방송, 어떻게 바로잡을 것인가' ⓒ 유영주
전규찬 교수는 PD, 기자, 작가가 권력네트워크에 의한 다각적 통제 메카니즘 극복 노력을 행하되 무기력을 타파하고 제작자의 개인적, 집단적 자기성찰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시민사회, 시청자와 연합하여 상부 통제 시스템, 권력의 통제 메커니즘 타개 방안을 발굴하고 실행하자는 것으로, 외부와 연대/연합의 네트워크를 맺는 것 외에 뾰족한 해법이 없다는 것이다.

전규찬 교수는 방송통제가 중층적 권력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자본권력의 문제를 간과하지 않는다. 이명박 정부를 움직이는 배후에 축적이익을 염두에 둔 자본권력이 있으며, 정부와 자본권력의 근친성은 대통령과 전경련 회장 사이의 가족 관계에서 구체화되고, 조중동 미디어권력도 방송통제 환경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 파악했다. 집행자를 담당하는 국가권력도 조직적이고 유기적이어서, 행정부의 에이전트들과 방통위원장, 방통심의위원장도 합심하여 검열.통제 조치를 수행한다고 살폈다.

제작자와 프로그램 통제의 다층적 메카니즘은 무엇일까. 전규찬 교수는 △외부 권력에 의한 ‘치안통제’ △방송사 내부의 ‘관료적 통제’ △현장 기자와 PD들의 자체 검열 등에서 고리를 찾았다.

전규찬 교수는 특히 세 번째에 대해 현장기자와 PD들의 자발적 통제 사례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보고, 개인적이고 동시에 집단적으로 나타난다고 파악했다. 억압 훈육적 분위기가 방송사 내외부에 자리 잡으면서 상부.외부의 눈치를 보거나, 애당초 민감한 이슈.아이템을 피해가는, 또는 양시양비론에 매몰되는 자기 구속적 제작관행이 자연스레 정착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이 자발적 통제는 제작 현장의 문화와 관행, 아비투스로 구축되기 때문에 위험하며, 제작자들의 집단 심성, 멘탈리티를 형성한다는 점에서 매우 위태롭다고 언급했다.

김덕재 KBS PD협회장은 ‘노조의 역할’에 아쉬움을 표명하며 편성 규약이 쓸모없게 된 현실을 개탄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라디오 연설 사례를 들어 편성.보도위원회에서 문제가 생겨도 노조 차원의 논의로 넘어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결재 구조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과거에는 3번 정도 거치면 프로그램 제작 추진이 가능했으나 지금은 많으면 10번이나 거쳐야 한다고 전했다. KBS 프로그램 심의 방향도 과거에는 주로 언어 사용 문제 등이 중심이었으나 지금은 방향성이나 색깔에 대한 심의가 이뤄진다고, 심각한 통제 수단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오동운 MBC PD도 MBC 내부 사정 역시 만만치 않다고 전했다. ‘PD수첩’이 탄압을 받는 과정에서 은연중에 ‘결함이 있는 PD수첩’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각인되고, 프로그램 내용과 아이템 선정에 위축 효과를 부르고 있다고 말했다. 개별 프로그램, 진행자, 앵커에 대한 파편화와 함께 상호 감시하고 검열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걱정을 쏟아냈다.

전규찬 교수가 “제작자들이 시민사회, 시청자와 연합하여 상부 통제 시스템, 권력의 통제 메커니즘 타개 방안을 발굴하고 실행하자”고 한 제언은 불가피해 보인다. 말 그대로 뾰족한 해법이 아니다. 하지만 외부와의 연대/연합이란 그 경험이 일천하고 미비한 지라, 지금으로서는 낯설고 황망하다는 느낌만 전해진다. 치안스테이트, 제작자와 프로그램 통제의 다층적 메카니즘이 작동하는 현장에는 아직 이렇다할 움직임이 포착되지 않아서이다. 현재로서는 그저 좋은 메시지일 뿐이다.

토론회는 한국PD연합회, 한국언론정보학회, 전국언론노조가 주최했고, 17일 오후 2시 프레스센터 19층에서 열렸다. 전규찬 교수가 ‘흔들리는 제작 자율성과 편성권 독립,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최영묵 교수가 ‘방송사 낙하산 인사와 정실 인사,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발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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