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과 '자백' 그리고 '진퇴'와 '퇴진',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말들. 이러한 수사(修辭) 속에 드러나는 가증스러운 의미. 겨우 300명의 국회의원들과 한 명의 대통령 그리고 고위 공무원들은 5000만 국민을 여전히 개돼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듯하다.

진퇴와 퇴진 속 표리부동한 권력;
가증스러운 꼼수에 국민은 분노하고, 새누리당은 국민을 비꼰다

친박은 자신들이 다시 세상의 중심이 되었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박근혜가 대국민 담화로 말도 안 되는 폭탄을 던지더니, 광장의 촛불은 모두 빨간색으로 물들었다고 자신한다. 스스로 빨간색을 선택한 그들은 다양한 색을 가진 광장의 국민에게 '빨갱이'라고 외친다.

비박이 흔들린다는 말은 친박에서 나왔다. 비박의 대변인 역할을 자청해왔던 황영철 의원은 손석희 앵커와의 인터뷰 중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개헌을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그렇게 외치던 탄핵은 무의미하다고 말이다. 황 의원은 전체 의견이 아닌 사견이라고 말했지만 제법 강경하게 이야기하던 그의 변절은 결국 개헌을 통해 권력을 연장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는 그렇게 의도하지 않게 커밍아웃을 유도하고 있다.

JTBC 뉴스룸 보도 영상 갈무리

<JTBC 뉴스룸>은 오늘도 최선을 다했다. 여전히 손석희 앵커는 열정적이다. 현장에 나가 있는 기자들과 마치 토론을 하듯 집요하게 질문하는 모습은 신뢰감을 극대화한다. 전날 앵커 브리핑마저 포기했던 손석희 앵커는 이번에는 영화 <자백>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갔다. 간첩 조작단 사건을 다룬 <자백>은 MBC 해직 언론인이자 '뉴스타파'에서 활동 중인 최승호 피디가 만든 다큐멘터리다.

<자백>은 2012년 탈북한 화교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에 대한 국정원의 간첩 조작 사건을 집요하게 다룬 다큐멘터리다. <자백>에서 다루고 싶었던 것은 유우성 한 사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어두운 현대사, 국가 권력에 의해 자행된 '간첩 조작 사건' 전체를 이야기했다.

탱크를 몰고 권력을 잡은 박정희 그리고 그런 박정희를 신으로 만들고자 했던 젊은 김기춘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중정에서 수많은 간첩 조작 사건을 진두지휘했던 김기춘은 수많은 이들을 억울하게 간첩으로 몰았다. 공안 정국을 만드는 것이 박정희 정권을 유지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던 시절 '간첩'은 곧 정권 유지를 위한 필수충분조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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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박정희의 이런 통치 전략은 그를 추종하는 집단에게 그대로 이식되었다. 지금도 그들이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 '종북 좌파'라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과거와 현재는 여전히 그 '빨갱이' 패러다임에서 조금도 달라진 것이 없다.

'진퇴'와 '퇴진'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단어의 선후가 다르듯 뜻 역시 그렇다. 박근혜는 대국민 담화에서 '진퇴'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진퇴란 '어떤 직위에 남아 있거나 물러남'을 뜻한다. 곧 물러나겠다는 것에 방점을 두지 않고 남아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포한다. 퇴진은 '관여하던 어떤 일이나 지위, 직책에서 손을 떼고 물러남'을 의미한다. 광장의 국민은 '퇴진'을 외쳤지만 당사자는 '진퇴'를 언급했다. 간사한 수사(修辭)가 아닐 수 없다.

박근혜와 친박을 포함한 새누리당은 개헌에 모든 것을 맞추고 있다. 범죄자 박근혜에게 '명예'라는 단어를 선사하고 자신들은 개헌을 통해 영구적인 권력을 이어가겠다는 포석이다. 이런 발상 속에 국민은 없다. 말은 국민의 분노를 겸허하게 받아들인다고 하지만, 그저 말뿐이다. 그들에게는 국민이 중요하지는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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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이라는 이들도 이제는 노골적으로 친박과 같은 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탄핵을 해도 어차피 늦어지니 '명예로운 퇴진'을 할 수 있도록 하자고 한다. 전혀 명예로울 수 없는 자에게 '명예'를 선사하고 싶어 안달이 난 그들의 행태는 위험하고 불순하다.

4월 말 퇴진을 시키고 6월 대통령 선거를 하거나 개헌을 하자는 그들의 속셈은 너무나 뻔해서 서글프게 다가올 정도다. 탄핵을 해도 어차피 그 정도 시간을 들 테니 그럴 거면 범죄자에게 '명예'를 주자는 것이 새누리당의 의견이다. 현재 시점 야당은 단호하다. 하지만 이 단호함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탄핵은 추진되어야 한다. 부결된다고 해도 탄핵은 국민과의 약속이다. 더욱 박 정권이 그토록 바라던 법적인 수단 아니던가. 탄핵에 찬성하는 이들과 반대하는 이들은 명확하게 나뉠 것이다. 최악의 경우 범죄자 박근혜에게 면죄부를 주는 부결이 나올 수도 있다. 하지만 부결이 무서워 타협을 하는 순간 야당도 곧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는 역사의 죄인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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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핵이 부결되면 국민의 저항은 상상도 못할 정도로 거세질 수밖에 없다. 이런 국민의 분노 속에서 박근혜가 대통령으로서 임무를 이어갈 수는 없다. 새누리당은 공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게 된다는 점에서 '탄핵 부결'은 결과적으로 친일파와 독재의 잔당이 완벽하게 청산되는 시작이 될 수밖에 없다.

많은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관련자들은 "모른다"를 무한 반복하고 있다. 그들을 단죄할 수 없는 국가라면 더는 국가로서 존재 가치가 없다. 법치주의 국가에서 범죄를 저지른 자들을 제대로 수사하고 죄를 물을 수 없다면 이는 정상적인 법치국가라고 부를 수 없으니 말이다. 법은 어느 순간이나 공평해야 한다.

김기춘은 수많은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가며 박정희 독재 정권에 충성하던 존재다. 그런 그가 법무부 장관까지 지냈다는 사실이 대한민국 현대사의 서글픔이다. 초원복집에서 그 유명한 "우리가 남이가"라는 말로 지역 갈등을 부추긴 자도 바로 김기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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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단의 중심에 있는 우병우의 팔짱 수사는 검찰의 현재이고, 국민이 모두 주목했던 국감장에 검찰총장은 나오지 않았다. 김수남 검찰총장은 우병우와 연결고리가 있다고 이야기되는 인물이다. 초기 수사 의지를 보이지 않으며 중요한 자료들을 확보하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검 출석도 하지 않는 검찰총장의 모습을 국민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인가.

국정교과서 집필마저 비선 조직이 했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서울대 병원은 박근혜의 비밀스러운 치료의 장소로 변질되어 있었다. 모든 것이 비선으로만 이뤄진 박 정권은 그렇게 끝없이 은밀하다. 은밀하면 위대하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들은 치졸하기만 하다.

JTBC에 대해서는 본때를 보여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비선 논란을 부른 '만만회', 이를 보도하는 언론에게 강력한 응징을 지시한 것이 바로 대통령이라는 직책에 있는 박근혜였다. 이 모든 것은 김영한 민정수석의 수첩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박근혜와 김기춘이 하나가 되어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를 이끌어왔음은 그렇게 글의 힘으로 무겁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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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 폴즈의 'Still Fighting It'는 뉴스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하나의 메시지였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기는 덕담과 같은 가사는 국민들을 위한 위로와 응원가 같은 느낌이 들었다. 김진태 의원의 "바람 불면 촛불은 꺼진다"에 이어 김종태 의원은 "촛불 집회는 종북 좌파들의 음모'라고 주장한다.

기업인들에 이어 원로 가수인 윤복희는 시대 불문 수구세력의 단골메뉴인 '빨갱이'를 소환했다. 참 당당하다. 홍문종 의원은 야당과 국민을 향해 조롱을 아끼지 않기도 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황당한 현실을 위한 선택처럼 'Still Fighting It'은 우리에게 위로를 건넨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우리는 아직도 싸우고 있다"며 미안하다는 아버지의 노래는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 한 편의 잘 만들어진 영화처럼 완성도를 보인 <JTBC 뉴스룸>은 오늘도 그렇게 최선을 다했다.

영화를 꿈꾸었던 어린시절의 철없는 흥겨움이 현실에서는 얼마나 힘겨움으로 다가오는지 몸소 체험하며 살아가는dramastory2.tistory.com를 운영하는 블로거입니다. 늘어진 테이프처럼 재미없게 글을 쓰는 '자이미'라는 이름과는 달리 유쾌한 글쓰기를 통해 다양한 소통이 가능하도록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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